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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골드미스’ 민씨의 어느 하루

등록 2016-01-17 07:00:00   최종수정 2016-12-28 16:2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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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1인가구 연령대별 추이. 현대경제연구원 (뉴시스DB)
【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금요일 오전 6시, 여느 날과 같은 하루가 시작됐다. 반쯤 뜬 눈으로 침대에서 기어 나와 곧장 주방으로 향한다. 날씬하게 생긴 소형 커피머신에 아메리카노 캡슐을 넣어 진하게 한 잔 내린다. ‘흠, 향이 좋은데….’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나니 찌뿌둥했던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리모컨으로 라디오를 켠다. 뉴스가 흘러나온다. 안보와 선거에 관한 내용이다. 새벽에 배달된 샐러드 도시락으로 가볍게 아침을 먹는다.

 출근하기 위해 서둘러 화장을 한 뒤 옷을 갈아입는다. 한 달 전 승진했을 때 거금을 주고 구입한 외투를 기분 좋게 걸친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나와 차에 시동을 건다.

 30대 중반 미혼 여성 민홀로(37·여·가명)씨의 아침 풍경이다. 민씨는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는 이른바 ‘골드 미스’다. 예쁘장한 미모에 안정적인 직장, 경제력까지 갖췄다. 주변 사람들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그저 웃어넘긴다. 민씨는 지금과 같은 ‘싱글’의 삶이 좋다.

 ◇“싱글이 좋아”……맞춤상품 ‘진화 중’

 “대학원을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했어요. 그리고 직장에 들어간 뒤에는 일에 매진했죠. 처음에는 연애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혼자인 삶이 편해요. 결혼요? 글쎄요…. 지금은 그냥 싱글의 삶을 즐기고 싶어요.”

 1인 가구 500만 시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는 506만 가구로 전체의 25.6%를 차지했다. 네 가구 중 한 가구는 ‘싱글족’인 셈이다. 일각에선 2035년 1인 가구가 763만 가구(34.3%)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하고 있다.

 결혼을 늦추거나 하지 않는 싱글족도 증가 추세다. 이들은 부모에게서 독립했으나 결혼하지 않은 채 혼자 살아간다. 결혼은 ‘선택’일 뿐 ‘필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배우자나 아이에게 삶의 기쁨을 찾는 대신 자신만의 삶을 만끽한다. 

 이들은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삶을 영위한다. 돈과 시간을 오롯이 자신에게 투자할 수 있는 만큼 여유롭게 문화·취미생활을 즐긴다. 가끔은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쓰기도 한다.  

 이들은 이미 주요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2014년 1인 가구의 소득 대비 소비 성향은 80.5%로, 전체 가구 평균인 73.6%를 웃돈다.

 기업들은 저마다 ‘싱글슈머(Single+consumer)’‘포미(FORME)족(자신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소비집단)’의 지갑이 저절로 열릴 만한 아이템을 속속 개발하고 있다.  

 평수는 작으나 공간 활용도가 높고, 쾌적한 소형 오피스텔·아파트·빌라는 물론 엘리베이터에 주차장, 무인 택배함 등 편의시설까지 갖춘 주거시설이 등장하고 있다. 

 기능은 유지하면서 크기를 줄인 소형 가전·가구는 수납형이나 다목적용으로 진화하고 있다.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 주요 편의점의 PB 도시락, 소량으로 포장된 식자재와 즉석식품 등도 싱글족을 겨냥한 맞춤형 상품들이다.

 반려동물 상품 등 싱글족을 위한 문화·취미 관련 상품·서비스 매출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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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뉴시스 DB)
 ◇“결혼 싫지만, 유대감 중요”

 민씨는 금요일이면 퇴근 후 마트에서 장을 본다. 주말에 먹을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소포장 된 채소와 과일,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즉석식품과 냉동식품, 그리고 통조림 몇 개를 골랐다. 독립할 당시 ‘박리다매’를 하다 남은 음식을 다 버려야 했던 걸 떠올리면 조금 비싸더라도 소포장 된 식재료가 더 경제적이다.  

 금요일은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집에 설치한 ‘나만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빔프로젝터는 6개월 전쯤 구매했다. 한쪽 벽면에 설치한 100인치 크기의 스크린이 그려내는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일주일 피로가 가시는 듯하다.

 이번 주말엔 독서모임이 있다. 격주로 모이는데 이번엔 각자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갖고 와 소개하기로 했다. 민씨는 취미가 같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일을 핑계로 한동안 손 놓고 있던 책을 가까이하게 된 것도 만족스럽다.

 지금은 참여하는 모임이 하나밖에 없지만, 기회가 되면 또 다른 모임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악기·춤을 배우거나 여행하는 모임을 생각 중이다.

 민씨는 “결혼이 싫다고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사회적 유대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싱글족의 단점은 자칫 외로워질 수 있다는 거잖아요. 사람들과 만나 취미를 공유하거나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에요. 언젠가는 악기를 배우거나 여행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싶어요.”  

 ◇“싱글족 증가는 큰 흐름…사회적 공감대 필요”

 민씨에게도 고민은 있다. 주위 사람들의 걱정과 색안경 때문이다.

 “언젠가 가까운 어른이 ‘능력 있으면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어른들은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거든요. 확실히 예전보단 그런 인식이 많이 희석된 것 같아요. 싱글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시나브로 바뀌고 있는 거겠죠.

 하지만 아직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더 많아요. 색안경을 끼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럴 땐 좀 불편하죠. 전 지금 제 삶이 만족스러워요. 제 삶의 주인공은 저잖아요. 그걸 인정해주면 좋겠어요. 각자 나름대로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있는 거니까요.”

 민씨는 노후 대비도 하고 있다. ‘화려한 싱글의 삶’이 노후까지 이어지길 원해서다.

 “늙고 병들었을 때 혼자라고 생각하면 좀 서글퍼져요. 사실 이혼을 하거나 자녀가 곁에 없는 경우랑 비슷하겠죠. 그래서 지금부터 노후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싱글족이 늘어나는 건 큰 흐름인 것 같아요. 저출산, 고령화처럼.

 궁극적으론 사회적인 안전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실버타운이 있잖아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서로 말동무도 하고,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도 받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국가 차원에서 작동돼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결국은 사회적 공감대가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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