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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었는가? 그럼 다 포기해라…필립 로스 '유령퇴장'

등록 2014-08-18 07:11:00   최종수정 2016-12-28 13: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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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오제일 기자= 유령 퇴장 (필립 로스 지음 /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펴냄)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82)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로스의 작가적 분신인 ‘네이선 주커먼’이다.

 로스의 작품에 ‘주커먼’이 처음 등장한 건 1974년 출간된 ‘남자로서의 나의 삶(My life as a Man)’에서다. 여기서 ‘주커먼’은 직접적인 화자가 아니라 주인공이 쓴 단편소설 속 주인공인 작가로 나왔다.

 1979년 ‘유령작가’ 때부터 ‘주커먼’은 직접적인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후 30여년간 ‘주커먼 언바운드’(1981) ‘해부학 강의’(1983) ‘프라하의 주연’(1985) ‘카운터라이프’(1986) ‘미국의 목가’(1997)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 ‘휴먼 스테인’(2000) ‘유령 퇴장’(2007)까지 총 9편의 작품에 나온다. 로스는 이 9편을 묶어 ‘주커먼 시리즈’라 이름 붙였다.

 ‘주커먼’은 로스와 마찬가지로 유대인 작가다. ‘유령작가’에서 ‘주커먼’은 갓 단편소설 하나를 발표한 스물세 살의 문학청년으로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을 억압과 규제로 묘사하는 작품을 써서 가족과 유대인 사회와 충돌한다. ‘주커먼 언바운드’에서는 성(性)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발표해 미국 사회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프라하의 주연’에서는 1976년 공산당 체제의 프라하에 들어가 그 현실을 체험하고 ‘미국 3부작’에서는 차례로 베트남전과 매카시즘, 지퍼게이트를 겪는다.

 그리고 ‘유령 퇴장’이다. 로스의 2007년 작이자 ‘주커먼 시리즈’를 닫은 ‘유령 퇴장’이 번역, 출간됐다. 신체 기능도 기억력도 상실한 일흔한 살 노인이 돼 200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재선에 성공하는 것을 목도하는 ‘주커먼’의 이야기다.

 “나는 나의 고독한 생활방식을 정복한 터였다. 그런 삶이 주는 시련과 만족감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삶의 한계에 내 욕구의 범위를 맞추었으며, 조용하고 늘 그대로이고 예측 가능한 자연과 접촉하고 독서하고 집필을 하기 위해 흥분되는 일이나 친교, 모험, 반목 같은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46쪽)

 의지와 상관없이 새어나오는 오줌이 적신 면패드를 하루에도 수차례 가는 노쇠한 ‘주커먼’은 우연히 마흔살 어린 ‘제이미’에게 첫눈에 매혹된다. 관계의 발전이 불가할 것을 알면서도 관심은 커지고 자신과 ‘제이미’의 가상 대화를 상상, ‘그와 그녀’라는 희곡까지 쓴다.

 “나는 실성하는 게 어떤 것인지 일흔한 살에 배우고 있었다. 아직도 자아 발견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164쪽)

 ‘제이미’의 친구 ‘클리먼’의 등장과 그의 난공불락인 젊음 앞에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는다. 찰나의 매혹도 덧없다. 단 한 번 만났을 뿐이지만 결혼까지 꿈꿨던 여인 ‘에이미 벨레트’가 뇌종양 때문에 기억력도, 판단력도 온전치 못한 모습을 확인한다. ‘주커먼’의 뜻대로 되는 것은 드물다.

 “이제 나는 누구와도 절대 충돌할 필요가 없고, 뭔가를 탐하거나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하거나 이런저런 사람들을 설득하고 내 지나간 시절의 연극에서 배역을 찾으려 할 필요도 없는 곳으로 돌아왔다.”(364쪽)

 ‘유령 퇴장’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 ‘뱅코 유령’이 무대에 올랐다 내려갈 때 쓰인 지문 ‘유령 퇴장’에서 제목을 땄다. 필립 로스는 2012년 절필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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