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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미샤 마이스키, 통영 욕지도로 불러온 '첼로의 봄'

등록 2019-04-05 15:51:32   최종수정 2019-04-15 09: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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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 마이스키
【욕지도=뉴시스】이재훈 기자 =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71)의 신비로운 첼로 소리가 욕지도의 봄을 연주했다.

육지도는 경남 통영시에서 32㎞ 떨어진 곳. 통영 앞바다는 다도해로 유명한데, 욕지도는 남쪽 끝 바다에서 풍랑을 온 몸으로 막아서는 섬이다.

하지만 1시간가량 규칙적인 박자 소리를 내는 메트로놈을 따라가듯 일정 속도로 바다를 가르는 통영시 행정선을 타고 도착한 5일 오전 욕지도의 봄은 평화로웠다.

마이스키는 첼로 가방을 메고 자신과 10여년 동안 동반 연주하고 있는 딸인 피아니스트 릴리 마이스키(32)와 함께 20명 정원의 행정선에 올랐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 처음 참가한 마이스키는 감기 기운이 있는 데다가 전날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 피곤할 만도 했다. 하지만 미소를 지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밝게 인사했다.

2000명 남짓이 모여 사는 욕지도에서 학교는 원량초등학교, 욕지중학교가 전부다. 두 학교 전교생이 모두 욕지중학교 강당에 모였다. 초등학생 36명, 중학생 1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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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릴리 마이스키
그간 통영국제음악제는 통영 시내 학교와 인근 섬의 학생들을 통영국제음악당으로 초대하는 '스쿨콘서트'를 꾸준히 열어왔다. 하지만 욕지도로 학생들을 찾아가는 스쿨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다. 욕지도에 릴리가 연주할 마땅한 피아노가 없어 거제에서 피아노를 빌려왔다. 통영에서는 음악제로 인해 빌릴 피아노가 없었다.

욕지도에서 클래식공연이 열린 것은 2011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섬마을 콘서트 이후 8년 만이다. 마이스키는 그간 음악에 대한 학생들의 갈증을 충분히 가시게 해 줄 명연을 선보였다. 첼리스트 장한나의 스승으로 수차례 내한, 한국 곳곳에서 공연한 지한파지만, 통영국제음악제와는 인연이 없었다. 

얼마 전 자신의 퍼스트 첼로가 파손되는 바람에 세컨드 첼로를 들고 나선 노장은 브람스 첼로 소나타 2번 1악장으로 이날 콘서트의 문을 열었다.

브람스가 어느 여름 휴가를 보낸 스위스 툰 호수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작곡한 곡이다. 욕지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울리는 첫 곡으로 손색없는 선곡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이 어린 얼굴로 조심스러워하던 학생들에게 점차 생기가 돌았다.

마이스키는 "욕지도에 와서 젊은 친구들을 만나 너무 기쁘다"면서 "머리는 새하얗지만 나는 항상 아이"라며 웃었다. 여섯 자녀를 둔 그는 "내 막내 딸이 네 살이다. 여섯 살, 아홉 살, 열한살 자녀도 있다. 그래서 여러분이 더 친숙하다"며 껄껄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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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하는 미샤 마이스키
바흐 아다지오와 아리오소가 이어졌는데 서정적인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에 먹먹함이 스쳐지나갔다. 욕지도의 봄바람이 욕지중학교 강당을 스쳐갔다. '소리 풍경'이란 이런 것일까. 첼로는 현악기 중 사람 음성에 가장 가깝다고 알려졌는데 마치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듯, 마이스키는 연주했다.

바르톡의 루마니아 민속 무곡은 열정적이었다. 마이스키는 연신 땀을 닦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차이콥스키 사계 중 가을의 노래는 새삼 욕지도가 사계절을 품은 곳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20세기 첼로 거장들인 피아티고르스키의 감성과 로스트로포비치의 힘을 물려받았다고 평가를 받는 마이스키는 50년 넘게 독주와 실내악 분야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서정적인 연주가 특히 인상적으로 구소련의 라트비아에서 태어나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일찌감치 몸으로 뚫어야만 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부당한 체포로 수용소에 2년간 감금되고 두달간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했다. 극적인 젊은 시절은 예술혼으로 승화됐다. 뛰어난 기교와 더불어 느껴지는 생명력과 자유로움이 그것이다. 특히 인간미가 느껴지는 음색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날 학생들에게 인간적인 정서가 가닿았다. 욕지중 1학년 권예진(13)은 "첼로 음색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어요. 배 타고 통영에서 몇 번 듣기는 했는데 가까이서 들으니 새롭다"고 말했다. 원량초 2학년 강채원(8)은 첼로 소리를 입으로 따라하더니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어요"라며 웃었다. 이들에게는 통영국제음악제를 후원하는 필기구회사 파버카스텔 색연필이 선물로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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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릴리 마이스키 & 원량 초등학교 학생들
신난 건 학생들만은 아니다. 육지초 5학년 담임인 서정호 교사도 함박 웃음을 지었다. 첼로를 취미로 연주하는 그는 마이스키 오랜 팬이라며 직접 들고온 자신의 첼로가방에 사인을 받고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플로리안 리임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는 "스쿨콘서트는 5년 전부터 기획한 것인데, 교육적인 효과가 크다"면서 "다른 유명 음악가들과 함께 여러 곳을 직접 찾아가면서 연주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전에 도착할 당시 욕지도 앞바다는 인디고 블루였다. 연주를 마치고 통영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행정선에 오를 때는 에메랄드빛을 내뿜었다. 그 위로 부숴지는 햇살에는 희망과 위로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욕지도의 '욕지'는 '욕'(欲)자와 '지'(知)자를 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고자 하는 욕심'이 많은 섬이다. 이날 섬은 음악의 힘에 대해 알았을 것이다. 마이스키는 "젊은 친구에게 음악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음악과 예술은 감성과 지성을 발달하게 만든다"고 했다.

백발에 하얀 도포 같은 옷을 걸친 마이스키는 신선 같은 얼굴로 말했지만 사실 '백발의 사자',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백발의 돈키호테를 닮았다. 전날 코리안심포니와 협연한 곡도 세르반테스 소설의 명장면들을 관현악법으로 전달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돈키호테'다. 그가 삶의 마지막으로 연주하고 싶은 곡으로 뽑는 것도 역시 '돈키호테'다.

미국, 콜롬비아의 여러 섬과 타이완 같은 큰 섬에서도 연주했다는 마이스키는 "음악과 예술과 자연은 위대하다"고 했다. "오늘 행복했다. 비슷한 경험이 앞으로도 더 많았으면 한다." 그가 손에 꼭 쥔 첼로가 돈키호테의 긴 창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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