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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사교계 사로잡은 인플루언서의 '민낯'…가짜신분·빚으로 호화생활

등록 2019-05-05 07:03:57   최종수정 2019-05-07 09: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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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뉴시스】미국의 패션 잡지 배니티 페어(Vanity Fair)의 저서 '내 친구 애나'의 표지 사진. 윌리엄스는 배니티 페어에 뉴욕 사교계의 사기꾼 '애나 소로킨'의 이야기를 기고하며 그를 대중에 알렸다. (사진=출판사 갤러리북 제공) 2019.05.01


오늘도 어딘가에서 '인플루언서'를 초청해 호화로운 만찬을 제공한 행사가 열렸을 것이다. 인플루언서는 주최 측에서 준 의상을 입고, 자신의 일상인 양 이를 뽐내며 대중을 자극한다.

영향력이 부를 낳고 그 자본이 다시 영향력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지금 당신은 누구에게 관심을, 그리하여 권력을 쥐여줬는가. 그들은 지금 '안녕'한가.

【서울=뉴시스】양소리 기자 =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인플루언서(Influencer·영향력 있는 개인)'가 있다. 누군가는 화려한 손재주를 가진 이를, 누군가는 맛있는 밥집을 찾아내는 사람을, 또 누군가는 멋진 글을 선보이는 사람을 인플루언서로 삼고 자신의 일상을 쪼개 그의 일상을 엿본다.

그러나 시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인스타그램'의 시대의 인플루언서란 결국 호화로운 장소에서 화려한 모습을 한 이들을 일컫게 된 듯하다. 일반 대중들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일상을 누리는 이들에게 우리는 '영향력'이라는 권력을 쥐여준다.

2013년 뉴욕 사교계에도 혜성같이 나타난 '인플루언서'가 있다. 독특한 유럽 억양을 구사하던 '애나 델비(28)'가 바로 그녀다. 그가 뉴욕 사교계 인사들을 사로 잡은 방법 역시 씀씀이에 있었다. 델비는 맨해튼의 고급 호텔에서 몇 달씩 머무르며, 고가의 의상과 액세서리를 장착하고 각종 행사장에 등장했다. 한 시간에 수백 달러에 달하는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을 즐겼다. 그의 인스타그램엔 세계 전역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담겼다. 뉴욕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자신의 돈으로 고급문화를 즐겼다.

2017년 10월, 그의 화려했던 삶이 끝나기 전까지 그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그의 진짜 이름은 '애나 소로킨'. 뉴욕 사교계에서는 독일에서 태양광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둔 상속녀로 알려졌으나 이 역시 사실은 아니었다.

지난 4월 26일(현지시간) 뉴욕 지방 법원은 소로킨의 3건의 절도와 1건의 절도 미수 혐의에 대해 유죄를 판결했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그가 자신의 '가짜' 이름을 딴 '애나 델비 재단(Anna Delvey Foundation)'을 설립하기 위해 대출받은 2200만달러(약 256억원)에 대해서는 무죄를 판결했다.

소로킨의 변호사는 그가 5년에서 15년을 구형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 패션 잡지의 인턴, 뉴욕 사교계를 사로잡다

뉴욕에 등장한 소로킨은 패션과 예술계의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다. 거액의 유산을 받을 예정인 '트러스트 펀드 키즈'와 함께 그는 사교계의 주요 인사로 자리매김했다.

소로킨은 '끝없이 돈을 쓰는' 사람이었다. 해외에서의 휴가, 디자이너 의류 구매은 물론 자신이 '내 사람'이라고 분류한 이들에게는 수표도 남발했다.

아무도 그의 배경을 몰랐다. 진짜 독일에서 왔는지, 그가 쓰는 막대한 자금의 출처는 어디인지 말이다. 독일 IT(정보통신)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자녀, 러시아 외교관 자녀, 석유산업을 이끌 후계자설 등만이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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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2013년 뉴욕 사교계에도 혜성같은 '인플루언서'가 등장했다. 독특한 유럽 억양를 구사하던 '애나 델비(28)'가 바로 그녀다. 그의 인스타그램엔 호화로운 의상을 입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담겼다. (사진=애나 델비 인스타그램 캡처) 2019.05.01.

실제 소로킨은 1991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2007년 16세가 되던 해 독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럭 운전사였던 아버지는 현재 독일에서 냉난방 사업을 하고 있다. 그에게 물려줄 거액의 상속 재산은 없다.

대학을 중퇴한 소로킨은 홍보 업계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파리로 거주지를 옮긴 그는 잡지 '퍼플'에서 인턴으로 들어갔다. 그는 '애나 델비'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시점도 이때 쯤이다. 이후 델비의 화려한 뉴욕의 삶이 시작됐다.

2016년 소로킨은 예술 재단 설립을 계획했다며 은행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았다. 맨해튼 고급 호텔에서의 장기 투숙 비용을 갚지 못했던 시점이다. 그렇게 소로킨의 허황한 삶은 몰락해갔다. 

'애나 델비'라는 인물이 대중에 알려진 것은 1년 전 미국의 패션 잡지 배니티 페어(Vanity Fair)를 통해서였다. 배니티 페어의 포토 에디터인 레이첼 윌리엄스는 '내 친구 애나'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그는 구찌 샌들과 셀린 안경을 끼고 내 인생으로 들어왔다"고 썼다. 윌리엄스는 "애나는 호텔에서의 생활과, 르쿠쿠(맨해튼의 고급 프랑스식 식당)에서의 만찬, 적외선 사우나, 모로코에서 즐기는 휴가 등 매력이 넘치고, 한 치의 오점이 없는 세계를 보여줬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내 6만2000달러(약 7200만원)을 들고 사라졌다"고 회상했다.

윌리엄스의 기고문은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뉴욕매거진(NYM)은 다음달 소로킨이 뉴욕에 도착했을 때부터 체포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전하며 다시 한번 그에게 유명세를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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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AP/뉴시스】 독일의 상속녀로 신분을 세탁해 뉴욕 사교계를 흔들었던 애나 소로킨(28)이 22일(현지시간) 뉴욕 고등법원에 출석했다. 그의 화려한 의상은 할리우드 배우의 스타일리스트의 조언을 통해 선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9.05.01.



◇ "누구에게나 소로킨은 있다"

3월 말 소로킨의 재판이 시작되며 그를 향한 관심은 증폭됐다. 뉴욕시 검사 출신인 제프리 셰브로우는 "이 도시는 소로킨에 집착증을 보이고 있다"고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말할 정도였다. 소로킨의 변호사인 토드 스포덱의 변호 발언도 이슈가 됐다.

스포덱 변호사는 배심원들에게 "소로킨은 뉴욕 사교계의 문을 열고 자리 잡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화려하고 현란한 매력에 쉽게 유혹되는 상류층의 시스템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로킨은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고 이를 통해 빚을 갚을 시간을 벌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며 변론을 펼쳤다.

최후의 변론 역시 논리는 비슷했다. 소로킨은 자신의 경력을 위해 힘썼고, 집요하게 사업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스포덱 변호사는 "우리 모두에게는 약간의 애나가 있다"며 주목을 끌기 위해 한 번쯤은 허황된 말을 던져봤을 배심원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재판장에 증인으로 나선 시티내셔널은행의 한 대출 담당 은행원은 "소로킨은 자신의 재단을 세우겠다며 10만달러의 대출을 요청했으나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로킨은 매주 잘 갖춰진 대출 청구 서류를 준비했고, 상담할 때는 금융계의 언어를 구사했다"고 증언했다.

배니티 페어의 기고문을 썼던 윌리엄스는 재판장에서 울며 "이는 내가 겪은 것 중 가장 충격적인 일이다"고 증언했다. "애나를 만난 적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며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소로킨이 상속녀 행세를 하며 수만 달러를 들였다고 주장했다. 캐서린 매커우 검사는 "소로킨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사기행각을 벌인 사람일 뿐"이라며 "그는 고급 호텔에서 돈도 지급하지 않고 생활하며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했다"고 말했다. 또 "소로킨은 숙박료를 요구하는 호텔에 알겠다고 답한 뒤 존재하지도 않는 회계사의 핑계를 댔다"고 설명했다.

매커우 검사는 "피고인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이는 선의의 거짓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명백한 의도를 지닌 범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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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AP/뉴시스】 흰 원피스를 입고 초커를 착용한 채 등장한 애나 소로킨이 24일(현지시간)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2019.05.01.


◇ 소로킨, 대중의 콘텐츠가 되다

소로킨의 사건이 미국 사회의 '오락거리'로 등극하며 그가 심리와 재판 때마다 선보인 '블레임룩(Blame Look)'에도 관심이 쏟아졌다.

소로킨은 첫 번째 법원 출석 때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미우미우의 원피스를 입고 목에는 초커를 맨 채 등장했다. 화려한 프린트의 원피스에 검정 스타킹을 신고 나선 날도 있었다.

황당하게도 이는 할리우드의 유명 스타일리스트 아나스타시아 워커의 솜씨였다. 워커는 "재판 첫 주 동안 소로킨과 함께 의상을 선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스포덱 변호사는 패션잡지 GQ와의 인터뷰에서 "소로킨은 자신의 의상이 재판장에 적절한지 확인하기 위해 워커를 고용했다"고 설명했다. 스포덱 변호사는 "애나의 스타일은 그녀의 사업과 삶의 원동력이었다. 이는 정체성의 문제다"고 옹호했다. 그는 또 "배심원단이 소로킨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허황된 모습은 배심원단에 거부감을 일으켰고 이후 이어진 재판에서 소로킨은 평범한 수감자용 옷을 착용하고 나섰다.

재판부는 5월9일 소로킨의 형량을 선고할 예정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소로킨의 비자 기한이 만료돼 그가 독일로 추방될 가능성도 있다.

화려한 그의 기행은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를 제작한 숀다 라임즈 감독의 손을 거쳐 드라마로 만들어질 계획이다. 로맨스 코미디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제니퍼 로렌스가 소로킨을 연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7월에는 울면서 법정에 나섰던 배니티 페어의 윌리엄스의 저서 '내 친구 애나 : 뉴요커 절반을 속인 가짜 상속녀에 대한 진짜 이야기'가 발간된다.


soun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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