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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유진, 앉으나 서나 발레 생각···피할 길이 없어라

등록 2019-03-29 06:00:00   최종수정 2019-04-08 10: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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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발레를 하기 전에는 내성적이었어요. 발레 덕에 자신감이 생겼죠. 저를 표현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거든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생각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어 좋았어요. 그러다가 성격도 바뀌었죠."

유니버설발레단(UBC) 단원 김유진(18)에게는 '최연소 프로 발레리나' 타이틀이 붙어 다닌다. 하지만 항상 언니·오빠들과 생활하는 그녀의 별명은 '애어른'. "너무 아기처럼 보이지 않고 싶었어요"라며 웃었다.

2001년 3월생인 김유진은 2017년 10월 UBC에 입단했다. 만 16세7개월 만에 프로 발레리나가 됐다. 국내 양대 프로 발레단을 통틀어 최연소 기록이다. 앞서 1997년 12월생인 이은서(22)가 18세1개월 만인 2016년 1월 국립발레단 정단원이 됐다.

김유진은 계속 놀랄 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성장세가 가파르다. 지난해 '세기의 발레 여신' 스베틀라나 자하로바(40)가 객원무용수로 무희 '니키아' 역을 맡아 발레계를 들썩인 '라 바야데르'에서 또 다른 니키아로 호평을 들은 김유진은 올해 드미 솔리스트로 승급했다. "생각지도 못했어요. 아직도 떨려요. 부담스럽기도 하고요"라며 부끄러워했다.

김유진은 유니버설발레단이 4월 5~13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클래식 발레 '백조의 호수'에 출연한다. 여자 주역 무용수의 우아하고 서정적인 백조 '오데트'와 강렬한 유혹의 꽃 흑조 '오딜'의 1인2역이 백미인 작품이다.

이번이 김유진의 '백조의 호수' 데뷔다. 4월12일 공연에서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와 호흡을 맞춘다. 이달 23일 하남문화예술회관에서 '백조의 호수' 무대에 이미 섰다. 김유진은 "좋은 배역을 맡을수록 정말 잘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기고 책임감도 점점 커져요"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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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노보셀로프 '백조의 호수', 하남 ⓒ유니버설발레단
김유진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백조의 호수'는 2012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발레단 버전이다. "팔 다리가 너무 길고, 얼굴도 너무 작고, 군무도 예쁘고 정말 백조 같아서 너무 설렜지요"라고 돌아봤다.

상반된 캐릭터의 1인2역은 어렵지만 즐겁기도 하다. 오딘처럼 유혹을 하고 어두운 색깔까지 내야 하는 캐릭터는 처음이라며 조마조마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제게 이런 어두운 면이 있는지 몰랐다"며 깔깔거린다.

오데트의 흰색 의상, 오딜의 검정 의상을 입는 순간 손끝부터 각 캐릭터로 변신하는 것 같다. '마인드 컨트롤' 중이라며 강렬한 눈빛을 뿜어낸다. 실생활에서도 오딜과 오데트로 변검처럼 변신한다.

김유진은 "제가 나이가 어려 경험이 부족하니까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선생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간접 경험을 쌓고 있어요. 기존에 작품을 한 무용수들의 동작을 영상을 통해 보면서 무조건 먼저 따라하고, 부족한 점을 채워가려고 해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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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에서 공연한 김유진·노보셀로프 '백조의 호수' ⓒ유니버설발레단
'백조의 호수' 데뷔무대인 하남 공연에서 실수가 잦았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객석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스텝 하나가 잘 안 됐고, 마무리 짓는 포즈도 못 했어요. 긴장을 안 할 거라 생각했는데 조명이 들어오니까 좀 떨리더라고요"라고 말할 때는 영락 없는 소녀다.

 항상 따라다니는 '최연소'라는 타이틀에 연연해하지 않는 담대함도 드러낸다. "항상 언니, 오빠들과 지내다 보니 제 나이를 항상 잊어요."

 김유진은 세 자매의 맏언니다. 막내동생하고는 여섯 살 차이여서 큰언니 역도 제대로 한다. '방탄소년단'은 모를 수 없어 알지만, 요즘 아이돌 그룹 음악을 잘 모른다. 잠이 안 올 때 좋다고 추천하는 음악이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일 지경이다.역시 어릴 때부터 애어른 소리를 들었던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27)과도 같다.

부모나 친인척 중 무용에 몸 담은 이가 없음에도 김유진은 김기민처럼 '모태 무용수' 소리를 듣고 있다. 몸과 몸짓의 부드러운 곡선이 타고 났기 때문이다. 모태 무용수라는 칭찬에 수줍어하던 김유진은 "타고난 것보다 계속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발레 또한 인맥, 학맥이 중요하다. 하지만 김유진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발레에 집중하고 싶어 중고교 과정은 학교를 다니는 대신 검정고시로 대신했다. 공부도 혼자 했다. 발레를 하다가 쉬는 시간에 책을 봤고 유튜브로 영상 강의를 들었다.

또래들과 학창 시절에만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쌓지 못한 것은 아쉽다. 가끔은 "3개월만 학교 다니며 친구들과 시끌벅적 수다를 떨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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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유니버설발레단
그러다가도 '발레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되돌아온다. 다섯 살 때 어린이집 방과 후 수업으로 발레를 시작한 김유진은 여러 발레 공연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발레의 길로 접어들었다.

항상 발레가 좋았지만 너무 힘들었던 적이 지금까지 두 번 있었다. 그래도 발레 없는 삶은 그려지지 않았다. "발레가 진실로 좋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더 잘하고 싶고 멈추고 싶지 않죠. 계속 저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원국발레단에서 실력을 키우던 김유진이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의 눈에 띈 건 2016년 수원발레축제. 문 단장은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라 바야데르' 때 김유진에게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니키아 데뷔를 해 자랑스럽다. 더 발전하는 유진이가 돼 UBC를 빛내는 무용수가 될 거라 기대한다'는 내용이다. ‘UBC를 빛내는’이라는 문구에 김유진은 먹먹해졌다.

"객석에서 정말 춤을 잘 추는 사람을 봤을 때 빛이 나는 것을 느꼈거든요. 항상 그렇게 빛이 나는 무용수가 되고 싶었는데···. 문 단장님의 응원이 큰 힘이 되고 있어요."

김유진은 이번 '백조의 호수'로 인해 '날개짓' 안무를 처음 배웠다. 어려웠지만 제법 익숙해졌다. 이렇게 하나둘씩 날개를 새로 달고 있다. "무대에서 바로 내려온다고 해도 후회가 없을만큼 매순간 열심히 하고 싶어요."

김유진의 비상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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