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박대종 문화소통]음절···훈민정음에서 음(音)은 성(聲)과 다르다

등록 2019-06-04 06:01:00   최종수정 2019-06-10 09:31:10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박대종의 ‘문화소통’

associate_pic
훈민정음 해례본 ‘어제훈민정음’ 편 4장에서는 ‘聲(소리 성)’과 ‘音(소리 음)’을 구별하고, ‘자음’을 이루는 법칙에 대해 기술했다.
= 【서울=뉴시스】 무릇 생명체에 높고 낮고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미운 오리 새끼’ 얘기에서는 백조가 오리보다 더 예쁘고 멋진 상위 조류로 묘사된다. 그처럼 표음문자에도 고등하고 하등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어느 게 더 첨단이냐 하는 것은 논할 수 있다. 그 백조는 자신이 백조인 줄 모르고 오리 중에서도 아주 못생긴 오리로 착각하고 열등감을 느낀 시절이 있었다. 그렇듯 우리 또한 우리 글자에 대해 잘 모르고 서양 로마자의 이론을 추종, 휩쓸리는 과정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영단어에도 음절이 있고 우리말에도 음절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음절’과 영어의 ‘음절’ 개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and는 우리글로는 ‘앤드’로 표기되는 2음절어인데, 영어권 사람들은 1음절로 인식한다. 그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2음절 인식을 1음절로 교정해주는 과정에서 혼란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런 혼란은 왜,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콜린스 코빌드 영영사전에서는 음절(Syllable)에 대해 “단모음 소리를 포함하고 있고 한 단위로 발음되는 단어의 일부이다.”라고 정의한다. 그처럼 영어에서는 국제음성기호 상의 단모음 수가 음절을 헤아리는 기준이 된다. and의 발음기호 [ænd]를 보면 모음이 한 개여서 1음절이라는 것인데, 귀 기울여 and의 발음을 듣고 한글로 적으면 ‘앤드’가 된다. ‘앤’에 비해 ‘드’가 작게 들릴 뿐 한국인들의 귀에는 분명 ‘드’이다. 그처럼 우리는 and의 음절수를 2로 보는데 영미인들은 1로 보니 그런 셈법의 차이는 모음 ‘으(ㅡ)’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글에서 ‘ㅡ’는 천지인 기본 중성 중 하나로 매우 중요시되는 모음이다. 하지만 영미인들은 분명 ‘으’ 발음을 하기는 하는데 그건 모음으로 안쳐준다. 왜 안쳐줄까? 그들이 쓰는 로마자에 ‘으’에 해당하는 모음자가 없기 때문이다. 왜 없을까? 몽골 파스파 문자에 ‘ㅏ’ 모음자가 없듯, 로마자에서는 ‘으’에 해당하는 모음자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리는 있는데 그에 해당하는 글자가 따로 없어 영미인들에겐 ‘으’ 모음에 대한 인식이 없다.

음소라는 말이 있다. 음운론상의 최소 단위를 말한다. 영미인들은 dog의 g를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음소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dog의 g를 ‘ㄱ’과 ‘ㅡ’로 분해해버린다. 무슨 말이냐? 우리 글자가 로마자보다 더 첨단이라는 얘기다. 인간의 말소리를 바라다보는 우리의 시선이 더 탁월하다는 얘기다. 영명하신 세종대왕 덕분에···.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성(聲)’과 ‘음(音)’을 구별했다. ‘초성, 중성’이라고 했지 ‘초음, 중음’이라고 하지 않았다. ‘聲(성)’자는 磬(경쇠 경)과 耳(귀 이)의 합자이다. 경쇠는 틀에 옥돌을 달아 뿔 망치로 쳐 소리를 내는 아악기이니, 聲은 귀에 들리는 편경과 같은 ‘악기 소리’에서 나아가 널리 ‘소리’를 뜻한다. 그에 비해 ‘音(음)’은 ‘言(말씀 언)’의 ‘口(입 구)’ 자 안 목구멍 부위에 가획을 하여 사람의 입․목구멍에서 나는 언어적 소리를 나타낸다.

<사진>에서처럼 ‘어제훈민정음’ 편에서는 초성, 종성, 중성을 언급한 다음 “무릇 훈민정음 글자는 반드시 (초성, 중성, 종성을) 합쳐 써야만 하나의 음을 이룬다”고 천명하였다. 이 법칙에 따르면 and를 ‘앤ㄷ’로 쓸 수 없다. ‘ㄷ’ 만으론 하나의 음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strong을 ‘ㅅㅌ롱’으로 쓸 수 없다. ‘ㅅ’과 ‘ㅌ’ 만으론 하나의 음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로마자에선 상상도 못하는 중성 ‘ㅡ’를 집어넣어 ‘앤드, 스트롱’ 식으로 쓴다.

무릇 최첨단이 후진 시스템을 좇을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당당히 영미인들에게 “strong의 s와 t에는 사실 ‘으’ 모음이 포함돼 있다. 빨리 한 숨에 읽는다 해서 그 모음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너희들은 strong을 뭉뚱그려 1음절이라 하는데 우리가 볼 때는 너희가 ‘으’ 모음자를 못 만들어서 그렇지 사실 모음이 셋 있는 3음절이다”라고 얘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