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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광복70년②]친일하고 3대가 '떵떵'거리는 나라

등록 2015-08-13 07:00:00   최종수정 2017-01-04 23: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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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표주연 기자 =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에서 ‘염석진’(이정재)은 독립운동 동지를 팔아넘긴 대가로 일제 하에서 승승장구하고, 광복 후에도 경찰 고위 간부 자리까지 오른다. 영화에서 염석진은 '증거불충분'으로 친일 행적에 대해 면죄부를 받고 유유히 반민특위 재판정을 빠져나오는 장면으로 실제 역사를 재현했다.

 ◇친일파 재산 얼마나 되나

 친일의 대가로 영화를 누렸던 사람과 후손들은 현재까지도 상당한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은 여의도 면적의 1.9배에 달하는 1573만㎡를, 송병준은 여의도만 한 크기의 857만㎡의 토지를 각각 소유했다. 이들은 1920년대부터 토지 매각에 나서 광복 전 부동산 대부분을 처분했다. 특히 이완용은 일본인에게 토지를 팔아 엄청난 돈을 챙겼으며, 단기 부동산 투기로 이익을 거둬 '현금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법에 따라 반민특위가 구성됐으나 흐지부지 됐고, 6.25 전쟁 발발 후 반민법은 아예 폐지됐다. 이후 친일파 처벌을 위한 법적 근거가 부족해 형사적 처벌뿐 아니라 친일파 재산을 환수하거나 그 취득을 제한할 민사상 조치도 어려웠다.

 이 때문에 친일파 대부분은 현재까지 막대한 재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후손에게 재산을 넘겨준 친일파들은 대부분 정계와 귀족 출신이기보다는 상계와 사회단체 인물들이 많은 편이다.

 재미있는 점은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조선 귀족 중 매국의 대가로 누렸던 부귀 영화를 후손에게 물려준 친일파는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친일 재산을 일제 말기에 가까운 1930년대까지 유지한 귀족은 '토지왕'이라고 불렸던 민영휘 자작, 이완용의 장손 이병길 후작과 차남 이항구 남작, 박영효 후작, 고희경 백작, 윤덕영 한창수 이달용 이풍한 김사철 남작 등 10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귀족 대부분은 해방 전 이미 재산을 탕진했다고 한다. 일제가 경제적으로 지원했지만, 이들에게 정치적 실권이 없었기 때문에 10~20년 동안 재산을 허비한 것이다.

  ◇친일 재산환수 10년 '미완'의 마무리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 친일 재산 환수를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친일 재산 환수는 역설적이게도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 땅 찾기'가 시발점이 됐다. 일부 친일파 후손들이 조상땅 찾기를 시도하면서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친일 재산환수 특별법 제정까지 이어진 것이다.

 일각의 저항이 만만찮은 가운데 친일 재산 환수 작업이 진행됐고, 올해로 10년째를 맞으며 사실상 마무리 되고 있다.

 친일 재산은 국권 침탈이 시작된 러·일 전쟁 개전(1904년 2월)부터 광복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 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사망시 동산이나 부동산을 처분함)·증여받은 재산을 의미한다.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조사위는 2010년 7월 활동을 마감하기까지 4년 동안 친일인사 168명의 재산 2359필지(1000억원 상당), 제삼자에게 처분한 116필지(267억원 상당) 등 약 1300만㎡를 환수하는 성과를 올렸다. 소송을 통해 국가로 귀속된 재산 규모는 한강 둔치가 포함된 여의도 면적의 1.5배나 된다

 이후에도 정부는 민병석, 송병준, 서회보, 박희양, 조성근, 이건춘, 홍승목 등의 후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벌여 135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국고로 귀속했다.

 이런 친일 재산 환수작업은 친일파 후손과 사회 일각의 상당한 저항을 불렀으며, 친일파 후손이 소송에서 이겨 재산 환수가 좌절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민영휘 소유로 알려진 청주 상당산성 내 33필지 3만14㎡에 대해서는 이미 1970년대 말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해 승소, 귀속 대상에서 빠졌다.

 또 충북도청 인근의 당산 42만3000㎡도 메이지신궁봉찬회 조선지부 충북도 위원을 지낸 친일파 민영은의 소유로 알려졌지만, 국고 환수 결정이 나지 않았다.

 가장 아쉬운 점은 일제 귀족이 됐던 친일파 이해승의 손자 이우영 그랜드힐튼 호텔 회장의 사례다. 조사위는 이 회장이 상속받은 친일재산 228억을 국가에 귀속하려 했지만, 소송전 끝에 좌절됐다.

 현재 대진대학교가 지어진 땅도 마찬가지로 이해승이 친일 행적을 통해 취득한 재산이었으나 환수 대상에서 빠졌다. 친일 재산을 물려받은 후손들이 토지를 매매하거나, 법인의 재산으로 등록하면 현 상법상 환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사위 심의를 교묘하게 빠져나거나 항소를 통해 국가 귀속 결정을 뒤집은 친일재산은 산재한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분석이다.

 조사위에 상임위원으로 참여한 이준식 문학박사는 "친일 재산환수는 상당한 성과도 있었고, 부족한 점도 있었다"며 "아직 한국사회에서 친일 청산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지금도 친일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국가보다 시민사회, 학계, 역사교육계가 친일 청산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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