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1988 VS 2015②]응팔에는 없는 것 '비정규직'

등록 2015-12-11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6:03:12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김민호 기자 = 비정규직 수 변화추이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표주연 기자 = '응답하라 1988'의 가장들은 대부분 반듯한 직장을 가졌거나 자영업자다.

'김성균'(김성균)은 LG전자의 전신인 금성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고, 반지하에 사는 '성동일'(성동일)은 은행 직원이다. '동룡'(이동휘)의 아버지 '류재명'(유재명)은 쌍문고 학생주임 교사, 어머니는 7년째 보험왕을 차지한 능력 있는 '워킹맘'이다. 천재 기사(棋士) '최택'(박보검)의 아버지 '최무성'(최무성)은 금은방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응팔에는 없는 비정규직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응팔에 등장하는 가정은 모두 '중산층'이라고 얘기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중산층'의 의미가 단순히 재산의 규모뿐만 아니라 직업의 양질 여부와 소득의 규모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라면 맞는 이야기일 수 있다. 2015년의 시각에서 1988년의 그들이 '중산층'으로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안정된 직장과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가졌기 때문이다.

 2015년에는 존재하지만, ‘응팔’의 설정에는 등장할 수 없는 대표적인 것이 있다. 바로 '비정규직'이다. 1988년 비정규직은 사내하청 등의 형태로 '비공식적'으로만 존재했다. 즉, 공식적으로는 비정규직은 한국에 없었다.

 1988년 한국 사회의 노동시장은 매우 경직된 구조를 가졌다. 그 당시에 정리해고,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직장에 들어가면 평생 일하다 퇴직하는 것이 일반적인 구조였다. '응팔'에서 성동일이 당시 전형적인 한국 사회 가장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조였던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가 일반화한 것은 ‘응팔’의 시대에서 약 10년이 흐른 1997년 말부터다. 그해 외환위기를 맞아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때 조건 중 하나가 노동시장 유연화, 즉 정리해고였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1996년부터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추진한 노동법 개정은 정리해고를 합법화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의 엄청난 반발로 백지화했다.

 이때 한국의 직장인은 들어본 적 없는 정리해고라는 조치에 당황했고, 분노했다. 1997년 노동계에서 '노동자 대투쟁'이라고 일컫는 대규모 시위가 촉발한 것도 그 당시 한국 사회의 혼란과 당혹감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아직 '직장에서 잘릴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국민의 반발 앞에서 정부도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정리해고는 법제화했다. 1년이 지난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때였다. 이후 해고된 직장인은 수 만 명에 달한다. 현대자동차, KT의 전신인 한국통신, 대우자동차, 태광산업, 외환은행, 흥국생명 등에서 수만 명이 '조정 대상'이 돼 거리로 내몰렸다. 이때 구조조정은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금융권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전국공공운수노조교육공무직본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소속 근로자들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비정규직 차별 해소 예산 수립과 교육공무직법 제정, 지방교육재정 확충 등을 촉구하는 노숙철야농성에 돌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응팔의 이야기가 계속 진행돼 10년 뒤인 '응답하라 1998'로 이어진다면 은행직원인 성동일은 정리해고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

 ◇정리해고→비정규직 '현대판 신분제' 자리잡아

 이렇게 정리해고가 휩쓸고 간 자리를 비정규직 근로자가 채웠다.

 한국의 비정규직 규모는 지속해서 늘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01년 비정규직은 363만5000명으로 전체 근로자 중 26.8% 규모였다. 2002년에는 383만9000명(27.4%) 2003년에는 460만6000명(32.6%)으로 계속 증가했다. 2004년에는 539만4000명(37.0%)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이후 비정규직은 약 550만 명 선을 유지하며, 전체 근로자의 35%를 차지해 왔다. 2014년 처음으로 600만명을 넘어 607만7000명을 찍었다.

 올해 11월에는 627만1000명으로 집계돼 2003년 통계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2000년대 초반 4명 중 1명에서 이제는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은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신분제라는 지적이 많다. 이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고용 안정성과 임금 등에서 상당히 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2000년 73만원 수준에 불과했으나 이후 계속 커졌다. 2001년 80만원, 2002년 86만원, 2003년 98만원이 됐다. 2004년에는 102만원을 기록하며 처음 100만원을 넘었으며, 이후 2005년 108만원, 2006년 110만원, 2007년 120만원, 2008년 126만원, 2009년 135만원, 2010년 141만원, 2011년 140만원으로 차이를 점점 더 벌렸다.

 올해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은 146만원, 평균 근속 기간은 2년4개월에 불과하다.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월 123만원에 달한다.

 민주노총 박성식 대변인은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 사회의 핵심뇌관으로 자리 잡았다"며 "90년대 후반 비정규직이 양성화했고, 2006년에는 확산이 현실화했다"고 짚었다. 박 대변인은 "지금 정부와 기업은 비정규직 자체를 정상적인 노동시장으로 안착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