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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기자(箕子)가 동북으로 간 까닭은, 뿌리로의 복귀

등록 2019-01-08 06:01:00   최종수정 2019-01-08 09: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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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1018년 은나라가 망한 후 기자(箕子)의 이동 경로. ①은 1992년 중국 천안(遷安)에서 출토된 청동궤와 ‘箕(기)’자 명문, ②는 삼좌점 유적의 도기 조각에 새겨진 ‘箕(기)’자.
【서울=뉴시스】 박대종의 ‘문화소통’ 

고려 때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에 의하면, 은나라 무정(武丁) 8년에 단군조선이 망하자 단군은 지금의 황해도 구월산인 아사달 산에 들어가 신이 된다. 그 후 164년이 지난 주 무왕 원년 봄에 어진 이인 기자(箕子)가 와서 국가를 다시 세우니, 기자는 후조선의 시조이다.

은(殷: 또는 ‘상’)나라는 제31대 천자 제신을 끝으로 BC1018년 2월 22일 ‘목야대전’에서 천명이 주나라에게로 옮겨갔다. 그 전쟁 직후 주 무왕은 은의 수도인 조가(朝歌)로 입성하여 곧바로 궁궐 감옥에 갇혀 있던 기자를 석방한다. 자기를 핍박했던 조카 제신과는 달리 무왕이 고마웠지만, 그럼에도 주나라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기자는 동북 방향으로 떠난다. 그가 하필 동북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중국 사회과학연구소 소장과 대만대학교 총장을 지낸 부사년(傅斯年)은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상(商)은 동북 발해와 옛 연주 땅이 그 국업의 토대가 되는 곳이다. 시경의 상송은 가장 이르고 믿을만한 사료로, 이미 명백히 우리에게 은상의 선조가 동북방에서 일어났음을 알려준다. 제신이 몰락 후 은상 유민들은 기자에 의지하여 조선을 보호할 수 있었다. 만약 조선이 일찍이 은나라의 통치범위 안에 있지 않았더라면 망국의 남은 불씨를 가지고는 (힘이 약하여) 멀리 바다나라를 건국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즉, 기자가 동쪽으로 간 것은 단지 물러나 요수의 밖을 보호하기 위해 선왕들이 거하던 곳을 좇은 것일 뿐이다. 이는 마치 금나라가 망한 후에 혼동강변에서 여진족을 보호하고, 원나라가 망한 후에 막남북에서 몽고족을 보호하려 했던 것과 같다.”

부사년의 말인즉슨, 기자가 동북으로 간 까닭은 조상의 고토로 복귀하여 민족의 본향을 지키고자 함이었다. 은상의 시조는 설(契)로, ‘사기(史記)’ 은본기에 그의 탄생신화가 실려 있다. “은의 설은 모친 이름이 간적(簡狄)이다. 유융씨의 딸로 제곡의 둘째 왕비가 되었다. 세 사람이 목욕을 하러 갔는데 제비(玄鳥)가 알을 떨어뜨려 간적이 그걸 주워 삼켰다. 그 일로 인해 간적은 임신을 하게 되었고 설을 낳았다. 설은 자라서 우(禹) 임금을 도와 치수에 공을 세워, 상(商)에 봉해지고 자(子)씨 성을 받았다.”

이러한 새 및 알과 관련된 이야기는 부여의 동명왕, 고구려 시조 주몽, 만주족 시조 애신각라의 탄생신화에서도 보이는 동북 민족들의 공유 신화이다. 은나라 시조의 탄생신화는 설이 제곡의 아들이 아니라 새(鳥)의 자손임을 알려준다. 나아가 이 신화에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비밀 코드가 담겨 있다.

첫째, 새는 한자로 ‘鳥(조)’인데 공자가 말한 구이(九夷) 중 하나인 조이(鳥夷)와 일치한다. ‘동국정운’에서는 鳥의 정음을 ‘됴’로 기재하고 있으며, ‘조선(朝鮮)’의 ‘朝(조)’ 또한 정음이 ‘됴’이다. 9개의 동이(東夷) 집단인 구이 중에서 대표 동이는 ‘鳥夷’이며, 됴이(鳥夷)는 곧 됴션(朝鮮)이다. 은상의 시조가 ‘됴(鳥)’의 아들이라는 말은 그가 ‘됴션’의 자손임을 뜻한다.

둘째, 제비는 한자로 ‘燕(연)’이다. 이는 중국대륙의 ‘연산(燕山) 산맥’ 및 북경의 옛말 ‘연경(燕京)’과 직통한다. 은상의 발상지는 시조 ‘설’이 거처한 ‘박(亳)’이며 ‘연박(燕亳)’이라고도 한다. ‘좌전’ 소공 9년 조에 “옛날 무왕이 상에 승리를 거두어, 숙신과 연박은 우리의 북쪽 땅이 되었다”는 기록은 바꿔 말하면 그 전에는 숙신, 연박은 상나라의 영토였다는 말이다.

이렇듯 조선은 제비를 필두로 삼족오, 봉황, 솟대 등으로 상징되는 새의 나라였다. 하늘을 나는 새와 솟아오르는 아침 해는 모두 천상을 지향한다.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 기자는 그런 천상의 왕국을 보호하고 빛내기 위해 조상들의 본거지로 복귀하였던 것이다. 사실이 이와 같은데도, 우리는 언제까지 일제 조선사편수회의 농간에 속아 기자를 우리 조상이 아니라고 핍박할 것인가?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heobul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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