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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①]“내 미소는 그 의미가 아니에요”…직장 내 성희롱

등록 2015-05-26 09:55:56   최종수정 2016-12-28 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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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세계여성의 날  홍보 캠페인' 에서 시민들이 직장내 여성 성희롱 및 부당 대우 사례가  담긴 선전판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2015.03.0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한정선 기자 = 서울의 한 경찰서 소속 A경위는 현장에 배치된 지 석 달밖에 안 된 후배 여순경을 상습 추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서라는 번듯한 일터에서 자신의 명예와 직장을 잃고 민형사적 책임까지 지게 되는 직장 내 성범죄의  사례다.

 이들은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여성에게 손을 뻗는 것일까. 직장 내 성희롱이 주로 지위 상하관계 내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원인을 파악하기 쉬워진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전중환(진화심리학) 교수는 “남성이 직장에서 성희롱을 범하는 이유는 업무 상 여성의 미소와 친절 등을 다른 의미로 해석해서”라고 짚었다.

 비정규직이나 직급이 낮은 여성이 상사인 남성에게 보여주는 상냥한 말투와 미소 등을 ‘자신에게 반했음을 알려주는 사인(Sign)’으로 과잉 해석한다는 얘기다.

 직장 내 성희롱에는 권력적 요소가 크다. 생계가 달린 여성의 입장에서는 항의 하기 어려워 사건은 커진다.

 소리 소문없이 발생해 어느새 조직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직장 내 성희롱. 조직을 좀 먹는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요인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부터 예방방법 등을 통해 직장 내 성희롱을 제거 할 수 있는 방법을 들여다보자.

 ◇‘권력의 최하층’ 손쉬운 먹잇감 전락

#1. 지난 2월 외교부 여성 공무원 A씨는 해외 출장 중 간부급 공무원 B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상사 B씨는 귀국 전날 술을 마신 뒤 잠들어 있던 A씨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을 조사해온 경찰은 이달 7일 이 여성이 제출한 증거물(침대시트)에서 남성의 DNA 검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부 부처란 번듯한 직장을 가졌던 이 남성은 문제가 불거진 뒤 대기발령됐고, 이제는 처벌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2. 지난해 11월 30대 후반 직장여성 A씨는 회식 자리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다른 직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과장이 그녀에게 강제로 키스하려고 했던 것. “하지 말라”며 단호하게 거부했지만, 과장은 “평소 좋아했다”며 멈추지 않았다. 다행히 직원들이 자리로 되돌아오면서 상황은 자연스럽게 종료됐다. A씨는 과장과 계속 같이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 불편해 다른 상사한테 이런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회사 측은 조처를 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A씨에게 업무상 불이익을 줬다. 결국 A씨는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

 #3. 20대 직장여성 B씨는 상사로부터 “몸이 예쁘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었을 때가 좋더라” 등의 얘기를 자주 들었다. 상사는 실수인 것처럼 자주 신체 접촉을 시도해 그녀는 알아서 피해야 했다. 업무를 마친 뒤, 단둘이 회식을 하자고 해 처음 한두 번은 응했으나 자꾸 회식해야 하는 상황에 부담을 느껴 회사 선배에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선배는 그녀에게 “전에도 그의 성희롱에 시달리다 그만둔 여직원이 적잖다. 알아서 잘 피해라”고 귀띔했다.

 요즘 하루를 멀다고 터지는 것이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평등의 전화’ 상담 통계를 분석한 것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이 2013년 236건에 그쳤던 것에 반해 지난해에는 416건으로 두 배 급증했다.

 여성은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남이 내 몸에 함부로 손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배운다. 그러나 사회, 즉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가정교육과 정반대의 상황, 즉 남이 내 몸에 함부로 손대는 일을 겪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오히려 “왜 문제를 키우느냐” “조직에 잘 적응하려면 넘길 줄도 알아야 한다” 등의 반응을 듣기 마련이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합리화가 당연시 되는 것이 바로 직장 내 성희롱이다.  물론 성희롱 문제가 불거져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넘어가고 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가해남성은 결국 명예가 추락할 뿐만 아니라 직장도 잃고 만다. 나아가 민·형사적 책임까지 지게 된다.

 그럴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닐 텐데 왜 가해남성들은 그 큰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여성에게 손을 뻗는 것일까.

 전중환 교수는 “직장 내 높은 지위의 남성이 자신보다 낮은 직급의 여성의 허리를 툭 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을 권력으로 덮어버릴 수 있다는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는 “많은 사람이 (피해여성에게)‘성희롱이나 강제추행 등 행위를 당할 때 왜 거부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듯 묻는다. 하지만 신분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나 갓 입사한 사원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대항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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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세계여성의 날  홍보 캠페인' 에서 노동자연대 회원이'직장내 성희롱 OUT' 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거리 홍보를 하고 있다. 2015.03.03. [email protected]
 그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어른들의 말씀을 따르라’고 요구받는다”며 “직장에서의 위계는 업무에서의 지휘명령 관계에 그치는 것이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신분 관계와 얽혀 있기 마련이다”고 짚었다.

 아무리 업무 외의 일이라고 해도 상사의 지시를 거부하면 불이익이 돌아온다. 예를 들면 작금의 취업난 속에 자칫 직장을 잃을 수 있다.

 신 교수는 “직장에서 성희롱 가해자들은 마음 놓고 건드릴 만한 약점을 교묘히 파고든다. 사내에서 가장 약한 사람에게 접근한다. ‘얘는 내가 건드려도 뭐라고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는 철저히 의지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며 “반대로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똑똑한 여성의 경우 아무리 매력적이라 해도 자기 자신이 당할 수 있으므로 성희롱을 삼간다”고 설명했다.

  박선영·구미영·김혜진의 ‘기업 등 조직에서의 성희롱 예방체계 강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직장 내 약자들은 성희롱을 당하고도 문제제기를 하기 주저했다.

 공공기관에서 15년 이상 근무해온 40대 여성 A씨는 사내 고충상담원으로도 일한다. “나 정도 되면 아무도 안 건드린다. 무서운 것을 알기 때문에 매우 조심한다”는 그는 “보통 계약직이나 인턴이 성범죄 타깃이 되기 쉽다. 특히 인턴은 대부분 20대 여성인 데다 예쁜 애들을 뽑기 때문에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며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인턴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내게 와서 고충을 털어놓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고 단언했다.

  A씨는 “한 인턴에게 ‘술을 못 마신다면서 왜 받아먹느냐’고 물어보니 ‘아시잖아요. 저는 지금 졸업을 2년째 유예하고 있어요. 말이 대학생이지 한 학점 남겨 계속 (대학생 지위를)연명하고 있어요’라고 답하더라. 그런 약한 친구들이 자신에게 성적인 농담을 했다고 해서, 심하지 않은 신체 접촉을 했다고 해서 그 상사를 고발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인사권을 갖지 못한 지위에 있다고 성희롱의 가해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조직 내 평판이 좋은 사람의 경우도 평판이 일종의 권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A씨는 “한 무기 계약직 여성의 경우 사내에서 굉장히 점잖은 사람,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할 만한 말은 한마디도 안 하는 사람으로 익히 알려진 남성이 계속 치근덕거려 괴로워하더라”고 돌아봤다. 가해남성의 경우 평소의 점잖은 모습과 달리 술자리에서 농담이 진해지는 등 의외의 행동을 서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평소 사무실서 ‘농담을 주고받는 친한 사이’로 보인 데다 가해남성이 주위 평가가 워낙 좋아 여성은 피해를 보고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조직의 평화를 위해 참아라

 피해 여성이 적극적으로 맞서기 힘든 직장 내 분위기도 성희롱을 부추기고 있다. 대부분 회사가 사건을 드러내고 해결하기보다 은폐하려 한다. 아예 문제로 삼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 금융사 노조위원장은 “전문 경영인의 경우 본인 재임 기간에 그런 일들로 회사가 타격을 받는 것이 본인에게 치명타일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게끔 내부 단속부터 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것쯤은 문제도 아니다’ 식으로 이야기를 돌리고 싶어하는 것이 (전문 경영인의) 기본적인 생리다”면서 “그런 것이 문제가 되는 순간 본인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를 이겨내고 피해여성이 상사나 동료의 일탈행위를 고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더라도 사내에서 여러 가지 오해를 받으며 ‘왕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한 완성차 업체에서 근무하던 피해자는 약 1년간 직장 내 성희롱에 시달리다가 2013년 1월 이 사실을 회사에 알렸다. 그러자 ‘여자가 먼저 유혹했다’ 등 이상한 소문에 휩싸이고, 따돌림까지 받았다. 법적 절차가 진행되자 회사는 피해자를 도운 조력자들에게 ‘(피해자와)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하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구미영 부연구위원은 “성희롱 피해자 및 조력자에 대해 따돌림이나 괴롭힘 등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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