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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마음을 달래는 에세이…'언제 들어도 좋은 말' 외 2권

등록 2015-11-03 07:00:00   최종수정 2016-12-28 15: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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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윤시내 기자 =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가을이다. 고독의 계절답게 누구나 마음 한쪽에서 쓸쓸함을 느끼곤 한다. 감성에 젖어 외로움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에세이를 모았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석원 지음/ 그책 펴냄/ 360쪽/ 1만3000원

 인디밴드 ‘언니네이발관’의 리더이며, 현재는 작가로 더 유명한 이석원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첫 산문집 ‘보통의 존재’로 이미 큰 사랑을 받았던 그는 이번 책에선 ‘이야기 산문집’이라는 색다른 시도를 했다. 여느 에세이처럼 짧은 에피소드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책 한 권을 관통하는 하나의 긴 이야기를 보여주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집중해 ‘산문’의 형태로 표현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모호한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흥미롭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고급 외제차를 모는 미모의 여의사 ‘김정희’와의 만남이다. 고즈넉한 찻집에서 ‘이석원’은 아는 동생의 소개로 그녀를 만나게 되고, 각자의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대화를 나누며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그들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한다. 이렇게 새로운 ‘관계’는 시작된다.

 첫 만남 이후 짧은 소설이 등장한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철수 이야기다. 예고없이 등장한 소설에 처음에는 갸우뚱하게 되지만, 해당 챕터를 다 읽고 나면 저자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철수는 곧 저자를 투영한 인물이다. 철수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저자에게 ‘정희’와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 약속에서 잘 보이기 위해 급하게 백화점에서 옷을 구입해 입었다던가, 술에 취해 가진 첫 잠자리, 이혼녀인 정희의 전 남편과의 우연한 만남 등 이 정도로 솔직하게 털어 놓아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세세한 감정과 상황을 저자는 여과없이 써내려간다.

 “니가 그렇게 불평이 많고 타인과 세상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가진 게 없어서 그래. 니 안목이 남달라서도 아니고 니가 잘나서도 아니야. 단지 가난해서 그래. 니 내면과 환경이. 경험이. 처지가.”(118쪽)

 이것이 단지 그 두 사람만의 이야기일까. 저자는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며 갖게 되는 감정과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곳곳에 쓰인 작가의 단상을 보면 이것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는 공감대를 느낄 수 있다.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 저자가 겪는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책 한 줄 읽는 것도,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것도 어려워 고통 받았던 시간에 대한 소회, 작가로 생계를 잇는 어려움, 이 길이 과연 내 길이 맞는지에 대한 두려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으나 여전히 고민한다는 고백은 우리에게 또 다른 위안이 된다. 그러한 고통이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이 책은 이석원의 글이 가진 특유의 흡인력과 속도감은 유지하면서 에세이 본연의 역할 또한 놓치지 않았다. 사람과 삶, 사랑이라는 주제에 한결 같이 매달려온 작가는 이번에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표현의 도구로 특별히 ‘말’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 안에는 유난히 많은 ‘말’들이 담겨 있다. 달콤하고 때론 아프기도 하고 쌉싸래하기도 한 온갖 말들은 누군가에겐 언제 들어도 좋은 말들로, 가슴에 남기고 새길 만한 말들로 남을 것이다.

◇라면을 끓이며…김훈 지음/ 문학동네 펴냄/ 412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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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훈이 오래전에 절판된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에서 기억할 만한 산문들을 가려 뽑고, 이후 새로 쓴 산문 원고 400매 가량을 합쳐 엮어 냈다. 가족 이야기부터 기자 시절 그가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 최근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섬에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과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표제작인 ‘라면을 끓이며’(11쪽)는 매 해 36억개, 1인당 74.1개씩의 라면을 먹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한국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먹어야 하고, 한 번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때가 되면 또다시, 기어이 먹어야 하므로”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이들에게 라면은 애잔한 음식이다.

 ‘라면’을 앞세운 저자의 의도는 ‘밥’(70쪽)으로 이어진다. ‘밥벌이’에 매달리면서도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에도 힘들게 사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저자는 ‘밥’ ‘돈’ ‘몸’ ‘길’ ‘글’ 다섯 가지 주제로 글을 엮었다. 이 속에서는 공통적으로 ‘보통 사람’을 위로하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낮고 순한 말로 이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으로 이 책을 엮었다는 김훈의 뜻은 이뤄진듯하다.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박광수 지음/ 예담 펴냄/ 256쪽/ 1만3000원

 제목부터 공감대를 느끼게 하는 만화가 박광수의 최근작이다. 대표작 ‘광수생각’으로 우리의 일상과 가족에 대한 사랑, 삶의 고단함, 희망 등을 잘 표현했던 작가답게 이 책에서도 자신이 인생을 살며 느꼈던 여러 경험과 감정들을 응축해 그림과 글로 옮겼다.

 책은 좋았다가 나쁘기도 하고, 슬펐다가 활짝 웃는 날도 있는 인생의 흐름처럼 ‘가끔은 흐림’ ‘비 온 뒤의 무지개’ ‘안개주의보’ ‘오늘은 맑음’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할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청춘이 다 지나가 버렸네”(59쪽)나 “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해낼지도 모르지만, 해야만 하는 사람은 그 일을 꼭 해낸다”(91쪽) 등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르는 성공은 무가치한 것이다”(173쪽)나 “노력이 먼저이고 자신에게 맞는 도구는 그 다음이다”(186쪽) 등 성공과 자만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일침도 담겨있다.

 저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알게 된 것은 책 제목처럼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그래도 괜찮다”고 말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지나갈 뿐이며, 지나간 이후에는 더 단단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성숙해진 광수생각과 감성적이면서도 시야가 풍부해진 그림, 책의 가장 앞쪽에서 뒤쪽으로 연결되는 선 그림과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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