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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②}“사실 나는…” 바이러스家의 총아 메르스가 보내온 편지

등록 2015-06-17 11:24:26   최종수정 2016-12-28 1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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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출입구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예방을 위한 열감지기가 설치돼 있다. 2015.06.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상황은 다음 두 가지일 것이다.

 내가 더는 한국에 존재하지 못하게 됐거나 당신 역시 다른 한국인들처럼 이미 내게 몸을 내주고 병상에 누워 있거나다.

 나는 ‘메르스’다. 본명은 ‘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다. 2013년 5월 국제바이러스 분류 위원회(ICTV)가 그전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만 여겨지던 내게 인간식 이름을 붙여줬어.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라고.

 내 친척 형님 중 ’사스-코로나바이러스(SARS-CoV)가 있지. 그런데 나는 사스 형도 나처럼 지역에서 이름을 딴 것인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즉 ‘증세’에서 이름을 가져온 것이더군.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쁘더라. 누구는 ‘지역’에서 이름을 따오고, 누구는 ‘증세’에서 이름을 따오고…. 하지만 어찌하겠어. 나보다 그 형이 더 많이 퍼져서 인류를 무척 괴롭혔으니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사스 형은 2002년 11월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에서 발생한 뒤, 홍콩을 거쳐 세계로 확산했어. 발열, 기침, 호흡곤란 등 나와 아주 비슷하지. 심할 경우 폐렴으로 진행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까지 말이야.

 2003년 7월 초 세계보건기구(WHO)가 타이완에 내렸던 사스 경계령을 해제할 때까지 그 형은 벨기에를 제외한 유럽 각국과 미국·캐나다 등 북미, 한국·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각국 등 전 세계 32개국에서 무려 8만3000여 명을 감염시켰고, 그중 10% 정도를 죽게 했지.

 치사율은 중동에서 40%에 달했던 내가 더 세지만, 전염력은 나보다 훨씬 강했으니 부러울 수밖에….

 내 이름에는 라틴어 ‘비루스(virus)’에서 유래된 영광스런 가문의 성(姓)인 ‘바이러스’가 들어있지. 비루스는 원래 ‘독(毒)’을 뜻하는 단어야. 그만큼 인류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가문을 얼마나 두려워해 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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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으로 인해 사회적인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1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에서 성동구보건소 관계자들이 메르스 방지를 위한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2015.06.11.  [email protected]
 그럼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얘기해줄게. 사스 형은 그 조부가 박쥐에서 사향고양이로 옮겨 갔다가 부친이 다시 인간에게 간 것으로 밝혀졌어. 우리도 그래. 우리 할아버지는 원래 박쥐의 몸에 살고 있었어. 그런데 박쥐가 단봉낙타의 피를 빨 때 낙타로 갈아탔지.

 그런데 이사하고 보니 낙타가 박쥐보다 몸집도 크고 영양분도 많아 살기가 좋았대. 그래서 아예 눌러앉기로 작심하고, 낙타에 살기 좋게 변이를 일으켰어.

 그래서 탄생한 게 우리 아버지야. 그렇게 낙타들을 오가며 오래 살았는데 아버지가 우연히 더 좋은 동물을 발견하셨어. 그게 바로 너희 인간이야.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며 지구를 지배하는 너희들. 아버지가 그러셨어.

 “멋지더라. 우리 아들이 살기에 제격이더라. 인간은 낙타보다 그 수도 많아. 바이러스는 자신이 침투한 숙주가 멸종해 버리기라도 하면 그 자신도 멸종되는데 인간은 오대양 육대주에 걸쳐 무려 73억 명이나 살고 있다니 우리 아들이 죽을 염려가 없겠다”고 생각하셨대.

 그래서 낙타를 키우는 목동의 몸으로 처음 이동했고, 그 속에서 인체에 알맞도록 변이했어. 그래서 탄신하신 분이 바로 나야. 내가 너희 몸 속에서 조금씩 세를 넓혀가면 - 그 기간을 너희는 ‘잠복기’라 부르면서 최장 14일이라고 말하던데. 글쎄다. - 그에 맞춰 너희 면역체계도 발동하지. 마침내 나와 너희의 사투가 벌어지는 거야. 그게 고열이고, 기침이며, 가래로 나타나.

 하지만 늘 그렇듯 나는 한 숙주에 만족하지 않아. 나는 나를 더 많이 퍼뜨려야 해. 내 세대가 살아남기 위해서도 절실한 거야. 문제는 2m. 그 안에서 다른 사람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단 말이지.

 내 친척 형인 ‘신종플루’는 공기를 타고 자유롭게 이동했는데 나는 아직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어. 사람들은 나처럼 치사율이 높지만, 감염력이 약한 바이러스가 거꾸로 치사율은 낮으나 감염력이 강한 바이러스와 만나 ‘대변이’를 일으킬까 두려워하고 있다지?

 사실 우리 가문이 꿈꾸는 것도 그런 것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아. 우리에게는 불행이고 인류에게는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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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중동 사스'로 불리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MERS-CoV)에 의한 중증급성호흡기질환으로 중동은 물론 북미, 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감염자가 나오면서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사진출처: FOX뉴스 홈페이지) 2015.05.21
 한국에서 나는 무척 전염력이 강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건 정부의 초기 대응이 실패한 덕이었지 나는 절대로 그렇지 못하거든. 오히려 사실 나는 치사율이 높은 편이야. 중동에서는 40%에 달한, 나름대로 무서운 바이러스였으니까.

 그런데 한국으로 오니 치사율이 10%대로 뚝 떨어지더라. 한국의 의학 기술은 역시 대단하더라. 환자가 생기면 최소한 그 환자의 면역체계가 나와 잘 싸울 수 있도록 확실히 지원해. 내가 보기에 한국에서는 정부가 가장 무능한 것 같다.                           

 내가 만일 더 퍼지지 못해 이 편지가 이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행한 고해성사처럼 된다면 그건 나 역시 한국 정부처럼 무능해서일 거야.

 거꾸로 내가 더 확산해서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당신도 감염된 상태라면 진짜 두려운 사태는 그때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렴. 나는 그때부터 감염력을 유지하면서 치사율을 다시 높이는 것으로 변이하려고 할 것이거든.

 한국 의료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환자 수가 급증하면 그걸 모두 치료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테니 나는 그만큼 시간을 번다고나 할까.

 마침 한국에는 내 먼 친척 형인 ‘조류인플루엔자(AI·조류독감) 바이러스’도 곳곳에 남아 있고, 신종플루 형도 숨어 있다지. 그 형들과의 접점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아 참, 한국 정부의 무능함 못잖게 이기적인 일부 한국인에게도 감사를 전하마.

 자가격리 중에 골프 치러 다니고, 등산 다니고, 마트 다니고…. 심지어 자기가 감염이 일어난 병원을 거쳤다는 사실을 철저히 감춘 채 다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지. 그 덕에 내가 더 많이 확산할 수 있었거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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