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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수첩]관료를 움직이게 해야

등록 2015-06-29 09:55:01   최종수정 2016-12-28 15: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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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메르스로 온 사회가 홍역을 앓고 있다. 여기가 원래 에너지 관련 칼럼을 쓰는 곳이지만, 메르스가 보여준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몇 가지 언급을 안 할 수 없다.  

 많은 언론이 정부와 청와대를 질타하지만, 대안 제시는 드물다. 사회가 희생을 치렀으니 뭔가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그 일을 누가 할까? 정치권, 학자, 의료인, 의료산업, 언론…. 결국 관료가 연필을 잡고 의료인과 상의해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은 없다. 

 어떤 이들은 2003년 사스 유행에 잘 대처하고, 2015년 메르스 유행에 그러지 못한 것은 정치권의 리더십 부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치권의 리더십도 정책문제라면 전문조직을 가진 관료의 판단과 조언이 바탕이 돼야 한다. 그럼 관료들이 2003년과 2015년 사이에 달라졌나. 그렇다. 대다수 퇴직관료들은 공직풍토가 199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변해왔다는 데 동의한다.     

 관료가 따로 있지 않다. 관료는 우리사회의 일부이고, 동창, 친척, 이웃이다. 관료의 행태는 우리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관료가 조기대응을 못하고 복지부동하고 뒷북을 치는 것은 그만한 배경이 있다.  

 첫째, 소위 ‘변양호 신드롬’이다. 2003년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을 주도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려 구속됐다 약 4년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직사회에서 ‘논란있는 사안은 손대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유사한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관료들은 밀려나거나 퇴출됐고, 이로써 복지부동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둘째, 관료 조직에 외부감시가 강화됐다. 감사원 조직이 확대되면서 정책감사가 일상화됐다. 십수년 경력의 프로 관료들이 아마추어 감사관에게 자신의 판단이 무결했음을 예의바르게 증명해야 했다. 전문성은 훈장이 아니라 부담이 되고, 사고가 뒤따르지 않은 선제적 대응은 문책 대상이 되었다.

 침묵이 첫째, “잘 모르겠다”가 둘째로 현명한 답변이 됐다.

 같은 모습이 국회에서도 재현됐다. 관료는 정책주도 집단이라는 자존심을 접었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남으면서 국가의 미래에 대한 사명감은 퇴색했고, 직업인으로서 생존이 남았다.  

 셋째,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이전한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공무원 급수와 세종시 근무날이 같다고 한다. 관료 간 대면이 어려워졌다. 정부 조직내 소통이 약해지니 국민과 소통도 어려워짐은 자연스럽다. 국민 대부분은 질병관리본부가 충북 청주에 있는 줄 모른다. 보건복지부와 총리실은 세종시에 있고, 청와대와 국회는 서울에 있다. 중앙부처의 국장, 실장들이 중학생처럼 서류 배낭을 매고 열차와 지하철과 커피숍을 전전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관료가 일상으로 직면하는 현실이다.   

 넷째, 관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복지부동이 여기에 기여를 했고, 차가운 시선이 다시 복지부동을 키웠다. ‘전문성을 기반으로 얼마나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명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해명거리를 만들지 않으면 더 좋았다. 관피아 논란과 연금 논쟁이 일면서 장래가 불투명해졌지만, 학습능력이 좋은 신참 관료들은 자신의 눈높이와 처신을 빠르게 조절해 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전투력은 연합군의 평균 두 배 정도였다고 한다. 이들은 전투를 “과학에 기반한 자유창작활동의 예술”로 정의하고, 중간급 지휘관에게 큰 폭의 재량권을 줬다.

 관료를 움직이게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관료 조직도 치열한 경쟁이 지배하는 하나의 생태계다. 사명감과 전문성을 가진 관료들이 조직의 중심이 되고, 뜻을 펴는 세상이 돼야 현재 거론되는 많은 문제점들이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한국에너지재단 염명천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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