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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동네 일군 세입자…'치솟는 임대료에 멍든다'

등록 2015-09-21 10:51:19   최종수정 2016-12-28 15: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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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은 기자 = '뜨는 동네'가 되면 임대료도 뜬다. 서울 홍대앞,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성수동 등 특색있는 동네로 각광받는 지역이 치솟는 임대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른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는 '낙후 지역에 외부인이 들어와 지역이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을 뜻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외부에서 유입된 이들로 인해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이태원, 5년 사이 임대료 68.6% 폭등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저렴한 동네에 개성있는 카페나 공방을 차리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찾아오면서 지역에 활기가 생긴다. 이후 입소문이 나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면 이를 노린 대형 식당과 술집 등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홍대앞, 가로수길, 경리단길, 성수동 등이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 중 성수동은 '제2의 경리단길'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지역이다. 과거 수제화·인쇄·봉제 공장과 창고들이 밀집해 있어 점점 쇠퇴하는 지역이었지만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성수동에 위치한 폐공장에 작업실, 갤러리, 카페 등을 차리고,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들도 이 지역에 잇따라 가게를 열었다. 성수동은 낡은 공장과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환경을 가진 거리로 변해갔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성수동 일대를 '서울형 도시재생 시범지구'로도 선정하며 힘을 실었다.

 이처럼 한적했던 동네가 주목받으면서 상업적으로 변하게 되자 임대료가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이에 동네를 일군 초기 자영업자들은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16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성수동1가는 특색있는 동네로 거듭난 이후인 2014년부터 올해까지 1년 사이에 임대료가 평균 35.3% 급증했다. 2012년에서 2013년까지 이 지역의 임대료 상승폭은 5%에 불과했다.

 또 다른 '주요 상권인 서울 이태원의 월 임대료는 2011년 3.3㎡당 9만5370원에서 지난 6월 말 16만830원으로 68.6%, 홍대 상권은 3.3㎡당 7만7220원에서 12만2760원으로 58.9% 폭등했다. 

 서울 서초구 신사동 가로수길과 종로구 종각역 일대 역시 월 임대료는 4년 동안 각각 45.7%, 36.4%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뜨고 나면 바뀐 건물주 "나가라"

 가수 싸이와 한남동 전시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 임차인은 젠트리피티케이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지난 2010년 예술가를 지원할 수 있는 예술 공간을 콘셉트로 최모씨가 문을 연 카페다. 계약 당시 건물주는 일본인이었고, 건물주는 임차인이 원하면 매년 계약이 연장 가능하다는 특약 조항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가게 문을 연 지 6개월 후 건물주가 바뀌고, 새 건물주가 최씨에게 가게를 비워달라고 요구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법원의 조정안에 따라 최 씨는 지난 2011년 말부터 2013년 12월31일까지 가게를 비운다는 조건에 합의했다.

 이와 같은 합의 조정 두 달 뒤 싸이가 새 건물주가 되면서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싸이 측은 이전 건물주와의 조정 결과를 지키라고 요청했으나 최씨는 기존 계약이 무효라며 버텼다. 결국 지난달 13일 법원은 최씨에게 카페가 있는 건물을 인도하라며 싸이의 손을 들어줬다.

 또 다른 사례로 홍대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였던 서교동 이리카페가 있다. 김상우 대표는 10년 전 그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친목을 다지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서교동에 이리카페를 열었다. 카페가 입소문을 타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개업 5년 만에 건물주는 자신의 친척이 카페를 운영해야겠다며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건물주의 친척은 이리카페가 있던 장소에 직접 카페를 운영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이 자리는 현재 옷가게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주에게 자리를 넘긴 김상우 대표는 상수동으로 가게를 옮겨 카페를 계속 운영중이다.

 ◇턱없이 부족한 임대차보호기간... 상생하는 태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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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초기 상권형성에 기여했던 예술인 등 임차인들이 프랜차이즈 업체와 대기업, 높은 임대료에 밀려 쫓겨나고, 그 지역의 문화와 개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결국 모두의 '손실'로 이어진다.

 인사동의 전통, 가로수길의 예술, 홍대앞의 인디 문화, 경리단길의 이국적 느낌 등의 고유한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 치솟는 임대료가 그 주범이다.

 김남균 '골목시장 생존법' 저자는 "도시의 다양함이 없어져서 획일화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며 "처음에는 꽤 개성 있는 카페들이 들어오겠지만 그 다음에는 대기업 카페들 밖에 남을 수 없게 된다. 소비자는 획일화된 상권의 큰 피해자가 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뜨는 동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가 임대 기간 등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임대차 보호기간을 10년 이상으로 연장하고, 건물주와 세입자, 지자체들이 협력해 상생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5월에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차인은 5년의 영업기간과 권리금 회수를 보장받는다. 계약기간 내 환산보증금 4억원(서울 기준) 이하 점포는 임대료 상승률이 9%로 제한된다.

 그러나 임대기간이 1~2년인 경우가 많고, 재계약시에는 최대 임대료 인상한도 9%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하거나, 오히려 세입자에게 불리한 조항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세입자가 임대료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쫓아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또 2년씩 연장하면서 최종 5년을 보장받는 임대차보호기간은 임차인이 시설투자비와 영업비용을 회수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라는게 임차인들의 입장이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독일, 일본을 비롯한 OECD 국가에선 임차인들이 시설투자비와 영업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영업기간을 장기간 보장하고 있다.

 장수기업이 많은 프랑스와 독일은 보장기간이 기본 10년, 최장 30년, 영국은 10~15년 정도다. 일본은 기한이 없다. 임차인들이 법정 보호기간 이전에 계약을 만료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임차인들의 재산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법적 장치도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사실상 건물주의 '배려'에 기댈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화여대 주변 건물주와 예술인들의 상생 협약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해법으로 주목받을 만한 사례다.

 '이대골목주민연합' 소속 건물주 18명과 예술기획단체 '문화활력생산기지'는 '이화 공방문화골목 임대료 안정화'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에 따라 건물주는 계약일로부터 최장 5년 동안 임대료를 올리지 않기로 했다. 건물주와 문화예술인이 모두 골목경제를 되살리기자는 취지에 공감대를 이뤘기 때문에 가능한 협약이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전 세계적으로도 사회 문제이고, 합의점을 찾고 있다"며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소유한 토지 가운데 현재 활용하고 있지 않은 토지를 마을기업에 영구임대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도시와 마을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마을을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적정 수준으로만 올리는 등의 상생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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