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1988 VS 2015③]성동일은 27년 뒤 '내 집'에 살고 있을까

등록 2015-12-11 06:42:06   최종수정 2016-12-28 16:03:12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tvN 드라마'응답하라 1988'에서 1988년 당시 부유층으로 그려지는 김성균 가족의 모습. (사진=CJ E&M 제공)
【서울=뉴시스】표주연 기자 = 한국 사회에서 '내 집'을 갖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서민의 목표였다. 성공한 가정의 바로미터로 통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 김성균네는 반지하에서 사는 성동일네와 비교된다. 그들은 1988년의 부유층과 서민층을 각각 대표할 만하다.

 성동일의 셋째 아들은 학교 친구들에게 '반지하'라 불린다. 성동일은 셋째아들의 학교 앞에 갔다 아들을 "야, 반지하!"라고 놀림조로 부르는 친구들을 보며 고개를 떨군다.

 1988년도에는 어느 동네나 오밀조밀한 주택과 좁은 골목이 흔했다. 좁은 골목 안에는 주택을 소유한 가구와 일명 '반지하'가 함께 살았다. 아파트 숲이 밀집한 신도시 자체가 없었던 그 당시에는 이것이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응팔'에 나오는 '반지하'들은 2015년에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 사이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2배 가까이 올랐다. 그러나 아파트 가격은 20배나 올랐다. '반지하'들이 주택을 얼마나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만 거의 그대로인 상태다.

 ◇주택보급률 2배 오르고, 집값은 20배 뛰었다

 우선 1988년 주택보급률은 69.4%였다. 내 집을 가진 사람은 두 명에 한 명꼴을 조금 넘었다는 얘기다. 이후 주택보급률은 지속해서 올랐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은 '주택건설 200만호 건설'을 추진하며 집을 쏟아냈다. 현재 거대한 아파트 숲을 이루고 있는 경기 성님시 분당, 고양시 일산 등 신도시는 모두 이때 생겼다. 실제 1990년 건설된 주택은 46만호, 1991년에는 75만호에 달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에도 매년 평균 60만호가 새로 만들어졌다.

 처음으로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것은 2002년이다. 2002년 가구 수는 1228만6000가구였고, 주택 수는 1235만8000호를 기록했다. 이후 주택보급률은 지속해서 100% 이상을 보인다. 2005년 105.9%, 2009년 111%를 넘었으며, 2010년 112%, 2014년 118.1%까지 올랐다. 1인 가구를 포함해 계산한 '신주택보급률'을 봐도 2008년 100.7%를 기록한 이후, 2009년 101.2%, 2010년 101.9%, 2014년 103.5%를 나타냈다. 산술적으로 1인 가구를 포함한 모든 가구가 1채씩 집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주택을 공급하면서 정부는 일관되게 '주택가격 안정'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시기 동안 주택가격이 '안정'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문민정부 당시 주택공급이 지나치게 많아지자 집값과 전셋값이 일시적으로 폭락한 적이 있을 뿐이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김민호 기자 = 1988~2014 주택보급률·자가점유율 비교 [email protected]
 아파트 가격을 보면 27년 동안 아파트 가격은 최대 25배 가까이 올랐다. 서울 강남구에서 고가 아파트의 대명사로 불리는 은마아파트 가격을 보면 1998년 가격은 31평형을 기준으로 6000만~7000만원 선이었다. 현재 은마아파트는 11억원에 달하고 있다.

 ◇내 집 가진 사람의 비율은 '그대로'  

 주택보급률과 집값은 크게 올랐으나 그대로인 수치도 있다. 바로 자기 집을 가진 가구, 즉 '자가보유율'은 27년 동안 50~60%대에 머물렀다. 국토해양부에 2006년부터 자료가 있다. 2006년 61%, 2008년 60.9% 2010년 60.3% 2012년 58. 4%를 각각 기록했다.

 결국 27년 동안 새로 지은 집 대부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고, '응팔'의 '반지하'들은 여전히 '반지하'로 살아가는 구조인 셈이다. 

 자기 소유 주택에서 자신이 사는 비율을 나타내는 '자가점유율'도 마찬가지다. '응팔'과 비슷한 시기였던 1990년 자가점유율은 49.9%였고, 1995년에는 53.3%로 늘었다. 이는 90년대 초반 추진된 신도시 건설 등 대규모 주택공급계획에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2000년 54.2%, 2006년 55.6%, 2010년은 54.3%를 각각 나타냈다. 자가보유율과 자가점유율이 대체로 비슷한 수치를 보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응팔 시대'에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의 비율도 50% 안팎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결국 '응팔'의 1988년에서 2015년까지 27년동안 주택보급률이 두 배 정도 높아질 동안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응팔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성동일네의 경우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집'을 갖지 못하고, 김성균네는 몇 채 더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주택 수가 늘었어도 자가를 보유한 가구가 그대로라는 것은 실제 다주택자가 많아졌다는 의미"라며 "주택의 자가점유율을 늘리려면 소득이 낮은 사람이 주택을 살 수 있도록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등 선별적인 복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