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 잡기노트]인륜질서의 뿌리, 유교책판
조선시대 유학자의 저작물을 인쇄, 발간하기 위해 만든 것이 유교책판이다. 문중이나 서원 등 주로 민간이 보관해 왔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농촌사회의 급격한 해체로 보관이 힘들어졌다. 한국국학진흥원이 2002년부터 ‘목판 10만장 수집운동’을 벌인 이유다. 체계적으로 조사, 수집했고 2005년 장판각을 지어 기탁받은 목판을 보관하고 있다. 학술적 가치에 주목해 2009년에는 목판연구소를 설립, 가치를 규명하는 중이다. 유교책판은 1460년 청도의 선암서원에서 판각된 ‘배자예부운략(排字禮部韻略)’부터 1955년 제작된 것까지 시대를 달리하는 다양한 종류의 내용들로 이뤄져 있다. ‘퇴계 선생 문집’ 등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책판, 근대 출판 역사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박문서관’ 판각판도 있다. 문집을 필두로 성리서, 아동교육서, 족보 등 유형도 가지가지다. 구성원 개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통해 대동사회를 구현하고자 한 유교적 이상을 서적에 담아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하려고 판각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내용의 진정성도 특기할 만하다. 718종 유교책판은 질과 양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지만, 수록 내용은 유학적 이념에 따라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궁구한 선현의 기록이다. 후학은 평생 그러한 삶을 추구한 선현을 현창하고, 그들이 남긴 기록으로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그와 같은 인간상을 완성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유교책판을 팠다.
책판의 제작과 인출, 즉 책판의 내용을 종이에 찍어내는 데는 엄청난 인력과 경비가 요구됐다. 1843년 ‘퇴계 선생 문집’을 다시 간행하는 과정을 기록한 ‘중간일기(重刊日記)’에 따르면, 2500여장의 책판을 만들어 32책 11질의 문집을 간행해내기까지 연인원 2000여명과 4144냥(판각비 463+인쇄비 3681냥)이 들었다. 19세기 초 1냥은 쌀 6말에 해당했으므로 당시 총비용을 쌀로 환산하면 2만4864말에 달한다. 현 시가(8㎏ 말당 2만5000원)로 6억2000만원을 웃도는 거액이다. 당대 경제 상황이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책판 제작에 들인 조상의 정성 앞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해인사에 불교 기록문화의 정수인 팔만대장경 목판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유교목판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현전하는 팔만대장경 목판은 8만1258장인데, 유교목판은 20만장이 가까이 남아있다. 이 가운데 6만5000여장을 국학진흥원 장판각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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