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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광복70년①]독립운동하고 3대가 '가난'한 나라

등록 2015-08-13 07:00:00   최종수정 2017-01-05 06: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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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항일투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진 진관사 태극기의 짖겨진 모습을 보면 당시 독립운동가의 용기와 기개를 엿볼 수 있다. 태극기 속 독립운동을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를 치른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담아본다. 2015.08.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표주연 기자 = 애국의 고통과 친일의 영화는 70년, 3대에 걸쳐 흐르고 있다.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14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전야제를 시작으로 15일에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광복70년 중앙경축식'이 열린다. 이어 광화문광장에서는 '국민화합 대축제'가 진행된다.

 '특별 사면'도 단행된다. 이번 ‘광복절 특사’ 대상은 수백만 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번 사면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일부 기업인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맞는 광복 70주년은 어떤 의미일까.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가난하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다. 가족을 돌볼 여유도, 재산을 모을 겨를도 없이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던 독립운동가들은 후손에게 조국의 광복과 함께 '가난'을 남겼다.

 폐지 줍는 독립운동가 아들에 관한 보도가 나온 적도 있고, 윤봉길 의사의 친조카는 지난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막연한 기대를 하며 북한에 밀입국했다 곧 송환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1945년 광복을 맞은 뒤 2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보훈'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불과 2년 만에 보훈에 착수한 프랑스와 대조되는 일이다.

 뒤늦은 '보훈'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은 해방 이후 끼니를 걱정하며 전전하는 처지에 놓였다. 일제와 싸우던 투사들이 해방 이후에는 가난과 싸워야 했던 것이다.

◇독립운동가와 후손, 어떻게 살고 있나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국가보훈처가 2012년까지 관련 조사를 시행하려고 했지만, 개인정보 문제 때문에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다만 국가보훈처는 내년부터 정책에 활용하기 위한 표본 통계조사를 하기로 하고, 현재 이를 준비 중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독립운동가 본인과 후손의 생활 수준에 대한 어떤 통계도 갖고 있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은 국가로부터 훈격을 받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에 대한 국가 지원이다. 이를 통해서 현재 그들이 어느 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현재 국가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은 받은 독립운동가는 약 1만3000명이다. 이중 국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독립운동가와 후손은 총 6066명이며, 매월 최고 590만원에서부터 최하 52만원까지 지원을 받고 있다. 

 문제는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지원을 받는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이 몇 명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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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광복 70주년을 앞둔 11일 오후 서울의 심장부 종로구 세종로 일대가 태극기 거리로 조성돼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다.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세종대로에 있는 정부서울청사와 한국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화생명, 현대해상화재 등 민간기업 대형건물 30곳에 대형 태극기가 걸리고 거리에는 경축 문구와 함께 태극기가 게양돼 제70주년 광복절의 의미를 확산하고 범국민적 축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2015.08.11.  [email protected]
 이를 자세히 보면 1~3등급으로 본인이 월 590만원의 지원을 받는 독립운동가는 현재 3명이 생존해있다. 그리고 1~3등급의 배우자는 16명(월 210만원), 자녀는 163명(188만원), 며느리 9명(188만원), 손자녀 176명(188만원)이 남아있다. 이어 4등급은 본인 12명(월 341만원), 배우자 61명(160만원), 자녀 451명(156만원), 며느리 25명(156만원), 손자녀 466명(156만원)이 지원을 받고 있다. 5등급은 본인 53명(월 270만원) 배우자 250명(130만원), 자녀 1613명(127만원), 며느리 63명(127만원), 손자녀 730명(127만원)이 지원을 받는다.

 건국 포장은 본인 4명(208만원), 배우자 32명(91만원), 자녀 327명(90만원), 며느리(90만원), 손자녀 909명(90만원)이 지원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대통령표창은 본인 88명(150만원), 배우자 61명(53만원), 자녀 893명(52만원), 며느리 522명 (52만원), 손자녀 539명(52만원)이 지원을 받고 있다.

 결국 올해 4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월166만8000원 이상을 지원받는 독립운동가와 후손은 전체 6066명 중 497명에 불과하고, 100만원 이상 지원받는 사람도 4111명뿐이다. 게다가 국가 지원은 자녀 중 1명에게만 지급되고, 3대 이후에는 중단된다. 자녀를 여러 명 둔 독립운동가라면 아들 한 명과 손자 한명에게만 지원하는 식이다.

 ◇파악 안 된 독립운동가가 더 많아

 국가가 인정한 독립운동가 수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사료가 남아있는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포상과 지원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 독립운동가와 후손에 대한 실태 파악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들은 대부분 신분을 숨겼고, 이름을 수차례 바꾸면서 활동하기도 했다.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를 피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또 그들의 주 활동 무대가 대부분 중국과 만주 등 북쪽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자료가 북한에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보훈처와 민간단체들은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 대부분을 일제의 재판기록에서 찾고 있다. 일제 하에서 붙잡혀 옥고를 치를 때 본명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제에 붙잡혀 혹독한 고초를 치르면서 본명을 드러낸 독립운동가가 차라리 나은 편일까. 상해와 만주 등에서 일제와 싸웠던 수많은 독립투사는 말 그대로 이름 석 자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민간단체들은 실제로 일제와 싸우다 목숨을 잃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의 숫자가 15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실태 파악과 지원이 전혀 없는 점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숙제인 셈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권영좌씨는 "독립운동가들의 자손들이 많이 어렵게 살고 있다"며 "광복후에 친일 청산이 바로 됐다면 해결이 됐을텐데 아직까지 그런 문제가 남아있다"고 토로했다.

 권씨는 "우리집 같은 경우는 증조부부터 3대가 모두 독립운동에 나섰는데 말도 못하게 힘들게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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