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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물려준' 아빠가 '7포 세대'에게

등록 2015-11-13 11:25:23   최종수정 2016-12-28 15: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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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어느덧 '포기'라는 단어가 익숙해졌다. 3포세대, 5포세대, 7포세대, N포세대…. 부의 대물림과 양극화 심화, 그리고 헬조선….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고 있는 대한민국 '흙수저'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응원 편지를 띄워본다.

【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요즘 뉴스를 보고 있으면 가슴 한쪽이 갑갑해져 옵니다. '청년고용절벽이다' 'N포 세대다'하는데 집에 있는 아들놈 생각이 나더라구요. 처음엔 대학씩이나 나와놓고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는 것 같아 한심했죠. 어렵게 대학 보내놨더니 사람 노릇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부모 마음이 그렇습디다. 그게 다 부모 잘못 같거든요. 배운 것도, 하는 일도 변변치 않아 자식 하나 제대로 밀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한 거죠. 그러다 다시 한심하게 느껴져 화나고, 또 미안해지고…. 답답하네요, 소주나 한잔 해야겠어요.

 '수저 계급론'인가, 뭔가가 이슈라면서요. 금(金), 은(銀), 동(銅)수저…. 태어나 보니 할아버지는 대기업 회장님이고, 아버지는 부회장님인 경우는 다이아몬드 수저라면서요? 허 참…. 그런데 말이죠, 내가 울컥했던 것은 그 기준에 따르면 내 아들내미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더라고요. 자산이 5000만원이 안되거나 일 년 벌이가 2000만원이 안 되는 집….

 내 아들 녀석, 어렸을 땐 공부도 곧잘 했답니다. 심성이 곧고 반듯한 아이라 선생님께 칭찬도 많이 받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죠. 자랑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땐 상장도 많이 받아오고 반장도 하고 그랬어요. 아 그러던 녀석이 중학교, 고등학교,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떨어지고 학교에 흥미를 잃더라고요. 제 애미한테는 "친구들은 학원에서 미리 다 배워온다"고 했다던데. 결국은 지방대에 갔어요. 요즘엔 누구나 대학은 나온다길래 내가 막노동을 하면서까지 졸업시켰어요. 물론 학자금 대출은 받았지만요.

 졸업이 가까워서는 여기저기 원서를 많이 내더라고요. 연락 온 곳은 거의 없었어요. 언젠간 서류 합격했다면서 양복 한 벌 사야 한다고 부산을 떨기에 어렵게 사줬는데, 결국은 잘 안됐어요. 휴학 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원비도 벌고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하러 다니고 했는데 그 정도론 부족했나 봐요. 어디선가 인턴도 잠깐 했어요.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않았을 때 실망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취업문이 바늘구멍이라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 봐요.

 요즘엔 방구석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으려고 해요. 졸업한 지 3년이 넘었는데 해도 해도 안되니 자기도 답답하겠죠. 그 속이 오죽할까 싶어요. 2년 전쯤 여자친구랑 헤어진 뒤로는 연애도 안 하는 것 같아요. 하긴, 집이 잘사는 것도 아닌데 직업도 없는 놈을 어느 여자가 좋아해 주겠어요. 저러다 내 아들이 결혼, 출산, 그 뭐냐, 내 집, 인간관계, 여기에 꿈, 희망까지 모두 포기하는 '7포 세대'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크으…, 오늘따라 술이 쓰네요.

 우리 때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어요. 노력하면 나아질 것이란 믿음이 있었죠. 그때도 가난이 제약이긴 했으나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통했으니까요.

 중학교 때 학생회장 하던 친구가 생각나네요. 집안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는데 자기가 공부 잘하니 좋은 대학 가서 장학금도 받고, 과외도 가르치면서 용돈도 벌고 했더랬죠. 사법고시 붙어서 판사하다가 지금은 꽤 유명한 로펌에서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더라고요. 최근 다른 친구를 통해 소식을 들으니 딸도 로스쿨을 거쳐 같은 곳에서 근무하고 있대요. 부녀가 같이 좋은 직업을 갖고, 좋은 데서 일한다니 잘된 거겠죠.

 아이에게 '할 수 있다'고 격려했어요. '왜 더 해보지 않고 포기하느냐'며 질책도 해봤죠. 알아요, 노력했다는 것을…. 그리고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은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것이 내 아이뿐이 아니라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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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아요? 뉴스에 많이 나오잖아요. 국회의원 누구누구는 채용기준까지 바꿔가며 대기업이랑 공기업에 자식들 취업시켜줬다고 하고, 또 장관 누구는 자기 부처에 딸 특채시키려다가 걸려서 사퇴까지 한, 그런 것이요.

 그런 것을 볼 때면 나 자신이 초라해져요. 나 하나까지는 버틸 만했는데, 괜찮다고 믿었는데, 이게 내 아들까지 대물림 된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어요.

 얼마 전 글을 하나 봤어요. '흙수저'라는 말이 싫다는 대학생의 글이었죠. 그 친구는 "부모가 흙수저라는 단어를 알게 될까 봐 싫다"고 했어요. "자식에게 늘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나는 못 배웠으니 너는 열심히 배워서 꼭 성공하라"는 부모가 흙수저를 물려준 것은 아닌지 생각할까 걱정된다는 얘기였죠.

 뭉클했어요. 그 학생은 "부모에게 길게 뿌리 내리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좋은 흙을 받았다"면서 "큰 나무가 되겠다"더군요. "부모가 기댈 수 있도록" 말이죠. (훌쩍. 아, 감기에 걸렸나 봐요.)

 취기가 오르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음… 내 아들아, 아빠는 열심히 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흙수저를 물려줄 수밖에 없었어. 더 좋은 집에서, 더 나은 부모에게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빠가 미안해.

 그리고 기회와 희망을 잃고 자신을 냉소해야 하는 청년 세대에게도 미안합니다. 기성세대로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해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조금만 더 힘냈으면 좋겠어요. 그것 밖에 해 줄 말이 없네요.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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