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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2만명 시대②]'을'이 된 청년변호사들…"암담한 현실에 좌절"

등록 2015-11-26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5: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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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1. 올여름 의뢰인을 접견하기 위해 서울 지역 구치소를 찾은 A(여·사법연수원 42기) 변호사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목격했다. 50대 중년 남성 수감자 앞에 앳된 여성 변호사가 검은색 시스루 블라우스에 하이웨이스트 반바지를 입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대화는 변호사 업무와는 관련이 없는 시답잖은 농담이 대부분이었다.

 A 변호사는 "3~4년 전부터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 변호사를 '접견용'으로 뽑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너무 불편했다"며 "변호사 취업문이 좁아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싶더라"고 토로했다.

 #2. 지방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B 변호사(변호사시험 4기)는 취업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비싼 등록금과 시간을 들여 변호사 배지를 다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취업문은 바늘구멍이다. 얼마 전 소형 로펌에서 의무 실습 기간 6개월을 무급으로 마친 터라 당장 생활비부터 걱정이다. 경력 단절 기간이 늘어나면 취업이 더 어려워질까 마음만 조급해진다.

 B 변호사는 "남들처럼 '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어서 취업이 쉽지 않다"며 "빚내가며 겨우 로스쿨을 졸업했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암담한 현실만 눈앞에 놓여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변호사 2만 명 시대….

 변호사 수가 급증하면서 변호사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변호사가 부와 명예, 권력을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은 옛이야기가 돼 가고 있다. 변호사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변호사들은 생존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청년변호사들은 열정페이와 임금체납, 부당노동, 성희롱에 시달리며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을'이 된 청년변호사들

 변호사 시장의 불황으로 청년변호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접견용 변호사'로 채용된 여성 변호사의 사례는 열악해진 변호사 시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한규 서울변회 회장은 "구치소에서 여러 명을 세워놓고 입사 면접을 진행하고, 사실상 의뢰인이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변호사 시장 환경이 악화할수록 이 같은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열정페이와 임금체납 등에 시달리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버텨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고용주에 따라 의무 실습 기간에 100만~500만원 정도 챙겨주기도 하나 대놓고 무급에 야근, 주말근무까지 강요하는 경우도 많다. 신입 변호사를 채용하면서 4대 보험이 특혜인 양 홍보하기도 한다. 한 지방변호사회는 '로스쿨 연수생 월급을 50만원씩만 지급하자'는 내부 문건을 만들었다 세상에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C 변호사(변시 3기)는 임금체납에 시달리다 끝내 법무법인을 나왔다. 언제부턴가 임금 지급이 서서히 늦어지더니 급기야 최근 3개월 동안은 아예 지급되지 않았다. 많지 않은 월급에도 군소리 없이 야근에 특근까지 해왔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결단을 내렸다. 나오기 전 어렵게 말을 꺼낸 자리에서도 오히려 "너도 사건 수임에 신경 좀 쓰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구성원 변호사 등록을 권유받기도 한다. 구성원 변호사가 되면 채무 등에 연대책임을 진다. 사회에 갓 발을 들인 한 변호사는 실무기간이 끝난 뒤 곧바로 구성원 변호사로 등기했다 사기 사건에 연루된 브로커 사무장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박주희(연수원 42기) 서울변회 대변인은 "낮은 연차 변호사들이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악용해 억지로 구성원 변호사 등록을 시키는 사례가 있었다"며 "이를 수용하지 않는 변호사에게 나가라고 하기도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이 같은 내용의 진정이 다수 접수되고 있다"며 "서초동 바닥이 좁다 보니 대부분 피해자는 소송 등 적극적인 대응을 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변회는 이와 비슷한 진정 접수 건수가 늘어나자 '변호사근로분쟁조정센터'를 설치해 고용 과정에서 부당한 노동행위가 있었는지 적극적으로 개입할 방침이다.  

 ◇변호사 시장 악화

 대형 로펌은 이보다 낫긴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썩 좋은 것만도 아니다. 특히 고액의 자문 업무보다 송무(소송 업무) 비중을 늘리고 있고, 이는 도미노처럼 중·소형 로펌에 영향을 끼쳐 업계 전반의 수임료 인하로 이어지고 있다.

 10대 로펌에서 근무 중인 한 변호사는 "최근 임금이 동결되거나 인센티브가 나오지 않는 일이 생겨나고 있다"며 "7년 차 정도에 로펌에서 유학을 보내주는 것이 정석이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휴·폐업하는 변호사도 계속 늘고 있다.

 서울변회에 따르면, 최근 6년간 휴·폐업한 서울 지역 변호사는 2010년 243명, 2011년 215명, 2012년 297명, 2013년 334명, 지난해 450명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올 11월20일 현재 이미 424명에 달한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사무실 임대료조차 내지 못하는 변호사가 생겨나고 있다"며 "원인은 다양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휴·폐업 변호사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과장광고·불법행위 '천태만상'…"변호사 생태계 교란"

 변호사 수임 경쟁이 심화하면서 과장 광고는 물론 변호사 품위유지의무 위반, 불법 영업까지 자행되고 있다.

 서울변회에 접수된 과장 광고 진정 건수는 2011년 0건에서 2012년~지난해 각 3건으로 늘었다가 올해는 10월 현재 15건으로 급증했다.

 얼마 전 강용석 변호사(연수원 23기)는 서초역 7, 8번 입구 쪽에 화를 내며 삿대질을 하는 사진과 '너, 고소!"라는 글귀가 적힌 광고 포스터를 내걸어 논란을 일으켰다. 사진은 강 변호사가 국회의원 시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함치던 모습이다. 서울변회 광고심의위원회는 "자극적인 문구와 지나치게 과격한 모습의 광고 포스터를 내걸어 변호사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다"며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변호업무광고규정을 위반해 '최고'최상'최고'라는 단어를 쓰거나 홍보 브로슈어를 불특정 다수에서 대량 발송한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법조 브로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인천지검은 개인회생 사건을 수임해 480억원대의 수임료를 챙긴 법조 브로커 77명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여기엔 전국적으로 영업망을 갖춘 기업형 브로커도 포함됐다. 변호사에게 수수료를 주고 명의를 빌린 브로커 77명 외에 명의를 대여해 준 변호사 57명, 법무사 12명 등도 적발됐다.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를 고용해 법률사무소를 개설·운영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브로커들은 변호사들에게 은밀하게 접근해 명의를 빌리거나 아예 변호사 명의로 법무법인을 차린다.

 변호사가 직접 법원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파산·회생, 등기 사건을 주로 수임한다. 명의를 빌려준 변호사들에겐 매월 500만원 수준의 수수료를 주고 자신은 건당 수임료의 40% 정도를 가져간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고용변호사와 사무장을 십수 명 부리며 사실상 로펌 대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른바 '사무장 로펌'이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이들은 회생 요건 충족 여부나 면책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사건을 수임하고 불법 행위를 했다"며 "변호사 시장의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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