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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악동' 키스해링 부활 시킨 '나카무라 키스해링 미술관'

등록 2018-11-23 16:30:52   최종수정 2018-12-04 11: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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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즈오 나카무라 대표, 80년대부터 수집한 175점 서울 전시
'키스 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展, DDP 24일 개막
지하철 낙서로 스타덤...1990년 31세 에이즈 합병증으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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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23일  DDP 배움터 디자인전시관에 선보인 키스해링 작품. 무등을 태운 이 작품은 나카무라 키스해링 미술관을 설립한 카즈오 나카무라 대표가 첫 컬렉션 한 작품이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저 그림 때문이었다. 무등을 태우고 태워 쓰러질 것 같은 낙서같은 그림.

1987년 12월 28일, 뉴욕 출장을 갔던 기업인 카즈오 나카무라는 뉴욕 갤러리에서 판화 무제 '사람들의 사다리'(1985)를 처음봤다.  자꾸만 웃음짓게 만드는 그림앞에서 호기심이 들었다. '만화같은데, 뭘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그 그림이 걸린 화랑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날마다 보고 또 보러 다니자, 급기야 화랑 직원이 말했다.

"이 작품을 사라"

'얼마냐'고 물었지만 살수 없는 금액, 비쌌다. 그래도 그림을 보러오자 주인이 다시 말했다. "할부로 해줄테니 사라"

그게 시작이었다. 40세에 회사를 설립하면서 더 그림을 사 모았다.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자는 식으로 그의 그림만 보면 구매했다."  불안감도 있었다. "만화같은 그림에 돈을 쓰다니. 파산하는게 아닐까?"

23일 서울에 온 카즈오 나카무라 나카무라 키스해링 미술관 대표는 "무리해서 수집하길 잘했다"고 말했다.

1980년대 키스해링 열렬한 팬이었던 그는 일본 고부자치아에 자신의 대규모 컬렉션을 소장하는 '키스해링 미술관'을 세웠다.

"당시 키스 해링이라는 이름조차 몰랐었는데, 그의 작품에 빠져 프린트를 비롯해 드로잉 조각 캔버스 작품등 장르를 불문하고 컬렉션을 넓히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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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23일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키스해링 작품을 수집한 나카무라 키스해링 미술관 카즈오 나카무라 대표가 컬렉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키스해링을 하룻밤 사이에 뉴욕의 전설로 만들어 버린 작품 '지하철 드로잉' 시리즈를 비롯해 해링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무제'(1985)등이 그에 품에 들어와 2004년 100점이 넘게 컬렉션 됐고, 이후 건축가 기타가와라 야츠시와 함께 키스 해링 미술관 건립을 꿈꿨다.

계획은 3년후 완성됐다. 2007년 키스 해링미술관을 개관했다. 키스해링의 작품을 탄생하게 한 거대 도시 뉴욕의 문화와 '야츠가타케 지역의 신석기 문화를 연결하고 이를 전세계 사람들에게 전파한다'는 모토를 가지고 생겨난 숲속의 미술관은 2010년 일본 예술가 협회상을 수상할 정도로 주목받았다.

"키스해링이 살아 있어서 이 전시를 본다면 기쁠 것"이라고 소감을 밝힌 그는 그가 수집한 키스 해링 작품중 절반을 서울에서 선보인다. 키스해링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주요 작품 175점을 들고 왔다.

 24일부터 '키스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展을 타이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지하2층 디자인전시관에서 펼친다.

이번 전시에 함께 참여한 키스해링 재단 줄리아 그루언 대표는 "나카무라 대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나라에 키스 해링 전시를 위해 자신의 작품들을 내어주는 것을 허락했다"며 "비록 키스해링이 서울을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세련된 디자인과 케이팝 비트에 맞춰 발전하는 이 역동적인 도시를 사랑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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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키스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展이 24일부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지하2층 디자인전시관에서 열린다.

나카무라 키스해링 미술관에서 온 작품들은 그동안 선보였던 키스해링 작품과는 급이 달라 보인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초대형 작품인 '피플'과 대중에게 많이 소개되지 않은 '피라미드' 작품과 사망 1개월 전 발표한 실크스크린의 포트폴리오 최종판인 '블루프린팅'이 소개 된다.

이번 전시는 키스 해링의 초기 작품부터 에이즈 진단을 받고 타계하기 전까지 작업했던 작품들을 아우른다. 10년이라는 짧은 작업 기간 동안 페인팅, 드로잉, 조각, 앨범아트와 포스터 등 다양한 매체로 방대한 작업을 했던 키스 해링의 주요 작품 175점을 총8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선보인다. 키스해링이 활동하던 모습이 담긴 사진, 관련 영상, 콜라보레이션 상품들 또한 함께 전시된다.

전시는 작가의 작업 초기부터 타계할 때까지의 궤적을 좇는다. ‘지하철 드로잉’을 시작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해링이 일부 예술애호가뿐만 아니라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예술을 위해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하고, 음악 앨범과 포스터 작업을 통해 세계와 사회의 여러 이슈에 대해 발언하는 과정을 우리는 전시의 도입부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빛나는 아기', '짖는 개'등과 AIDS를 진단받은 해에 제작한 주요 작품 '종말' 시리즈 또한 확인할 수 있다. 대중을 위한 예술이라는 키스해링의 신념을 구현한 팝 숍 또한 전시를 구성하는 색다른 요소다.

미국 출신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1958∼1990)은 1980년대 팝문화와 비트세대의 예술로 등장한 그래피티 아트씬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1958년 5월4일 펜실베니아 리딩에서 태어났다.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만화를 그리는 법을 배웠고 만화가 유행했던 당시의 대중문화를 흡수했다.

지하철 역사에 낙서를 하고 도망다니며 예술계의 악동으로 급부상한 해링은 항상 예술의 폐쇄성에 의문을 가졌다. '그들만의 예술', 이를 부수는 첫 걸음이 바로 지하철 역의 광고판에 분필로 그린 '지하철 드로잉' 시리즈였다. 경찰과 역무원의 눈을 피해 단순한 선으로 그린 ‘빛나는 아기’는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선언하는 ‘모든 이를 위한 예술’의 시작이었다.

 앤디 워홀과의 만남은 또다른 해링 예술의 전기였다. 두꺼운 선, 만화적인 도상 등 팝아트의 세례를 받았지만, 팝아트와는 또다른 해링의 작업 세계가 서로 섞이는 기폭제가 되었다. 해링은 새로운 예술생태계를 만들고자 했다.

소수의 사람만이 작품을 접하고 소장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접하고 소장하고 구입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작업 세계를 기획했다. 바로 뉴욕과 도쿄의 팝 숍이었다.

“팝 숍을 열면서 나는 지하철 드로잉과 같이 내 작품을 매개로 사람들과 계속해서 소통하길 원했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에게 내 생각들이 어필하길 원했고, 그래서 이 공간이 소수의 컬렉터들이 와서 작품을 사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 심지어 어린이들도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랐다. 진짜 내 진정한 바람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언젠가는 거리의 아이들도 예술이라는 것에 익숙해져서 이들이 미술관에 갔을 때 어색하지 않고 친숙한 느낌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것이다.”(-『키스 해링, 존 그루언이 쓴 공인된 전기』, 14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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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키스 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전은 10년간 불꽃처럼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고 홀연히 세상을 떠난 한 젊은 작가의 연대기로 꾸며졌다.


1988년, 키스 해링은 병원으로부터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음을 통보받는다.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새로운 예술, 세상을 향한 보편적 예술을 위한 열정으로 변모했다. 탄생, 인생, 죽음 등 우리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어린이를 위한 '파랑과 빨강의 이야기', 병마와 싸우며 비트 세대의 거장 윌리엄 버로스와 함께 작업한 '종말' 시리즈 등은 해링이 생각하는 우리의 삶과 그 속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전하는 마지막 열정이었다.

1990년 2월 16일, 에이즈 합병증로 31세로 타계하기 이틀 전까지 해링은 붓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그린 그림은 바로 ‘빛나는 아기’였다. 그에게 아기는 불멸, 영생의 아이콘이었다. “그림 속 아기는 우주로부터 받은 힘으로 수많은 빛 줄기를 뿜어내고, 무한한 에너지를 갖는다. 그래서 모든 위험들을 헤쳐나가며 쉼 없이 온 세상을 기어 다닌다. 해링이 세상을 떠난 이후, 1990년대부터 혼돈의 오늘날까지 빛을 발하는 아기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기쁨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해링은 아기의 모습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려냈던 것이다.”(도록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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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키스 해링은 1980년대 팝문화와 비트세대의 예술로 등장한 그래피티 아트씬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예술계의 악동으로 급부상한 해링은 앤디 워홀과 만나면서 팝아트와는 또다른 해링의 작업 세계가 서로 섞이는 기폭제가 되었다.

"예술가는 다른 이들의 삶에 감동을 주고 그들의 삶에 살아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나는 죽어도 영원히 죽이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을테니까."(키스 해링)

 31년 짧은 생애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키스 해링은 갔지만 그를 부활시켜 살아있게 하는 건 컬렉터다. 

 결국 미술품 수집은 공공미술로 환원된다. 열정이 빚은 컬렉터의 컬렉션은 다시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같이 향유하게 한다. 개인 컬렉터가 해외 작가 작품을 수집해 미술관을 짓고, 순회전를 여는 측면에서 부러운 전시다.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전시는 2019년 3월 17일까지.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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