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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여자만 아는 고통 '생리전 증후군'…우울증에 도벽까지

등록 2015-12-29 07:00:00   최종수정 2016-12-28 1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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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시티(미국)=AP/뉴시스】할리우드 스타 위노나 라이더.
【서울=뉴시스】이재은 기자 = #1. 할리우드 여배우 위노나 라이더(44)는 2002년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그가 훔친 것은 양말, 액세서리 등 값싼 물건들이었다.

 #2.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최모(40)씨는 2012년 지인의 자택에서 현금 80만원, 자기앞수표 10장 등 200만원 상당이 든 명품 지갑을 훔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의 일탈 행동이 "생리전 증후군에 의한 충동적인 도벽 때문"이라고 진술했던 것.

◇생리전 증후군은 무엇인가

 '생리전 증후군(PMS; Pre Menstrual Syndrome)'은 가임여성에게 매달 어김없이 찾아오는 생리, 즉 '마술'에 걸리기 전 '마녀'가 되는 현상을 뜻한다.

 생리전 증후군은 생리통과 전혀 다른 질환이다. 무엇보다 발생 시기가 다르다. 생리 전에 나타나면 생리전 증후군, 생리 후 나타나면 생리통으로 간주하고 있다.

 생리전 증후군은 보통 생리를 시작하기 4~10일 전부터 일어나는 다양한 신체·정서적 증상들이다. 전체 가임 여성의 약 75%가 일생에서 최소 한 차례씩 경험한다. 이 중 3∼8%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증상은 150여 가지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유방통, 두통, 부종, 변비, 설사, 식욕 증가 등 신체적인 증상이 있다. 또 우울함, 집중력 저하, 피로감, 신경과민 등의 정서적인 증상들도 나타난다. 심한 경우 자제력을 잃고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고, 도벽 혹은 자살 충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호르몬·신경전달물질 등의 변화로 추정한다. 생리주기에 따라 분비되는 여성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 신경호르몬 엔도르핀·세로토닌 등의 불균형이나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다. 이뿐만 아니라 특정 미네랄, 비타민 등의 부족이나 불균형도 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고성에 도벽까지… 내가 아닌 또 다른 나?

 여성 대부분이 미약한 수준의 우울감이나 신경과민을 느끼는 데 그치지만, 극히 일부 심각하게 겪는 여성이 문제다.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기도 하는 탓이다.   

 실제 서울 양천구 목동에 거주하는 30대 워킹맘 이모씨는 20년 동안 생리전 증후군을 겪고 있다. 생리 시작 일주일 전부터 급격히 우울해지고, 예민해지는 등 마치 다른 사람이 되는 듯하다. 직장에서는 업무 효율성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가정에서는 남편과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많아지는 등 삶의 의욕도 없어진다.

 증상이 매달 반복되다 보니 남편도 그 시기쯤 되면 퇴근을 늦추고, 아들도 슬금슬금 눈치를 살핀다. 사실 전에는 막상 생리를 시작하면 이런 증상이 모두 사라지므로 이씨 스스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아들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자신에게 충격을 받아 치료받을 생각을 하고 있다.

 또 지난 8월 부산 서면에 있는 한 백화점에서 40대 가정주부 박모씨가 옷을 훔치다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는 생리 도벽증에 시달려 3년 동안 무려 옷 500여 벌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옷을 입거나 판매하기 위해 훔친 것이 아니라 생리할 때가 되면 물건을 훔치는 쾌감을 느끼고 싶어 충동적으로 훔치게 된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생리전 증후군으로 인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해 박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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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생리전 증후군은 정도에 따라 심각할 수도 있다. 미약한 수준의 우울함이나 신경과민을 느끼는 여성이 대부분이지만, 심각할 경우 도벽 등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기도 한다. 우울증을 앓던 주부가 울산지역 백화점 등에서 5년간 상습적으로 훔쳐온 물건들.                                                         (사진=뉴시스DB)
◇생리도벽…유죄인가, 무죄인가?  

 이처럼 심각하게 일상생활을 해칠 수 있는 생리전 증후군이지만, 이를 '질병'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공감대는 부족한 편이다. 당사자인 여성부터도 큰 감정의 기복을 겪거나, 도벽충동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남성의 경우 아예 이런 증상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생리도벽에 따른 범죄에 대한 유·무죄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생리전 증후군으로 인한 심신장애가 인정되면 무죄가 되거나 형이 경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체적, 심리적 불안정성과 극도로 예민해지는 여성 정서를 고려한 판단이다.

 그러나 이를 악용해 상습적으로 절도를 일삼거나 도벽 전과가 있는 경우, 생리도벽이 아닌데도 이를 핑계 삼아 절도를 범한 것이 인정되면 실형 선고를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생리전 증후군을 호소했더라도 전과가 있고, 평소 관련 치료를 성실하게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가 된 사례가 있다. 반대로 백화점에서 300만원 상당의 옷을 훔친 여성이 생리전 증후군으로 인한 심신장애가 인정돼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생리도벽으로 입건되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전문심리위원이 면담 조사하고, 정신 감정하는 등 철저히 조사해 범죄 유무를 판단한다"고 밝혔다.

◇전문가 "피임약 복용으로도 증상 완화…피임약 편견 없애야"

 전문가들은 여성이 생리전 증후군을 무작정 참으면 증상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이어 생리전 증후군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은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병원 진료를 받은 후 피임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증상을 한층 완화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증상이 가벼우면 식사 조절과 생활습관 개선으로 호전시킬 수 있다. 채소, 과일, 생선 등을 충분히 섭취하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금연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노력하면 생리전 증후군의 증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아울러 요가, 산책 등의 규칙적인 운동은 엔도르핀을 분비해 정서적 증상 개선을 돕는다.

 그러나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한 증상은 산부인과 의사의 진료를 받고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피임약을 매일 하루 1알씩 같은 시간에 꾸준히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피임약도 종류가 다양해져 전문의와 상담 후 자신에게 맞는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것이 좋다.

 이예경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피임생리연구회 위원은 "우리나라 여성들은 피임약 복용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면서 "피임약은 생리전 증후군 치료, 생리통 완화를 위해 많이 이용되고 있다. 피임약만 복용해도 증상을 많이 완화할 수 있으므로 선입견을 품을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이어 "평소 카페인 섭취량을 줄이고 운동을 하는 등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며 "증상이 심하면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정신과 진료를 병행하면서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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