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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은나라 ‘제신홍도관’이 한국으로 온 까닭은?

등록 2019-08-27 09:44:14   최종수정 2019-09-02 09: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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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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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신홍도관 명문과 H11:1 제신갑골복사. “癸巳(계사)일에 문정과 제을의 종묘에서 제를 지내다”는 공통의 기록으로 서로를 증명함.

【서울=뉴시스】 은(殷=商)나라의 마지막 천자 제신(帝辛=紂王)이 남긴 홍도관 명문, ‘제신점성도문(帝辛占星陶文)’의 내용은 기존 갑골문과 어떤 점이 다른가? 2012년 7월 5일자 대만 신생보의 특집보도 ‘은상 옛 유물 한국에 현신, 점성홍도관 출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899년 중국대륙 은허 유적지에서 발견된 갑골문 이후 지금까지 약 15만 편의 갑골이 출토돼 세상에 전해 내려왔다. 그런데 그 중 대부분은 귀갑수골 위에 새겨진 것이고 또한 대부분은 파손된 불완전한 것들이며, 도기에 새겨진 갑골문은 드물 뿐만 아니라 물건이 거의 완전한 것은 더욱 보기 어렵다. 그리고 갑골문 내용을 연구해보면 점복으로써 길흉을 묻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아직까지 별점 사실(史實)을 기록한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제신홍도관의 출토는 상왕조 문화의 새로운 영역에 대한 또 다른 일개 연구를 개창한 것과 같다. 특히 홍도관 상에 새겨진 갑골문은 제신이 별자리 모양을 관찰하고 서주 무왕을 토벌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어, 가히 일건의 세계급 문화유산이다.” 

제신홍도관의 기록은 3천여 년 전 은나라와 서주 간의 결전을 앞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제신점성도문에 따르면, 제신은 금성이 대낮에 출현한 흉조에 이은 서백후 주무왕의 침공을 국가위기 상황으로 판단했다. 그는 해결을 위해 조왕 문정(文丁←文武丁)과 부왕 제을(帝乙)에게 제를 지낼 지를 묻고, 또 28수의 첫 별자리인 각성(角星)에 대한 별점을 진행했다.

참고로, ‘금성’의 다른 이름은 ‘태백성’이다. 일본의 오자와 겐지(小沢賢二) 교수가 “중국이 목성을 ‘세성’이란 명칭으로 확정한 시대는 전국시대”라고 밝힌 것처럼, 금성은 태백성 이전의 명칭이다. 금성의 대낮 출현을 의미하는 고천문 용어 ‘금주현(金晝見)’은 후대에는 ‘태백주현’으로 불렸다. ‘태백주현’은 금사(金史)에서는 ‘태백현’으로, 위서(魏書)에서는 ‘금주현’으로도 나타나는데, 제신점성도문에선 ‘晝(낮 주)’자가 생략된 ‘金見(금현)’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위 ‘금성 출현’ 사건과 관련된 기록이 BC 239년 진나라의 재상 여불위가 빈객 3000명을 모아 편찬한 ‘여씨춘추’ 신대(愼大) 편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주무왕은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에 사로잡은 두 명의 포로에게 ‘너희 나라에 어떤 요사한 일이 있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한 명이 ‘별이 대낮에 나타나고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렸습니다(晝見星而天雨血)’라고 답했다.” 이는 제신점성도문의 ‘금성의 대낮 출현’ 기록과 서로 부합한다. 따라서 제신홍도관 명문과 여씨춘추의 기록은 상호 증명, 교차 검증된다.

한편, 제신점성도문의 “조왕 문정과 부왕 제을에게 巳日에 석제를 올리면, 우리 군대가 승리할 수 있을까요?” 부분은 중국학계에서 목야대전 직전 제신이 남긴 것으로 인정한 H11:1 제신복사의 “계사일에 문무정(=문정)과 제을의 종묘에서 제사를 올렸다(癸巳彝文武帝乙宗)”라는 기록과 서로 일치한다(‘무왕극상 전 제신점성도문과 H11:1 제신복사’ 논문 참고).

<사진>에서처럼 제신홍도관 명문과 제신갑골 H11:1 복사는 상호 증명하는 관계이다. 즉, 현재 중국에 있는 ‘제신갑골 H11:1 복사’는 제신이 서주 무왕과의 전쟁 전에 선왕들의 보우를 받을 목적으로 희생제를 거행한 기록임이 제신점성도문에 의해 입증된다. 반대로 H11:1 복사를 통해 제신점성도문의 ‘巳’는 ‘癸巳’의 생략형임이 증명된다. 

승리를 위한 제신의 노력과 기원에도 불구하고, 천명이 주나라로 옮겨가 BC1018년 2월 22일 은나라는 패망한다. 그러나 그 해 은나라 제29대 천자 문정의 아들 기자에 의해 기자조선이 건국돼 은나라의 맥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로부터 2461년 후 세종은 은문자를 원류로 한 고전을 기반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제신홍도관이 이 땅에 온 까닭은 조상들의 찬란한 문물과 역사를 복원하여 진정한 문명국을 이루라는 뜻의 길조가 아니겠는가?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heobul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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