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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ㅿ(반치음)’의 음가는 ‘s’

등록 2019-11-1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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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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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반치음(ㅿ)은 반은 치음이고 반은 설음인 소리를 말한다. 반설음(ㄹ)도 마찬가지다. 반치음처럼 절반은 치음, 절반은 설음으로 구성돼 있다. 그 둘의 구성 성분이 똑같은데 반치음과 반설음으로 나뉘는 기준은 ‘겉으로 드러난 소리’이다. 즉, 겉으로 드러난 소리가 치음이면 반치음이고, 설음이면 반설음이다. 남성 내에 여성성이 있고 여성 내에 남성성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를 품은 신비로운 소리들이다.

‘훈민정음해례’ 편 2장 앞면의 문구 “半舌音ㄹ, 半齒音ㅿ, 亦象舌齒之形”에 대한 국어학계의 공통된 기존 번역은 “반설음 ㄹ과 반치음 ㅿ자 또한 혀와 이의 모양을 본떴다”다. 나아가 “반설음 ㄹ은 혀의 모양을, 반치음 ㅿ자는 이의 모양을 본떴다”로 ‘혀’와 ‘이’를 분리하여 해석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운경(韻鏡: 초간 1161년)’에서의 설명과 맞지 않다. 그렇다면 훈민정음 해례본의 설명이 틀린 것일까?

아니다. ‘亦(역)’자를 무의식적으로 ‘또 역’으로만 보는 기존 번역이 잘못됐다. 이 문구에서의 ‘亦(역)’자는 ‘또한’이 아니라 ‘모두(總也)’의 뜻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위 문장은 “반설음 ㄹ과 반치음 ㅿ자는 모두 舌齒(설치: 혀와 이)의 모양을 본떴다”가 올바른 해석이다. 그래야 운경과 모든 사항이 부합된다.

‘운경’에서 밝힌 것처럼 반치음은 뒤에 설음을 대동하고 있는 치음이다. 그리고 해례본의 설명처럼 ‘혀’와 ‘이’를 동시에 상형한 것이 ‘ㅿ’자이다. ‘이(ㅅ)’를 앞세우되 ‘혀(ㄴ)’를 뒤에 절묘하게 감췄다.

앞서, <우리말에 생생히 살아있는 ‘반치음(ㅿ)’> 편에서 설명한 ‘웃음’처럼, ‘옷을 벗어’를 발음할 때 나는 두 개의 ‘ㅅ’ 비슷한 소리가 바로 ‘ㅿ’ 소리다. 우리가 ‘소리’라는 말을 발음할 때 초성 ‘ㅅ’은 혀끝이 아랫니 뒤쪽에 닿아 있게 된다. 그러나 ‘옷’과 ‘벗’을 발음할 때 종성 ‘ㅅ’은 혀끝이 아랫니에서 떨어져 혓소리 ‘ㄴ, ㄷ’처럼 윗잇몸 쪽으로 올라가버린다. 그런 상태에서 ‘옷’이 ‘을’과 결합하고 ‘벗’이 ‘어’와 결합하면, 그 시옷 소리들은 ‘소리’의 초성 ‘ㅅ’과는 달리 혀가 설음과 같은 모양의 반치음으로 변해 ‘오ㅿㅡㄹ’과 ‘버ㅿㅓ’가 된다. ‘짓다→짓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 음가는 ‘지ㅿㅓ’이다.

한편, 반치음은 반설음과 그 구성요소가 같기 때문에 어음이 변하는 과정에서 반설음으로 ‘성(聲) 전환’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중국어에서 일어났다. 고대중국어에서는 우리와 같은 소리였던 반치음은 현대중국어 보통화(普通話)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모조리 반설음 r로 변했다. 같은 중국이지만 광동어에서는 우리나라 한자음처럼 반치음이 목구멍소리 ‘ㅇ’으로 변했다. ‘어제훈민정음’ 편에서 “ㅿ은 穰(풍년들 양)자의 초성”이라 했는데, ‘양’은 현대의 변음이고, 그 정음은 ‘샹’과 유사하되 혀끝 모양이 설음과 같은 반치음 소리다.

혀의 모양과 위치, 소리 등을 종합해 볼 때, 우리말 반치음(ㅿ)은 영어 ‘s’에 해당되는 소리다(증거: pronuncian.com/pronounce-s-sound).

그럼 우리말 ‘ㅅ’은 영어로는 무슨 글자일까? 엄밀히 말해, 영어에는 ‘ㅅ’에 해당하는 로마자가 없다. 그러니 새로운 로마자를 만들지 않는 이상, 통합적으로 ‘ㅅ’도 s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입장 바꿔, 우리가 영어 r과 l 소리를 한글로는 구분치 않고 ‘ㄹ’로 통합해 쓰고 있듯이.
 
훈민정음에는 z에 해당하는 글자는 없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 s는 무성음이고 z는 s에 대응하는 유성음이다. s에 해당하는 훈민정음 글자가 ‘ㅿ’이라는 것에 착안하여 <사진>에서처럼 새로운 글꼴을 제시해본다. ‘갖다’의 응용형인 ‘갖어→가져’의 ‘ㅈ’ 소리는 반치음과 마찬가지로 혀끝이 아랫니에서 떨어져 윗잇몸으로 올라가되, 단음 초성 ‘ㅈ’과는 달리 유성음으로 변하니 바로 그 음이 영어 z 소리에 해당한다. 제시한 z에 해당하는 글꼴은 무성음인 ㅿ과 조화된다. 또 ‘좇아→조차’처럼 ‘종성 ㅊ’에 이은 설음성 ‘ㅊ’ 자형도 한 번 제시해본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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