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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친일파가 가꾼 푸른산

등록 2015-04-05 08:03:00   최종수정 2016-12-28 14: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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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508>

 오죽하면 김동인(1900~1951)의 단편 제목이 ‘붉은 산’이다. 흰 옷과 더불어 구한말·일제강점기 헐벗은 우리나라를 가리킨 상징어와도 같다. ‘붉은 산’에서 별명이 ‘삵’인 사내는 죽어가면서 말한다. “저는 보고 싶어요. 붉은 산이. 그리고 흰 옷이.” 이 땅은 그렇게 온통 민둥산 천지였다.

 산림청이 제70회 식목일인 4월5일을 앞두고 캠페인송 음원을 시·도 교육청과 식목행사 관련 기관, 단체에 배포했다. ‘나무를 심자. 나무를 심자. 희망을 심자’는 식목일 캠페인송은 지난해 처음 만들었다. 아직은 ‘메아리’만큼 널리 퍼지지 못한 노래다.

 ‘메아리’는 1954년 유치환이 작사하고 김대현이 작곡했다.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 사는 메아리.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부르면 반가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 벌거벗은 붉은 산에 살 수 없어 갔다오.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 산에 산에 산에다 옷을 입히자. 메아리가 살게시리 나무를 심자. 메아리 메아리 메아리가 사는 산.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불러도 아무도 대답 없는 벌거숭이 붉은 산. 메아리도 못 살고서 가버리고 없다오.’ 여전히 ‘메아리’는 식목일의 노래나 다름없다.

 69년 전 미군정청 농무부 산림국은 식목일을 제정하면서 캠페인송도 선정했다. 그 해 식목일(식수기념일)에 경성여자기예학교 학생들이 합창한 ‘애림가(愛林歌)’다. 노인이 아니면 모르는 첫 식목일 노래다.

 ‘북으로 백두 남으로 한라 우리의 강산은 모두가 산일세. 울창한 나무는 나라의 보배니 심고 또 심어 큰 숲을 이루세. 한재(旱災)와 수재 나무로 막고 미묘한 경치도 나무로 덮나니. 울창한 나무는 나라의 보배니 심고 또 심어 큰 숲을 이루세.’

 이 ‘애림가’는 김화준(1890~6·25때 납북?) 덕분에 탄생했다. 1921년 맹산군을 시작으로 양덕군, 성천군, 평원군, 중화군, 안주군, 순천군 등 평안남도에서 17년 동안 조선총독부 군수를 지낸 친일파다. 평남 대동군수를 마지막으로 1938년에는 충청북도 참여관·산업부장으로 승진했고, 1941년 중추원 칙임참의에 임명돼 광복 시점까지 일제를 위해 일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애림가를 제정, 발표해 일반에게 애림사상을 고취했다”며 일종의 면죄부 발급을 자청한 당시 최고의 산림전문가이기도 하다. 반민특위는 “민족의식을 망각한 기회주의적이고 파렴치하며 가증한 악질 민족반역자”라고 일단 몹시 꾸짖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반민특위 특별검찰부는 김화준을 공소취소 조치했다. “산림 녹화사업을 통해 대한민국 건국사업에 다대한 공헌이 있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공로상을 받은 사실로 미뤄 보아 산림에 대한 유일한 기술자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고, 진정에 의해 비록 중추원 참의로 재직한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민족정신에 배반해 민족에게 해를 입힌 사실이 없을뿐더러 관직과 교육사업을 위해 분투한 행적이 현저하다”는 이유에서다. 사실이다.

 김화준은 임학(林學)을 연구한 산림기술자 1호다. “1945년 조선임업회장, 대한산림회연합회장이 됐다. 조림계획을 세웠고 산림보호원을 늘렸다. 건국기념 식목일 제(制)를 정했다. 각 학교 교과서에 산림에 관한 과목을 삽입해 산림지식 보급에 노력했다. 산림행정 민간협력단체 정비를 꾀하고 추진케 했다. 일반 애림계몽을 도모코자 언론계를 통해 선전에 노력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4월3일을 식목일로 택했다. 이전에는 ‘식목 방학’이 있었다. 새 학기를 맞이한 학생들에게 1주 정도 나무를 심도록 시켰다. 1946년 미군정청은 4월5일을 식목일로 정했다. 1949년에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에 따라 식목일이 공휴일이 됐다. 1960년 3월15일을 ‘사방(沙防)의 날’로 대체 지정, 공휴일에서 뺐다가 이듬해 식목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공휴일로 환원됐다. 2006년 기념일로 바뀌었고, 다시 공휴일에서 제외되기에 이르렀다.

 편집부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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