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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하, 여걸·여장부 있다면 바로 그녀…'형제는 용감했다'

등록 2015-10-21 06:56:00   최종수정 2016-12-28 15: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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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창작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는 여성을 위한 작품이다. 제목에서 남성이 도드라지고 남자 뮤지컬 배우들이 전면에 나서기는 한다. 하지만 뮤지컬에서 보기 힘들게 여성 캐릭터에 입체성을 부여한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3년 만에 만난 두 형제 '석봉'과 '주봉'이 안동 종갓집의 유산과 정체불명 미모의 여인 '오로라'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것이 극의 시작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심축은 1막의 '오로라'와 2막의 종갓집 맏며느리이자 석봉·주봉의 어머니인 '순례'다.

 뮤지컬에서 찾기 힘든 연인의 사랑 대신 가족애를 노래하는 작품인데 여성의 신비로움과 가족에 대한 사랑, 책임감이 타 뮤지컬과 특히 차별점을 만든다.

 뮤지컬배우 최유하(34)는 오로라와 순례를 모두 연기하며 작품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력에 방점을 찍고 있다. 공연 기간의 절반을 넘긴 지금 "순례처럼 점점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다"며 웃었다.

 "집안 어르신들, 남편, 아들의 눈치를 더 보게 된다. 그녀가 인생을 살얼음판 걷듯 살아간 부분이 작품의 결말을 이끌어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상대 배우들의 호흡에도 더 신경을 쓰게 되더라."  

 2막에서 시어머니의 유언 때문이다. 그녀는 종손과 혼인한 종가의 맏며느리인 종부(宗婦)의 체면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았던 이유다.  

 "시어머니가 강조한 건 치부를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순례는 이를 수긍하고 바보처럼 거기에 매달리며 산다. 순수할 때 시집을 와서 멘토처럼 여긴 시어머니 말씀이니. 시어머니랑 사이가 나빴던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에게 시어머니는 절대적으로 영향력을 끼친 멘토이자 책임감을 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순례는 엄마 없이 자란 사람이라 그런 점이 더 컸다."

 최유하는 현재 자신이 마주한 삶을 투영해 공감대를 만들었다. "순례가 보고 있었던 건 시어머니 하나였고, 종부를 이어받는 것이 꿈이자 목표였다. 시집 와서 행복했기 때문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배우가 되고 싶은 생각 역시 순례가 종부가 되고 싶은 마음과 같다. 그런 점을 투영하고 있다."  

 대학로의 '미다스 손 콤비'인 장유정 연출·장소영 음악감독의 작품이다. 여성 스태프가 주축이 됐고 여배우가 반짝반짝 빛나니 앞서 '여성을 위한 작품'이라는 단언은 무리가 아니다.

 "의도적으로 연출과 음악감독의 마음을 대변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표현하는 사람도 여자라서 그런 부분이 비쳐질 수 있다. 관객들이 두 형제보다 순례나 오로라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연기하는 나로서는 행복했다. 뮤지컬 시장에서 여배우가 극도로 다른 모습을 한번에 보여주면서 웃음과 감동을 주기는 힘들다."  

 2008년 초연 이후 수차례 재공연했다. 작품성도 인정 받았다. 하지만 이미 다른 배우가 이미지를 만들어온 캐릭터를 다시 맡는 건 배우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최유하 역시 "처음에 제의가 들어왔을 때 망설인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8년 간 너무 잘 된 작품이어서 내가 새롭게 만들 것이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배우가 다르니 캐릭터가 다르게 표현 될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내가 어필할 부분도 의견을 개진해 가며 조금 더 새롭게 보여주고자 했다"며 눈을 빛냈다.  

 오로라는 묘령의 여인으로 청순함과 섹시함을 오간다. 순례는 딱 봐도 대한민국 어머니다. 하지만 치매를 앓고 있다. 최유하는 "두 캐릭터의 간극이 컸으면 했다"는 마음이다. "1막과 2막을 모두 봐도 두 캐릭터가 같은 인물이 연기한 걸 몰랐으면 했다"는 고백이다.

 여기서 스포일러를 노출하자면, 오로라는 순례의 젊었을 적 모습이다. 하지만 석봉·주봉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다. "모를 수밖에 없다. 자식들은 자신의 엄마가 어렸을 때 얼마나 매력적인 여성이었을지 상상조차 못한다. '우리 엄마는 엄마지'라는 생각만 한다.(웃음) 오로라를 통해서는 매력적이어서 남자들에게 숱한 구애를 받는 여성이 우리 엄마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들의 엄마도 너무 예쁠 때가 있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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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사노바, 두왑,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넘버를 자유자재로 소화하며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오로라는 매력적이다. 최유하는 다만 감정은 배제하고 연기 기술에 치중했다. 2막에서 순례를 연기할 때 감정을 극도로 꺼내기 위해서다. "2막은 다 내려놓고 본능적으로 연기한다. 1막과 괴리감을 주고 싶었다. 어머니와 아내로서 충실하고자 한 우리 엄마의 삶도 투영을 한다. 지금은 초반보다 아빠를 떠 생각한다. 아빠가 혼자 남겨진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최유하가 특기할만한 점은 남자 배우 위주로 돌아가는 뮤지컬 신에서도 최유하는 꾸준히 능동적인 캐릭터를 섭렵해왔다는 것이다.

 '블러드 브라더스'의 자유분방한 린다, '풍월주'에서 천하를 다 가졌지만 사랑 앞에서는 치졸한 진성여왕, '킹키부츠'에서 구두공장에서 일하는 씩씩한 여직원 '로렌',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사랑에 적극적인 태희, '난쟁이들'에서 섹시한 백설공주가 대표적이다. 수동적으로 보일 수 있는 '황태자 루돌프'의 마리 역도 결국 사랑을 위해 마지막에는 죽음을 택한다.  

 "수동적인 캐릭터는 내 성향과 맞지 않더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여성스런 외모 탓에 초반에는 스스로 생각할 때 자신과 맞지 않은 역도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사실 최유하는 B급 정서를 풍기는 몇 안되는 뮤지컬배우다. 스스로는 "얄팍하다"며 겸손(?)해 하지만 주성치, 잭 블랙 등 B급 마니아들의 필수 코스를 거쳐 스페인의 수많은 스릴러, SF·호러·미스터리 범벅인 TV 시리즈 '환상특급' 등에도 열광한다. 80년대 초반 태생의 마니악한 여성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가수 서태지와 이승환, 인디 밴드, 록페스벌, 힙합 그리고 그녀의 어릴 적 정서를 키운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최유하의 상상력 자양분이다. 유럽 축구마저 포함된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누구만큼 '헉' 소리 나게 예쁜가, 또 누구만큼 노래를 절대적으로 잘하나, 또 누구만큼 춤을 잘 추나라고. 배우로서 자신감이 점점 줄어들더라. 배우를 하는 것 자체가 미안하는 생각이 들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B급은 누구보다 잘 할 것 같은 자신감은 있더라."

 문화시설이 비교적 빈약한 경북 포항에서 자란 최유하는 중1 때 이곳에 투어를 온 남경주·최정원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보고 본격적으로 배우를 꿈꾸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방송반, 연극반을 누빈 그녀는 부모의 반대로 대학 진학 당시 연기 관련 학과를 선택하지 못했다. 차선책으로 독어독문학과(성균관대)를 택했다. 언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독어뿐 아니라 영어에도 능통한 그녀는 다재다능하나 2005년 뮤지컬 '풋루스'로 데뷔한 이후 연기를 전공하지 않은 데 따른 괴리감 등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이할 동안 무럭무럭 자랐다. 올해 '제9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블러드 브라더스'로 여우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 부끄럽지 않고 싶다. 그간 안일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는데 때가 되면 배우로서 나아갈 방향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가 있다. 답이 없는 고민은 아닌 것 같다." 배우 최유하는 또 자랐다.

 '형제는 용감했다' 11월8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석봉 정준하·윤희석·최재웅, 주봉 김동욱·정욱진·그룹 '보이프렌드' 멤버 동현, 오로라 최유하·최우리. 러닝타임 140분 (인터미션 20분 포함). 4만~9만원. 프로듀서 송승환 이광호. PMC프러덕션·랑. 1666-8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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