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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금연이다②]국민 기호식품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

등록 2015-01-07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4: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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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몇 해 전부터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는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흡연이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 때 흡연은 지성의 상징이었고 담배 산업이 국가의 주요 산업이었다. 국가에서는 국산담배 이용을 장려하기도 했다. 더불어 담배는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는 기호식품이기도 했다.

 그러던 담배가 간접흡연과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몰리면서 이제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언제부터 담배 피웠나

 담배가 국내에 언제 들어왔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일설(一說)에 따르면 조정 대신들까지도 즐겨 피우던 담배는 임진왜란 후 광해군 10년(1618년) 때 일본 사람들을 통해 국내에 들어왔다는 게 통설이다.

 '인조실록'에는 "1616년 무렵 바다를 건너와 피우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고, 1621년 이후엔 널리 보급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씨를 뿌리고 수확해 사람들이 서로 팔고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사람들은 담배를 남쪽에서 온 신비한 풀이라는 뜻인 '남령초(南靈草)'라고 했다. 이후 개화기 때까지 '담바고'로 불렸다. 이렇게 불린 이유는 '타바코(tabaco)'라는 외래어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담배는 도입 초기부터 피우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빠르게 확산했다. '배가 아픈데 특효약'이라며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담배를 피웠을 정도였다.

 당시 비흡연자의 피해와 담배의 중독성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다. 어전회의 당시 대신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담배를 피우자 비흡연자였던 광해군은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을 명령했다.

 또 재상 김상용도 사위인 문신 장유(長維)가 담배를 너무 즐기자 이를 요초(妖草)라며 담배 생산을 금하도록 왕에게 상소하기도 했다.

 당시 '상사초(相思草·한 번 입에 댔다 하면 상사병에 걸린 듯 헤어날 수 없는 풀)'나 '요초(妖草·요망한 풀)'라며 담배의 중독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시대를 반영한 담배…세월 따라 이름도 가격도 천차만별

 담배의 이름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광복을 기념해 1945년 '승리'라는 담배가 국내에서 최초로 출시됐다.

 10개비 1갑당 3원에 판매한 이 담배는 하얀색 포장지에 파란색으로 제품명이 표기돼 있다. 당시 3원이면 버스 6구간을 탈 수 있는 금액으로 서민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1949년에는 국군 창설 기념으로 '화랑' 담배가 4원에 등장했다. 1981년까지 32년간 팔린 최장수 브랜드다. 군에서는 1인당 매달 15갑씩 공짜로 나눠 주기도 했다. '담배 일발 장전'이란 구호는 꿀맛 같은 휴식을 의미했다.

 1958년 국산 필터 담배 아리랑이 생산돼 판매됐다. 처음 필터는 종이와 천을 원료로 사용했지만 흡연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곧 수입 필터로 교체돼 18년 동안 최고급 담배의 지위를 누렸다.

 국가재건과 경제개발의 의지를 담은 담배들이 연이어 출시됐다.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을 독려하기 위해 직접 휘호한 '새마을'을 비롯해 ▲재건 ▲새나라 ▲상록수 ▲희망 등이 나왔다. 1962년에는 14개비의 '해바라기'가 출시됐지만, 해바라기가 소련의 옛 국화인 데다 14개비가 소련의 14개 연방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10개월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980년대에는 '솔'과 서울올림픽을 기념에 출시된 '88라이트'가 인기를 끌었다. 1988년 4월 한국담배인삼공사가 공식 출범한 뒤 '한라산'이라는 담배가 첫선을 보였다. 가격은 700~900원이었다.

 1990년대부터 1000원대로 올라섰다. 1994년 등장한 '디스'는 상대로 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 담배로 주목을 받았다. 앞서 1988년 국내 담배시장 개방 이후 수입 양담배들이 국내에서 본격 시판됐다. 1996년에는 국산 최초의 초슬림 담배인 '에쎄'가 출시되기도 했다.

 2004년에는 2000원이었던 담뱃값이 2500원으로 인상됐다. 이후 정부는 2015년 1월1일부터 지난 10년간 2500원에 묶여있던 담뱃값을 국민건강 증진과 흡연율을 낮춘다는 명분을 앞세워 4500원으로 대폭 올렸다.

 ◇건물 밖으로 쫓겨난 담배…금연제도 변천사

 한 때 담배 산업은 국가의 주요 산업으로 '국산 담배를 애용하자'는 운동까지 전개된 적이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흡연자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공공장소는 물론 음식점, 길거리 등 흡연자들이 설 땅은 점점 좁아졌다.

 또 담배 한 모금으로 '시름을 잊는다'거나 '대인관계를 형성한다'는 등 흡연자들의 주장은 부질없는 하소연이 됐다.

 정부는 금연정책 중의 하나로 담뱃값을 올리는 방안과 흡연 금지구역 지정 등을 시행했다. 

 1995년 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으로 청소년 대상 담배 판매가 금지됐고, 기존 연간 120회까지 가능했던 담배 잡지광고를 연간 60회로 제한됐다. 담배 자판기는 19세 미만 청소년 출입하는 곳에는 설치할 수 없게 됐다.

 1996년에는 대형 음식점이나 공공기관 등 다중 이용시설의 경우 흡연구역을 따로 지정하도록 했고,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 문구를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했다.

 200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금연구역이 실내에서 실외로 점점 넓어졌다. 2007년 5월 버스 정류장 시범금연구역 지정을 시작으로 2011년 3월 광화문 광장 등 실외로 금연구역이 점차 확대됐다. 당시 서울시가 앞으로 야외에서도 흡연을 규제하는 방안을 내놨다.  

 버스 정류장을 포함해 어린이들이 많은 놀이터와 공원, 학교 주변 200m 지역은 절대 금연구역으로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청계천, 광화문 광장 등에는 별도의 흡연구역 외에는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했다.

 2011년 4월 PC방과 만화방에서 흡연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고, 2013년 7월 150㎡ 이상 음식점이나 호프집 등은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흡연이 적발되면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했다.

 올해부터는 음식점의 면적에 따라 금연구역이 지정되던 현행 규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면적과 상관없이 모든 음식점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

 실내는 물론 길거리 흡연도 가능했던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다. 금연정책은 시대에서 따라 조금씩 변했지만, 흡연으로 다른 사람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을 막겠다는 기본 취지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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