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진의 에세]용재수필(容齋隨筆)

등록 2014-08-18 13:56:18   최종수정 2016-12-28 13: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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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용재수필』은 남송(南宋)의 학자로 한림학사까지 지낸 홍매(洪邁 1123~1202)가 저술한 책이다. 1163년 그가 나이 만 40세가 되던 해에 집필을 시작해서 79세로 사망하기까지 39년 동안 모두 5부작(5筆), 74권(卷), 1229칙(則)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책을 썼다. 기술된 내용은 경서(經書), 사서(史書), 제자백가, 시사문한(詩詞文翰)은 물론 의술·복(卜)·천문·역산(暦算)·병법·지리·식물, 불교와 풍속, 민간신앙 등에 이르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친 사항들을 논의한 것들이다. 엄청난 양의 독서가 앞서야 하고 자유로운 발상과 날카로운 판단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홍매는 홍호(洪皓)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아들 4부자는 모두 문장으로 당대는 물론 후대까지 크게 이름을 떨친 학자들이다. 그는 두 형을 항상 좋은 경쟁상대로 의식하고, 집안에 잘 갖추어진 많은 장서들을 유년시절부터 탐욕스럽게 섭렵했다.  22세에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우수한 성적으로 등과한 뒤에도 독서는 평생 동안 변함 없는 그의 가장 중요한 일상사가 되었다. 저서로 『이견지(夷堅志)』, 『사조국사기(四祖國史記)』 같은 본격적인 학술서도 있긴 하지만, ‘수필’이라는 말을 책 이름에 최초로 사용할 만큼 ‘수필필기류(隨筆筆記類)’의 하나인 『용재수필』에 비상한 열정을 쏟았다.

 『용재수필』은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형식 상으로는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는 독립된 소론(小論)들을 모아 무작위로 배열한 수필필기류의 작품집이지만 내용면에서는 유서들과 상당히 다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수필필기류는 송대(宋代), 특히 남송(南宋) 시대에 들어서 엄청나게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장르이다. 그 원인은 작자와 독자층의 급증에 있었다. 목판 등에 의한 인쇄기술의 발달과 고문운동(古文運動), 구어문(口語文)에 의한 쉬운 문장의 파급이 이러한 결과를 촉진했다. 사대부들은 지금까지의 경학(經學)만으로는 긍지를 느끼지 못하고 많은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했다. 그리고 자유로운 표현 형식과 다채로운 범주의 내용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많은 독서인들이 남의 책을 읽는 독자로서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작가가 되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책이 폭발적으로 출간되다 보니 전반적으로 질이 떨어져, 어떤 책도 독자를 확보해서 일정한 평가를 받기가 아주 어려워 졌다.

 이러한 시기에 학자로 명성이 높은 홍매가 『용재수필』이란 이름의 책을 내놓게 되자 자기 책이 다른 유서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용재수필』은 총 5필(筆)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의 생존 중에 발간된 것은 『제4필』까지였다. 그는 『5필』을 제외한 각 필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자기가 글을 쓰는 동기와 자세를 밝혔다. 『1필』의 서(序)에서는 수필이라는 말이 첨으로 등장한다.

 “내가 늙고 게으른 탓에 독서를 많이 못하지만, 책을 읽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기록해둔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글들에는 앞뒤 순서가 없다. 이러한 글들을 모은 것을 수필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광범한 독서와 면밀한 분석에 의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그가 수필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경사(經史)의 전의(詮議), 시문(詩文)의 교정(校訂)이라고 했다. 홍매가 책을 읽을 때 가장 우선해서 하는 일이 그 내용의 신빙성, 즉 사실여부를 사관(史官)의 눈으로 분석∙판단하는 것이었다. 홍매는 『용재수필』 『1필』에서 『4필』에 이르도록 각 서문을 통해 이러한 그의 자세를 거듭 강조하는 것으로 다른 유서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용재수필』에 실린 소론들은 하나같이 서술이 간결하고 주장하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결론 부분은 독자가 통쾌감을 느낄 정도로 짧고 단호하다.

 서양의 ‘에세’ 또는 ‘에세이’는 16세기 몽테뉴의 『에세(Les essais)』에 의해서 비롯됐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같은 종류의 글이 12세기 홍매의 『용재수필』에서 수필이란 이름을 얻었다. 시대와 지역은 크게 떨어져 있지만 그들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하고자 한 일은 그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수필문우회 회장·뉴시스 상임고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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