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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한글과 클래식, 무엇이 더 높나?

등록 2015-07-20 08:03:00   최종수정 2016-12-28 15: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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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제막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헌화하고 있다.  이 기념탑은 서울시가 광화문 일대를 한글 역사문화 중심지로 조성하기 위해 2011년부터 시작한 '한글 마루지(랜드마크) 조성사업'의 하나로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에 희생된 애국선열 33인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2014.08.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532>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클래식 콘서트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시민 누구나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전용 공연장을 2019년까지 건립하련다는 서울시의 뜻은 탓할 바 아니다. 이 건물이 들어설 장소가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 공원이라는 점은 그러나 문제다.

 이곳에는 작년에 서울시가 세운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이 있다. 2000석 규모의 콘서트장을 들이려면 탑은 딴 데로 옮겨질 수밖에 없다. 콘서트홀이 8000㎡ 이상의 터를 잡아먹는데, 세종로공원의 면적은 8868㎡이기 때문이다. 공원 안에 남는다 해도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고 만다.

 국어문화운동본부,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외솔회, 우리말바로쓰기모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전국국어교사모임,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조선어학회선열유족회, 참교육학부모회, 한국땅이름학회, 한국어정보학회, 한글문화연대, 한글사랑운동본부, 한글세계화추진본부, 한글이름펴기모임, 한글학회,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훈민정음연구소들이 크게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은 “지난해 8월 세종로공원에 우뚝 선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을 보며 비로소 바로 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무한한 긍지를 느꼈다”면서 “훈민정음 글자마당과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기념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서울시향 콘서트홀을 짓겠다니 그것이 진정 서울시민과 국민을 위한 길인가”라고 묻는다.

 “그 자리는 영원한 겨레의 스승인 세종대왕 동상이 모셔져 있고 세종문화회관이 있으며, 한글 글자마당, 조선어학회 선열기념탑이 서 있는 한글 마루지의 중심축이요 민족의 정체성을 자랑하는 상징적 장소가 아닌가. 여기에 서양음악 콘서트홀을 짓겠다는 것은 마치 광화문을 헐어내고 현대식 서양요리 전문점을 짓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민족 정체성을 드높여야 할 역사적인 시점에 참으로 있을 수 없는 해괴한 시책이라 할 것이다.”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차재경(70) 대표는 “박원순 시장의 분명한 답변을 얻을 때까지 우리 민족문화 단체 2만여 회원은 있는 힘을 다해 문제를 제기하고 싸울 것을 다짐한다”고 벼른다. 조선어학회선열유족회 신광순(82) 회장은 “한평생 독립운동과 한글살리기에 헌신한 선열의 숭고한 겨레사랑과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선양하는 것은 후손들의 도리”라는 원칙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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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투쟁으로 투옥된 33인의 후손과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종택 한글학회 회장,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 김왕식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 민현식 국립국어원 원장, 문영호 국립한글박물관 관장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참석했다.  이 기념탑은 서울시가 광화문 일대를 한글 역사문화 중심지로 조성하기 위해 2011년부터 시작한 '한글 마루지(랜드마크) 조성사업'의 하나로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에 희생된 애국선열 33인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2014.08.29.  [email protected]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기념탑은 1942년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난을 당한 애국선열을 기리는 조형물이다. 이윤재·한징·이극로·최현배·이희승·정인승·정태진·이중화·이우식·이인·김법린·김양수·김도연·장현식·장지영·정열모·김윤경·이석린·권승욱·이만규·이강래·김선기·이병기·서승효·윤병호·이은상·정인섭·서민호·안재홍·김종철·권덕규·안호상·신현모 33인이다.

 김종택(76) 한글학회장은 “조선어학회 애국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국어는 현대화됐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을 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불과 두 세대만에 처참한 가난을 극복하고 선진 경제문화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1년 전 여름, 탑이 모습을 드러낸 날 김 회장은 “오늘은 날개를 빌려서라도 세종로 하늘을 한번 날고 싶다. 세종대왕 동상과 조선어학회 선열들의 기념탑 위를 오가며 훨훨 날고 싶다. 가슴이 텅 비었으니 몸이 가벼워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날개를 빌려서라도 세종로 하늘 위를 훨훨 날고 싶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탑은 한글학회의 호소를 서울시가 받아들이면서 어렵게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한글학회는 “일제 식민지통치시대 독립운동 가운데서 조선어학회 학자들과 애국지사들이 한글맞춤법을 만들고 우리말 사전을 만들다가 일제에 잡혀가 목숨까지 빼앗기고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감옥살이를 한 일은 가장 처절하고 가슴 아픈 독립운동사로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분들의 업적과 고마움을 깨닫지 못하고 제대로 기리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조선어학회 수난을 당한 순국선열 추모탑을 광화문 옆 한글공원에 건립할 것”을 오세훈(54) 시장 시절부터 촉구했다.

 클래식음악 전용공연장은 정명훈(62)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염원과도 같다. 하지만 ‘정통 콘서트홀’을 지으면 서울이 세계 클래식음악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서울시의 기대는 생뚱맞다. 세계 문화의 수도라는 뉴욕 또는 로마에 정악홀이 문을 열면, 이춘희(68) 명창보다 아리랑을 더 잘 부르는 현지가수가 나온다는 소리와 마찬가지다.

 탑이 선, 홀은 후다. 서울시향과 비교조차 송구스러운 존재, 천하의 한글이다.

 편집부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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