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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혁모의 연기 선생 왈] 스윙을 가르치며 배우다

등록 2015-06-01 10:26:07   최종수정 2016-12-28 1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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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5년 전 어느 날,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아들과 야구공을 주고받으며 놀아주던 때의 일이다. 또래 아이들보다 더 강하고 묵직하게 글러브에 꽂히는 아들의 공을 받으며, 여느 부모처럼 ‘혹시 내 아이가 야구에 소질이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이후로 틈날 때마다 집 근처 학교운동장에 가서 캐치볼도 하고, 방망이를 들려줘 스윙 연습도 시키곤 해봤다. 헛스윙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쩌다 한 이라도 터지면 아주 멀리 날아가는 공이 아빠의 기대감에 불을 질렀다. 큰 키에 탄탄한 허벅지를 가진 아들을 바라보며 ‘아이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키워주자’ 생각했고, 동전 야구장에 가서 스윙을 가르쳤다.

 야구를 보는 것만 좋아했던 내가 스윙을 가르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연기 생을 오래 하다 보니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나름의 순서와 방법을 알고 있는 필자는 동전야구장에서 환전하며 아들에게 당부했다. “아들아, 공을 무서워하지 말고 타석을 지켜라. 날아오는 공을 놓치지 말고 끝까지 봐야 한다. 공을 치려는 욕심으로 무턱대고 방망이를 휘두르지 말고 날아오는 공에 방망이를 가져다 맞추기 위해 집중해보자.”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는 정말 무리한 요구였다. 아니나 다를까 타석에 들어선 아들은 빠르게 날아오는 공이 무서워 엉덩이를 뒤로 빼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더니 중심이 흐트러진 스윙을 남발하기만 했다. 이를 보다 못한 필자는 타석에 들어가 아들의 등 뒤에 붙어 서서 아들의 손 위로 방망이를 함께 쥐고 날아오는 공을 똑바로 보게 했다. 자꾸만 뒤로 물러서려 는 아들을 앞쪽으로 밀어내며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고 공을 방망이를 맞추는 번트 동작을 연속했다. 다음 주가 되자 어느덧 날아오는 공의 속도와 궤적의 패턴이 익숙해진 아들은 방망이에 공을 맞히기 시작했다. 이어 그다음 주엔 조금씩 왼손으로 방망이를 당겨 하프스윙을 하게 됐다. 한 달도 안 돼 혼자 공 6개 이상을 정확히 맞춰 그물을 흔들어대는 ‘기적’이 일어났다.

 어떤 분야이든 기본기를 다지는 공통된 방법은 지루하더라도 거쳐야 할 단계를 정확히 밟는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마음이 급해 무작정 하려고 하는 일은 한순간의 재미로 추억을 남길 수는 있어도 반복해 성공하는 실력으로 자리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과 결과를 비교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문제의 근원을 알아내고, 필요한 방법을 찾아 필요한 단계에 맞춰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 실력을 쌓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아들이 지금쯤 청소년 야구선수가 돼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타깝지만 아니다. 아들은 리틀야구단 테스트 과정에서 강력하게 날아오는 공에 얼굴을 맞아 다친 뒤, 야구용품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게 됐다. 어린 나이에 극복하기 쉽지 않은 큰 충격에 모든 흥미를 잃고 야구를 그만두고 말았다. 아빠로서 참 아쉽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성급했다는 생각이 몇 년 동안 떠나지 않고 있다. 필자는 연기를 가르치면서도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흥미를 잃지 않고 이해해서 해낼 수 있을 때까지 가르치고 지켜봐 준다. 조언해주며 기다린다. 그런 것들이 가르치는 사람의 기본 덕목이다.  

 안혁모 C.A.S.T. by iHQ 연기 아카데미 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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