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이슈진단 '성매매 특별법 6년, 무엇이 달라졌나'-내리막 집창촌 "수입, 반의 반토막"

등록 2010-10-12 11:16:52   최종수정 2017-01-11 12: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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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준형 기자 = 지난달 23일은 우리나라 인권사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지 이날로 꼭 6년이 되기 때문이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6주년을 맞아 서울 용산구 집창촌을 찾았다. 집창촌 건너편 용산역에서 막차를 놓친 수십 명의 사람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용산역사와 도로 하나를 두고 진을 치고 있는 20여 곳의 포장마차에는 수백 명의 남녀가 경쟁적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간신히 엉덩이만 걸칠 수 있는 포장마차 의자에 앉아 급조된 안주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무더위가 가고 날씨가 선선해져서인지 사람들의 모습에는 약간의 활력이 넘쳤다.

 이와는 반대로 용산역 집창촌의 분위기는 스산함 그 자체였다. 바로 옆 도로 포장마차를 가득 채운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는 성매매업소의 영락을 더 강조하는 듯했다.

 만취해 목적을 알 수 없이 갈지자걸음을 하던 한 남성이 ‘청소년출입금지’라고 쓰인 입간판을 넘어 집창촌 앞 대로로 쓰러지듯 진출했다.

 홍등 아래에 줄지어선 성매매여성들이 그가 자신들의 업소 앞을 지날 때마다 파도타기처럼 “오빠” “놀다 가”를 외쳤다.

 의도적으로 몸매를 노출시키려 애쓴 흔적이 역력한 옷을 입은 성매매 여성들은 홍등 조명 아래에서 예뻐 보였다. 이들은 시간을 빨리 보내버리려는 듯 쉴 틈 없이 담배를 피워댔다.

 업소 귀퉁이 종이컵에 가득 쌓인 담배꽁초와 연신 울려대는 휴대폰 벨소리, 문자 알림소리는 그녀들의 적막한 시간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때때로 지나가는 남성들을 향해 “오빠, 놀러와요”를 기계적으로 외쳐대기도 했다. 성매매 여성들을 ‘아이쇼핑’만 하고 지나치는 차들의 뒤꽁무니에 익숙한 듯 주먹감자를 먹이기도 했다.

 이날 150개에 달하는 업소는 단 80여 곳만이 불을 밝혔다. 성매매 여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들어간 남성은 새벽 무렵 20명 안팎에 불과했다.

 과거 해가 떨어지면 일제히 불을 밝히고 수많은 남성들을 유혹하던 집창촌에 성매매특별법은 직격탄이었다.

 성매매 여성 A씨(25)는 “예전부터 일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달에 2000만~3000만 원은 그냥 벌었다”며 “요즘엔 손님이 많이 줄어 전에 비해 절반의 수익도 벌지 못한다”고 말했다.

 업주 B씨(55·여)는 “성매매특별법 실시 이후 한창 때의 반에 반도 못 번다”며 “딱 보기에도 손님이 없지 않냐”며 반문했다.

 비슷한 시간대 성북구 하월곡동 속칭 ‘미아리 텍사스촌’ 대로 한 가운데서 자율정화위원회소속이라는 C씨(51·여)가 연신 담배를 피우며 정부와 여성단체 탓을 했다.

 미성년자를 상습적으로 고용한다는 오명 속에서 지난 6년간 미아리 텍사스촌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는 게 C씨의 설명이었다.

 경찰의 감시망이 유독 심한 이곳에서 호객행위는 늙은 ‘마담’들의 차지다. 골목에 들어서자 마담들이 지나가는 남성들을 익숙한 몸짓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성매매여성들은 업소 안에서 ‘수동적으로’ 손님을 기다릴 뿐이었다.

 마담들이 드문드문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곧장 달려가 아가씨들 신체사이즈 등을 소개하며 남성들을 유혹했지만 매번 시도에 그쳤다.

 어디서 내다버렸는지 모를 쓰레기더미와 하수구 냄새가 뒤섞인 악취가 코를 자극했다.

 검은색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민 성매매 여성 D씨가 경찰을 향한 불만을 쏟아냈다.

 D씨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재개발 사업이 끝나기 전까지 남은 기간 동안만이라도 돈 좀 모아서 터를 닦게 해 줬으면 한다”며 “오죽하면 여기서 몸을 팔고 있겠나. 여기 일했던 여성들은 나가서 다른 일 할 처지가 못돼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성매매 여성으로 시작해 이제는 업주가 됐다는 E씨(35)는 “오피스텔, 키스방, 대딸방 같은 유사성행위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며 “그런 곳을 단속 안하고 우리 같은 집장촌은 단속하기 쉽고 실적내기 쉬우니깐 경찰들이 우리만 단속한다”고 푸념했다.

 집창촌을 순찰하던 한 경찰은 “옛날에는 남자들이 갈 수 있는 집창촌이 몇 군데뿐이었지만 이제는 어디서든지 성매매를 할 수 있으니까 이런 곳은 영업이 안 된다”며 “앞으로 이 일대가 재개발 되면 1~2년 내에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대표적인 집창촌인 동대문구 전농동 속칭 ‘청량리588’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지난해부터 폐업러시가 본격화되면서 1년여 만에 업소 수는 한창 때의 5분의 1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성매매 여성이 백주대낮에 스토커 남성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마저 발생해서인지 분위기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성매매 여성들은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지친 듯 삼삼오오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한 여성은 “추석 때 고향에 갔었냐”는 질문에 “당연히 갔었다”고 답하며 밝게 미소 지었다. 손님에게 호객행위를 할 때 보였던 미소보다 훨씬 환해 보였다.

 성매매업소 관리자 F씨(31)는 “요즘 장사가 안 돼 (이곳을) 떠난 업주가 많다”며 “업주는 월세만 받고 성매매 여성이 월세내고 업주 역할까지 하는 가게도 있다”고 청량리 588의 현실을 전했다.

 그는 또 “외모가 출중한 여성은 강남의 안마시술소나 오피스텔 등 신종 성매매업소에서 일한다”며 “이곳은 (갈 곳이 없는 성매매 여성이 택하는) 마지막 길”이라고 말했다.

 보통 때 같으면 가장 손님이 많을 시간이라는 오전 2시께지만 손님의 자취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성매매여성들에게 이날 유일한 친구는 담배와 핸드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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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197호(10월18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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