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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집현전 학자들도 인정한 훈민정음의 독창성

등록 2019-10-0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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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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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설총의 이두는 한자를 그대로 쓰지만, 언문은 그 합자한 글꼴이 한자의 자형과는 다르다”, 바꿔 말해 ‘독창적’이라는 최만리 등의 증언.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반포 573돌에 즈음하여 쉽고 편리한 글자를 만들어주신 세종대왕께 깊이 감사하면서, 창제 당시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의 독창성에 대해 언급한 ‘세종실록’ 부분을 살펴본다.

첫째, 1444년 양력 1월 19일의 기사로 훈민정음의 창제 사실을 알렸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 그 글자는 ‘고전(古篆)’을 본떴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뉘는데,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룬다. 무릇 ‘문자(文字: 한자)’ 및 우리나라 ‘리어(俚語: 토속어)’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으며,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점만 취한 것이나 전환이 무궁하니, 이를 일러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둘째, 1444년 양력 3월9일의 기사로,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 7명의 훈민정음에 대한 검토 소견 기록이다. “신들이 엎드려 살펴보옵건대, 언문 제작이 지극히 신묘하와 물건을 창조하고 지혜롭게 운용하심은 천고에 뛰어나시옵니다. 언문의 자형은 비록 ‘옛 전문(古之篆文)’을 본떴다 할지라도 용음과 합자는 모두 옛것에 반하니 실로 근거할 데가 없사옵니다. 설총의 이두는 비록 음이 다르다고 하지만, 음에 따르거나 뜻풀이에 따라 읽는 우리말 어조사와 ‘문자’가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는데, 이제 언문은 여러 글자들을 합하고 병서하는 것이 그 음과 풀이를 변경시켰고 ‘문자’의 자형이 아닙니다.”

셋째, 1446년 양력 10월 19일자 기사로, 훈민정음 해례본 중 임금과 정인지의 서문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유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에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실어 펴지 못하는 자들이 많으니라.” “훈민정음 28자는 상형이되, 그 글자들은 ‘고전(古篆)’을 본떴다.”

훈민정음에 관한 최초의 기록들인 위 세 내용에는 모두 ‘문자’와 ‘고전’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쓰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자’는 ‘한자’와 같은 말이고, ‘고전’은 한자의 기원인 대전(大篆)에서 소전(小篆)까지를 뜻한다. 위 기록들에 따르면, 1444년 1월 훈민정음이 세종대왕에 의해 창제된 뒤, 임금으로부터 그와 관련한 브리핑을 들은 신하들은 대부분 집현전 학자들이었다. 그때 더욱 상세한 설명서를 만들라는 명을 받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작성한 정인지 등 총 8명은 강희안을 제외하고 모두 집현전 학자들이었다. 앞선 편에서 말한 것처럼, 훈민정음의 창제는 예찬하나 그 국가적 시행은 반대한다는 상소문을 올린 최만리·신석조·김문·정창손·하위지·송처검·조근 또한 모두 집현전 학자들이었다.

최만리 등의 상소문을 읽고 세종은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너희들이 이르기를, 음을 쓰는 것과 합자가 모두 옛것에 반한다고 하였는데, 설총의 이두 또한 음이 다르지 않느냐?”

이에 대한 최만리 등의 답변을 풀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설총의 이두는 우리말 ‘하거든’을 나타내기 위해 ‘爲(할 위)’자를 써서 ‘爲去等’이라 하여 비록 그 한자음을 다르게 바꿨다고 하나, 음독이나 훈독하는 우리말 어조사와 ‘한자’가 원래 자형 면에서 서로 같습니다. 그런데 언문 27자(28자의 잘못)를 보면 그 음과 풀이를 본래 古篆과는 다르게 변경시켰고, 초·중·종성을 합자하고 병서한 언문 글꼴들은 한자의 자형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를 바꿔 말하자면, 고전의 ‘ㅂ(입 구)’자에서 훈민정음 ‘ㅂ’과 ‘ㅁ’을 취했으나 그 자음은 발음기관에 맞게 새로 창조, 달리 적용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세종대왕의 위대한 독창성이다.

설총이 만든 이두는 ‘爲去等(하거든)’처럼 음과 뜻을 변통하여 읽어도 자형은 한자 그대로이다. 하지만 훈민정음 28자는 비록 고전에서 취했더라도 <사진>처럼 그 합자한 방식과 글꼴이 한자와 다르다는 집현전 학자들의 말은, 훈민정음이 그간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독창적 방식으로 제작된 표음문자라는 최초의 증언이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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