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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미래다④]'라면에 스마트폰' 나홀로 아이들

등록 2015-12-29 09:34:31   최종수정 2017-01-04 22: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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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오동현 기자 =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교실은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하다. 아이들은 주말 동안 엄마, 아빠와 나들이 다녀온 것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다.

 현우(가명·12)는 친구들의 수다에서 늘 멀찍이 떨어져 않아 공책에 낙서만 끄적거린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는 이번 주 토요일에는 쉴 수 있다고 약속했으나 그날도 어김없이 현우에게 두 동생을 맡기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정오가 다 돼서야 일어난 현우는 동생들과 함께 빵, 과자로 첫 끼니를 해결했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그것도 재미가 없어지자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며 주말을 보냈다.

 2012년 전국 모든 학교가 '주 5일제' 수업을 시행하면서 여건이 되는 가정의 아이들은 각종 체험활동으로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와 달리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부모를 둔 저소득 가정 아동들은 홀로 집에 방임되는 경우가 많다.

 이미설 가락종합사회복지관 대리는 "나 홀로 아동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끼니다. 불을 다루기 힘든 저학년 아이는 식사를 거르는 일이 잦고, 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을 주로 섭취할 수밖에 없다"며 "한창 자라날 시기에 영양 불균형으로 성장이 저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건복지부가 18세 이하 아동을 양육하는 4007가구(빈곤 가구 1499가구 포함)를 대상으로 벌인 '2013년 한국아동종합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의 64.7%, 아동의 51.2%가 일주일에 3회 이상 인스턴트 음식(라면, 햄버거 등)을 먹는다고 답했다.

 특히 빈곤 가정 중 절반에 가까운 42.2%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식품 빈곤'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가정 돌봄이나 국가 돌봄 서비스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은 게임중독이나 범죄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인터넷·스마트폰 등 매체 중독 고위험에 포함되는 초등학생은 16.3%에 이른다.

 현재 국내 나 홀로 아동은 240만명에 달하나 지역아동센터를 비롯한 돌봄시설을 이용하는 아동은 40만명에 불과하다. 나 홀로 아동을 24시간 보호하고 돌볼 사회적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2013년 1월부터 현재까지 총 1700만 원을 배분해 연인원 28명 방임 아동의 안전한 토요일을 지원하고 있다. 가락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이 프로그램을 제안했을 때, 주말에도 혼자 보내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차별성에 주목했다.

 저소득 맞벌이 가정, 한부모 가정의 나 홀로 아동을 돌보는 프로그램은 단순한 아동 보호에 그치지 않고 놀이와 체험활동을 함께함으로써 정서적 결핍을 채워주고 자아존중감 향상을 이끌고 있다.

 "너, 물레 알아? 부드러운 흙을 올리고 돌리면 도자기를 만들 수 있어!" "지진이 일어나면 가스 밸브 잠그고, 방문 열어둔 채로 책상 밑에 숨어야 해."

 현우가 토요일 교육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도예 체험과 안전박물관 견학, 여름 캠프 등을 다녀온 뒤 친구들에게 한 말이다. 담임 선생님에게서 평소 말이 없고 주눅이 들어 있던 현우가 요즘 바뀌고 있다는 연락이 올 정도다.

 현우를 비롯해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아이 28명은 대부분 소심하고 낯가림이 심해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렸다. 하지만 평소 접해보지 않은 다양한 놀이와 체험활동을 하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도자기 만들기, 불 없이 만드는 요리법 배우기 등은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이고 완성 후 성취감까지 느끼게 했다. 스마트폰 중독 예방 교육도 아이들 스스로 개선 의지를 보였다.

 강사와 사회복지사들은 '어떤 좋은 체험 학습장보다 이 프로그램에 보낼 때 가장 안심이 된다' '아이들이 다른 곳은 몰라도 이 프로그램에는 꼭 가려고 한다' 등 부모의 한마디에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국내 아동이 주관적으로 평가한 '삶의 만족도'(60.3점)와 성장에 필요한 물질적·사회적 기본 조건의 결여 수준인 '아동결핍지수'(54.8%)는 모두 31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의 행복은 경제적 측면을 넘어 가족관계 만족감, 가정과 학교 내 안전, 즐거운 여가 등에 의해 그 수준이 달라진다"며 "아동의 행복한 삶을 위해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보내는 질 높은 시간, 친구들과의 놀이, 안전한 학교 등을 보장하는 사회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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