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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중동은 왜 난민사태에 침묵하나

등록 2015-09-30 13:44:54   최종수정 2016-12-28 15: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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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룸=AP/뉴시스】2일(현지시간) 아침 터키 남서부 물라주(州) 보드룸의 해안에서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 에이란 쿠르디(3)의 시신을 터키 현지 경찰이 수습하기 전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쿠르디는 보드룸을 떠나 그리스 코스섬으로 향하던 중 에게해에서 배가 침몰해 익사했다. 2015.09.03
난민 수용보다는 '돈'으로 때우기 선호 … 팔레스타인 난민까지 떠맡을까봐 꺼려

【서울=뉴시스】최희정 기자 = 이달 초 세 살 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 사진이 보도되면서 난민 수용에 부정적이던 유럽의 기류가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 유럽 국가들이 더 이상 빗장을 걸어 잠글 수 없게 됐으며, 반(反)이민 정서에 주저하던 유럽 정치인들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 3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  ‘난민쿼터제’(유럽연합 회원국 인구·경제력 등에 따라 난민 강제 할당)' 시행에 합의했다. 난민 추가 수용 불가 입장이었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그 다음날 “시리아 유엔캠프에 있는 난민 수천 명을 추가로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유럽국가들 뿐만이 아니다. 로마 교황청도 나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6일 “유럽의 모든 가톨릭 교구가 난민을 받아들이길 바란다”며 “바티칸의 두 교구가 앞장 서 각각 한 가족씩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아일란 비극은 지지부진하던 유럽연합(EU)의 난민 수용 쿼터제 합의에도 영향을 줬다. 지난 23일  EU는 난민 12만명을 회원국에 할당하는 방안을 다수의 찬성으로 승인했다.

 유럽 언론을 비롯해 전 세계 언론은 세 살 꼬마 난민의 죽음이 세상을 움직였다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시리아 난민 위기에 책임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중동의 부유한 산유국들은 여전히 난민 수용을 꺼리고 있다. 수니파인 사우디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난민 문제를 외면하는 듯한 중동 국가에 태도에 질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난민수용 거부하는 중동 부유 산유국들

 현재 트위터에서는 걸프국가 네티즌들이 ‘#ShameOnArabRulers’(아랍 지도자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란 해쉬태그(Hashtagㆍ#) 달기 운동을 하고 있다. 아랍 국가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같은 부유한 걸프 산유국들이 시리아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국제앰네스티 조사 결과, 시리아와 비교적 인접한 중동 산유부국들인 사우디와 UAE,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에는 시리아 난민 정착촌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쉐리프 엘사이드알리 국제앰네스티 난민․이민자 권리부 대표는 “이들 국가가 대책을 전혀 세우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휴먼라이츠워치 대표 케네스 로스 역시 트위터를 통해 “6개 걸프 국가 중 시리아 난민에게 정착촌을 제공한 나라 수는? 답은 0곳”이라며 걸프국가의 무대응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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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르네=신화/뉴시스】미국이 향후 2년간 시리아 난민 18만5000명을 수용할 것이라고 발표한 가운데 미 의회에서 필요한 예산을 쉽게 지원해 줄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유럽으로 건너오려다 익사한 시리아 소년아일란의 그림을 든채 터키 에디르네 고속도로 근처에 앉아있는 난민들.2015.09.22
 이에 대해 UAE는 “시리아 난민 400만명 중 유럽에 가려는 난민 수는 소수에 불과하나, 취업비자를 가지고 자국에 들어 온 시리아인 수는 십만여 명에 달했다”며 반박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50만명이 취업 비자를 가지고 넘어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취업 비자는 언제든 취소될 수 있어 난민 지위는 계속 불안정하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이후 발생한 난민은 400만명 이상이다. 이들 중 터키가 가장 많은 194만명을 수용했으며, 레바논이 112만명, 요르단 이 63만명, 이라크가 25만명을 받아들였다.

 1인당 소득이 2만달러인 터키가 시리아 난민을 대거 수용한 반면, 1인당 소득이 14만3000달러인 카타르와 7만1000달러인 쿠웨이트, 5만2000달러인 사우디는 난민수용에 소극적이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UAE,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등 6개 걸프 지역 국가들 가운데 1951년 유엔이 채택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국가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걸프 산유부국들은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기 보다 유엔(UN·국제연합)에 돈을 많이 내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쿠웨이트는 유엔 시리아 기금에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3억4000만달러를 지원했으며, 사우디는 1840만달러를 냈다.

 이에 대해 미국 공영방송 NPR은 지난 22일자 보도에서 이들 국가가 난민의 법적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난민을 이주시킬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유엔 난민 지위 협약에 따라 난민을 이주시킬 권한을 갖는다. 이 경우 유엔이 팔레스타인 난민도 이주시킬 수 있는데, 걸프국가는 이런 상황을 원치 않는 것이다.

◇시리아 난민이 부유한 중동국가로 가지 않는 이유

 걸프 국가가 취업비자와 함께 일자리를 제공하는데도, 시리아 난민들은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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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보스=AP/뉴시스】27일 시리아 난민들이 소형 고무보트를 타고 터키에서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 도착했다. 올해 26만 명 이상의 망명신청자들이 그리스에 도착했다. 2015.09.27
 시리아인들은 공식적으로 걸프 국가에 여행 비자나 취업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BBC는 지난 2일자 기사에서 비자 신청은 간단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실제 시리아인들이 비자를 받는 데 제한이 많다고 전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시리아인들이 체류를 연장하거나, 가족이 걸프국가에 있어 입국하는 경우다.

 여기에 걸프 국가들이 숙련된 노동자보다 저임금에 기반한 비숙련 노동자를 선호하는 것도 시리아인들의 망명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아랍인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취업비자를 얻어 일하는 시리아인들이 많은데, 중간계층에 속하는 시리아인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숙련된 노동자들이 많다.

 최근 들어 사우디와 쿠웨이트, 카타르, UAE 등 걸프국가 대다수가 동남아시아나 인도에서 온 비숙련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와 쿠웨이트 두 정부가 자국민 우선 채용 정책을 시행하자 외국인들의 취업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걸프국가에서 일할 수 있어도 직업을 잃거나 은퇴하게 되면 시리아인들은 더 이상 거주할 수 없다. 국적을 취득하지 못함은 물론이다.

 NPR은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알 아사드 독재 정권에 대한 시리아 국민들의 민주혁명이 시작된 이후,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리아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도 원인을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시리아인들은 다른 국가의 여권과 시민권을 얻기를 원했는데, 이런 조건을 제공하는 곳이 유럽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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