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의료/복지/여성

[이슈 진단②]직장 내 성희롱, 모두가 함께 ‘노(NO)’라고 말해줘야

등록 2015-05-26 09:56:06   최종수정 2016-12-28 15:03:16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한정선 기자 = 질문 1. 한 남성이 사무실에서 야한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여직원이 갑자기 들어와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이는 성희롱에 해당할까?

 질문 2.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을 옆에 앉혀 술을 따르도록 했다. 이는 성희롱에 해당할까?

 두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그렇다’다.

◇이런 것이 직장 내 성희롱

 고용노동부는 단순히 ‘지나가는 말’부터 포옹 같은 육체적인 접촉 등 다양한 언동이 권력의 불평등과 관련해 이뤄졌을 때 ‘직장 내 성희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직장 내’는 단순한 장소 개념이 아니다. 권력관계, 지위 상하관계 속에서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행동들을 구제하기 위한 개념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특정 신체 부위를 유심히 쳐다보거나 훑어보는 행위도 성희롱에 해당한다. 사회 통념상 성적 굴욕감을 유발하는 언어나 행동이 모두 포함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구미영 부연구위원은 “직장 내 성희롱은 성립 요건을 포괄적으로 적용해 성적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수위와 유형을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 내 성희롱, 가장 잘 해결하는 방법은

 일단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직장 내에서 제대로 처리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만약 자율적인 시스템이 잘 가동하는 회사라면 사건 발생 시 내부 고충처리담당관이 해당 사건을 잘 조사하고, 가해자에 의해 진심 어린 표현의 공개사과나 피해자가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사과가 이뤄져 내부종결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부 제도는 성희롱 사건을 해결하는 데 문제점이 많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직장 내 성희롱 방지정책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보고서는 “공공기관 내 자율적 해결제도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대부분 기관은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문제를 공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으며, 기관에서 성희롱 고충상담원을 형식적으로 지정만 했을 뿐 그에게 권한이 부여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민간 사업장 내 고충처리위원의 경우 사용자로부터 위촉받았기 때문에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근로자의 입장에서 고충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

 구 위원은 “한 공공기관의 경우 고충상담원의 인원, 성비를 표준적 지침에 맞춰 이행하고 있으나 상담원 3명 중 2명이 인사부서 소속, 1명은 근속연수가 15년 이상인 여성 직원이어서 신입 여직원이 마음 편히 고충을 토로하기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노조가 있는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남성 중심적인 경우가 많아 노조를 통한 사건 해결을 기대하기도 힘들다”고 짚었다.

 결국 직장 내에서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면 고용노동부 등 외부기관에 구제 신청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근로감독관은 진정이 제기되면 가장 먼저 해당 사업장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이 잘 이뤄졌는지를 살핀다.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지 않았을 경우 사업주에게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성희롱 구제 업무를 담당하는 고용노동부 여성정책과 관계자는 “근로감독관이 해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고 고백했다.

 즉 외부기관이 가해자에 대해 줄 수 있는 불이익은 사업주에게 가해자에 대해 경고·견책·감봉·전직·정직·해고 등 적절한 징계를 가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사업주인 경우를 제외하고, 외부기관이 성희롱 행위자를 직접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사실상 없는 것이다.

 사업주가 가해행위를 했을 때도 그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전부다.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을 한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성희롱 가해자에게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전부다.

 노동부 관계자는 감독관으로서 진정인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으로 ‘증거확보’를 꼽았다. “진정인이 성희롱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는데 증거 불충분 탓에 성희롱이 아니라고 판정되면 피해자를 비롯해 모두 힘들어지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새롭게 제시되는 대안들

 그렇다면 다른 해결책은 없을까. 다행히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associate_pic
 성희롱 예방교육 전문강사 B씨는 ‘외부기관을 위촉해 내부 고충을 받아주는 업무협약(MOU)’를 꼽았다. 그는 “운전 중 교통사고 발생 시 처벌 등을 받을 때 내가 형사 책임을 지게 되지만, 자동차보험회사에서 나머지 컨설팅을 한다. 그것처럼 만일 회사에 성희롱 문제가 터졌을 때 사내 절차가 있지만, 피해자가 비밀을 지키고 싶은 경우 회사와 계약된 외부기관에 연락해 해결을 의뢰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회사 측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다 사건이 종결될 때쯤 이런 사건이 있었다고 전하는 방식도 좋을 것이다”고 추천했다.

 그는 또 ‘성희롱 금지 근로계약서’도 제안했다. “어느 회사는 기호식품인 담배를 끊겠다는 약속도 근로계약서에 싣는다. 흡연자는 입사 시 ‘금연을 못 하면 회사를 나가겠다’고 근로계약서에 명기하고, 정기 검사를 통해 금연을 이슈화하는 것이다. 그런식으로 근로계약서에 ‘재직 중 성희롱을 하지 않겠다. 그런 행위를 하는 경우 퇴사하겠다’고 근로계약서에 명시할 수 있을 것이다.”

 ‘성희롱 예방교육’도 좋은 방법이다. 직장 내 성희롱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피해자 구제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것이 바로 예방이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성희롱을 할 경우 정직·해고 등은 물론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예방교육을 하면 남성들이 겁내는 경우가 많아 경각심을 일깨우는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중환 교수는 “남성이 여성의 친절을 과잉 또는 잘못 해석한다는 사실을 남성과 여성이 모두 잘 아는 것이 성희롱 빈도를 줄이는 데 도움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으면서 “‘여성들이 예의상 차린 웃음에 ‘은밀한 관심이 있구나’고 남성들이 김칫국을 먹을 확률이 여성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여성에게 잘 웃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을 보며 웃을 때 해당 남성은 그 여성이 자신에게 은밀한 관심이 있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여성들의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라는 얘기다.

 남성들은 여성 동료가 매력적으로 꾸미고 왔을 때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이에 대해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내게 잘 보이기 위해 저렇게 입고 왔다’는 생각을 버려라”고 조언한다. 그는 “여성들에게 ‘성희롱당할 빌미를 제공했다’ 식의 논리는 말이 안 된다. 여성 본인의 취향 때문에 꾸밀 수 있지 ‘나 보라고 저렇게 멋을 내고 왔다. 내게 은밀한 관심이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또 그는 “‘(너)오늘 예쁘게 하고 왔네?’ ‘(너는)꾸미면 예쁠 것 같다’ 등이 성희롱으로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는데도 가해남성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전했다.

 가해남성의 사과도 좋은 해결책이다. 남성이 “나는 별 뜻 없이 말을 던졌지만, 상대방이 불쾌했다니 사과한다”고 흔쾌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문화가 정착한다면 사건을 크게 키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 위원은 “실제 성희롱 피해 여성이 가장 원하는 것은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다”고 밝혔다.

 가해남성 중에는 성희롱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는 ‘피해자가 네 가족이라면?’이라고 되물으면 답이 달라지므로 이를 통해 반성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이화영 성폭력 상담소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족주의로 들어갔을 때 민감해진다. ‘네 여자 친구의 일이라면?’ ‘딸의 일이라면?’ ‘아내나 엄마의 일이라면?’이라고 물으면 ‘당연히 안 된다’고 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다”면서 “(질문을 통해) 그런 폭력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면 직장 내 성희롱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따로 또 같이 “노”라고 외쳐야

 성희롱 강도가 높아지기 전에 ‘부드럽고 단호하게 거부’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성희롱은 처음 발생했을 때 제대로 막지 못하면 지속해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피해 여성이 가해 남성에게 단호히 거부 의사를 밝혔을 때 해당 남성과 그 주변으로부터 현실적으로 “(너는)페미니스트다” “성격이 세다” 등의 강한 반발이 따르기도 쉽다. 전문가들은 그런 반발에 굴복해선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신 교수는 “그런 경우 ‘나는 괜찮지만, 예민하거나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성희롱이라고 문제를 제기 할 수 있다. 괜히 오해를 사지 말고, 상대방이 약간 불편해할 행동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당신을 위해 좋은 것이다’고 설명하라”며 “감정적으로는 반발하지만, 돌아서면 그런 여성들을 두려워하고 조심한다. 그러나 그때 여성이 그런 행위들을 그냥 감수하다 보면 남성은 이후 그런 행위를 일삼게 된다”고 조언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말하기 힘든 상황과 사람들도 있다.평가기간을 거쳐 정직원이 될 기회를 부여받는 인턴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성희롱에 노출되기 쉬우나 오히려 이를 거부하기가 더욱 힘든 사람들이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조직원들이 함께 ‘우리는 싫다’고 말하는 것을 예방책으로 꼽았다. “피해자가 ‘노(No)’라고 말하기를 기대하기보다 ‘위 세이 노(We say no)’를 해줘야 한다. 조직에서 어떤 사람이 성희롱이라고 오해할 만한 행위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따끔하게 충고해줘야 한다.”

 그는 “직장 전반의 구성원들 사이에 ‘우리가 감시하고 의식하고 막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며 “인턴들의 애로사항들을 직장 내 고충 상담관에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