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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국내 최대 장난감 수집가 '토이키노 뮤지엄' 손원경 대표

등록 2015-03-15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4: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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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예지 기자 = "미친 거죠. 병이에요 병."

 스스로 미쳤다고 말하는 이 남자. 30년 동안 40만개, 수십억원 상당의 장난감을 모았다. 국내 최대 장난감 수집가 '토이키노 뮤지엄' 손원경(44) 대표다.

 지난 11일 개관한 토이키노 뮤지엄. 서울 중구 경향 아트힐 2층에 위치했다. 전시실 2관에 들어서면 사람만한 크기의 스파이더맨 모형이 벽에 붙어있다. 무려 800여만원 짜리다.

 이 박물관은 손 대표의 장난감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40만개를 다 채우기엔 전시관이 좁았다. 5만여개만 선보였을 뿐 나머지는 손 대표 소유의 100평짜리 창고에 보관 중이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는 "없어지면 딱 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의 첫 장난감이 무엇인지 묻자 줄 지어 서있는 200여개의 미키 마우스 중 하나를 단번에 가리켰다. 아기 미키 마우스가 강아지 플루토를 안고 있는 손가락 크기의 장난감이었다.

 손 대표의 모든 관심은 '수집'에 있다.

 보통의 남성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소유하고 싶어하는 차를 가져본 적이 없다. 술도 안 먹고 여행도 잘 안간다.

 결혼은 마흔살에 했다. 일이 바빠 늦어졌단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장난감은 싫어하지만 손 대표의 일을 인정해주는 여자를 만난 것이란다.

 "2010년 중국 상하이 엑스포를 갔는데 현지 백화점에서 우리나라에 수입 안 되는 장난감을 발견한 거에요. 집사람한테 사정사정하고 조금만 사겠다고 졸랐죠. 결국 한숨 쉬더니 사라고 하더라구요. 집사람이 말도 안 통하는데 1시간 동안 서서 계산하는 사이 저는 신나게 장난감을 골랐죠."

 손 대표는 본인의 장난감에 대한 애정이 태생적이라고 말한다. 외국 출장을 자주 갔던 아버지는 항상 손 대표를 위한 인형을 사들고 돌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어른들이 TV 보는 것에 굉장히 관대했어요. 맨날 티비만 보니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엄청 좋아하게 됐죠. 그런데 그 TV 속의 주인공들을 아버지가 사다주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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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손 대표의 장난감 수집이 꾸준히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8살 때 부모가 이혼을 하면서 아버지로부터의 장난감 공급은 끊어졌다.

 이후부터는 스스로 사는 수 밖에 없었다. 용돈이 넉넉해지기 시작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하나 둘 사들이기 시작했다. 남대문 수입상가와 청계천 황학동 등지를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다행히 손 대표의 집에서 '다 큰 남자애가 왜 장난감을 모으냐'며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할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손 대표의 할아버지는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다. 손 선생은 벼루와 연적 같은 문방구, 향토 자료와 문헌, 탁본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귀중한 사료들을 수집했다.  

 그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물건 사서 모으는 것은 좋은 거다'라는 걸 느꼈던 것 같다"며 "어떤 물건에 가치를 두고 모으는 것과 그것을 통해 문화적인 일을 하는 것은 좋은 거라고 배웠다"고 설명했다.

 손 대표는 장난감을 그저 모으는데 그치지 않았다.

 수집한 장난감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생각하다 스튜디오 상품 촬영을 떠올렸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사진과 영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대학원도 갔다.

 대학교 졸업 작품으로 성인들의 장난감 수집을 다룬 '키덜트 스토리'라는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사진 스튜디오 겸 광고 회사를 운영하고 영상학과 사진학 시간제 강사도 했다.

 책상 위에 쭉 올려져 있던 장난감들은 어느 순간 장식장을 차지했다. 책장에서 책을 밀어냈고 방바닥을 굴러다니다가 집 전체를 메웠다. 결국 대학생 때 창업한 스튜디오까지 가득 채웠다.

 스튜디오에 찾아온 손님들이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2006년 삼청동에 토이키노 박물관을 열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장난감 보관도 할 겸 열었다고 한다.

 2007년에는 파주 헤이리에도 박물관을 열었다. 2010년 예술의 전당 '더 토이쇼'를 비롯해 백화점과 각종 전시관 등에서 35차례에 걸쳐 전시를 했다. 삼청동 박물관에는 7년 동안 35만명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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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수집광들과 손 대표의 차이는 '전시'에 있다. 손 대표는 수집보다도 전시에 방점을 찍는다.

 "보통 마니아들은 피규어에 접착제 쓰는 건 상상도 못하죠. 근데 저는 재밌게 전시하는데 더 큰 가치를 두다보니 잘 서지 않는 피규어나 인형에 접착제를 붙여 유리에 고정시켜요."

 손 대표는 큰 장난감보다 작고 아기자기한 장난감을 좋아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작은 장난감을 전시할 때 줄 지어 쭉 세워놓는 재미 때문이다.

 손 대표는 "장난감을 사는 것 자체도 재밌지만 그것을 가지고 무언가 꾸미고 전시하는 게 더 재밌다"며 "하나하나 개별적인 것 같지만 뭉치면 덩어리가 된다"고 강조했다. 

 손 대표에게 장난감은 모든 상상력의 원천이다. 집필과 전시, 사진 촬영의 소재가 된다.

 장난감이 상상력의 원천이라면 수집은 제2의 생산물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수집품을 전시하고 사진을 찍고 그것으로 책을 내거나 박물관을 차리는 과정을 손 대표는 즐긴다. 항상 수집 이후 다음 단계가 준비돼있다.

 손 대표가 장난감에만 미쳐있는 것은 아니다. 동화책부터 에세이, 음반을 비롯해 심지어 병뚜껑과 베어링 같은 기계 부품 등 고물까지 모은다. 모은 폐품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 예정이다.

 장난감이 '친구'에서 '일'이 돼버려 안타까울 때가 있다면서도 인터뷰 내내 손 대표의 답변은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일로 마무리됐다.

 최근 손 대표는 '더 토이 북'이라는 책을 냈다. 자신의 수집품들을 직접 찍은 사진들로 구성됐다. 추후 손 대표는 집필을 계속하면서 학생들을 상대로 장난감과 사진, 영화, 미술을 전반적으로 가르치는 아카데미를 만들 계획이다. 문화 잡지 창간도 고심하고 있다.

 최종 목적지는 '우리나라를 이끌 수 있는 문화 레시피'라고 한다.

 "제가 봤던 영화와 음악, 전시회, 장난감 등 모든 것을 다 녹아내는 용광로가 되는 거죠. 기존의 문화를 재해석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모은 동화책을 정리해서 엄마들을 위한 '동화책 다이제스트'라는 동화 추천 책을 만드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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