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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단독][종합]계모학대로 숨진 '울산 서현이' 살릴 수 있었다

등록 2016-01-19 15:46:31   최종수정 2016-12-28 16: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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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울산 의붓딸 살인사건' 상담일지 중 일부.
상담원, 계모인지도 파악 못 해…"괜찮다"는 아동 말만 믿어 잇단 병원 진료 기록에도 병원·아동보호기관은 '모르쇠'

【서울=뉴시스】신정원 조명규 기자 = #1. (등의) 멍 자국이 생생했음. (중략) 아동은 수박을 먹으며 묻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함. 친모가 친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대답한 것은 전혀 없었고, (중략) 친모와 친부 중에 누가 더 좋냐고 묻자 둘 다 좋다고 함. (중략) 아동에게 꿈이 뭐냐고 묻자 대답하지 못함. (후략)(2011년 5월13일)

 #2. 이마에 난 상처는 왜 그런 것이냐고 묻자 집에서 의자에 받혔다고 함. (중략) 다른데 아픈 데는 없냐고 묻자 없다고 했으며 오늘 등이나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괜찮냐고 묻자 괜찮다고 함. '친모는 좋은 엄마야?' 하고 묻자 좋은 엄마라고 함. (중략) 친부랑은 뭐하고 놀았냐고 하자 '아빠랑 집에서 비행기 타다가 창문에 부딪혔어요'라고 함. (중략) 친모가 차가 있어서 유치원에 데리러 온다고 했으나 교사에게 확인해 보니 유치원 차로 아파트 근처까지 픽업하고 그 곳에서 친모가 아동을 데리고 간다고 함.(2011년 5월19일)

 부모의 학대가 의심되는 아동과의 상담 내용이다.

 상담 결과는 '이상 없다'신체학대라고 보기 어렵다'였다. 이 아동은 그로부터 2년여 뒤인 2013년 10월 학대로 숨진 '울산 계모 의붓딸 살인 사건' 피해 아동 이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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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울산 의붓딸 살인사건' 상담일지 중 일부.
 19일 뉴시스가 단독 입수한 서현이의 아동보호기관 상담일지를 보면, 서현이는 이미 2011년 아동학대가 의심돼 전문 상담을 받았는데 상담원 2명은 '아동학대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뉴시스가 확보한 상담일지는 총 3개다. 2011년 5월13일 방문상담 내용과  5월19일 방문상담 및 통원치료 내용이다.

 서현이가 경북 포항의 한 유치원을 다녔던 지난 2011년. 몸에 자주 멍이 드는 것을 이상히 여긴 유치원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 당시 교사는 몸의 멍 자국에 관해 물었고, 서현이는 "엄마(계모)가 때렸다"고 답했다.

 하지만 상담원들은 "등의 멍 자국 외에 신체학대 사실이라고 증명될 만한 흔적이 없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다"며 "친부 상담을 통해 아동 양육 과정에 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상담원이 이같이 결론 내린 것은 서현이가 부모에 대해 '좋다'고 얘기했고, 소아과 진료 후 몸의 상처가 신체 학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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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울산 의붓딸 살인사건' 상담일지 중 일부.
 상담원은 실제 소아과 통원치료 후 "건강에 이상이 없고 키 112㎝, (몸무게) 17㎏으로 정상임. 등의 멍 자국은 거의 사라지고 없음. 다리에 흉터 자국이 있으나 신체학대라고 의심하기엔 무리가 있음. 오른쪽 무릎 아래에 흉터가 좀 깊어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으나 이상이 없었음"이라고 소견을 밝혔다.  

 하지만 상담 과정을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먼저 상담사는 서현이의 어머니가 '친모'인지, '계모'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담사는 상담일지에 계속 '친모'라고 적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정보라고 할 수 있는 가족관계도 몰랐던 셈이다.

 아이의 상태나 행동은 간과한 채 '괜찮다'좋다'는 말만 신뢰한 것도 사태를 키웠다.

 상담일지를 보면 서현이는 '무엇을 좋아하는지'꿈이 무엇인지' 등의 질문에 대답을 잘하지 못 한다. 뒤늦게 발레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학원은 다니지 않았고, 어머니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도 상담원은 의문을 갖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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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안정섭 기자 = 부산고법이 16일 '울산 계모' 박모(41·여)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18년형을 선고한 가운데, 이날 오후 울산하늘공원 영결식장에서 전국 아동학대 피해 유가족 등 20여명이 모여 故 이서현양을 위한 추모식을 열었다. 이양의 생전 모습이 담긴 추모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2014.10.16.  [email protected]
 '어머니가 차가 있어 유치원에 데리러 온다'는 말이 거짓말인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아이가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지는 더 따지지 않았다.

 특히 당시 유치원 교사가 아동보호기관에 신고했던 것은 서현이 몸에 자주 멍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서현이는 교사에게 등과 배가 아프다고 했고, 몸의 멍 자국에 대해 "어머니가 때렸다"고 말했다. 잦은 구타를 의심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아동 보호 기관은 상담 과정에서 구타 사실을 부인했다는 이유로 '학대로 의심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병원 진료 기록엔 서현이가 끊임없이 학대당한 사실이 남아 있다.

 2011년 머리와 등을 맞아 진료를 받았고, 이듬해엔 귀가가 늦었다는 이유로 허벅지를 발로 맞아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같은 해 남편과 말다툼을 한 계모가 욕실에서 뜨거운 물을 뿌려 2도 화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은 경찰이나 아동보호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다. 아동보호기관 역시 지속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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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장지승 기자 = 지난 10월24일 계모에 의해 숨진 이모(8)양의 친어머니 심모씨가 계모 박씨의 첫 공판이 열린 17일 울산지법에서 계모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3.12.17.  [email protected]
 서현이는 2013년 10월24일 여덟 살의 나이로 고통스러웠던 세상을 등지고 만다.

 '울산 계모 의붓딸 살인사건'은 박모(43·여)씨가 사실혼 관계인 이모(49)씨의 딸 서현이를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수차례 폭행하는 등 지속적으로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박씨는 1심에서 상해치사죄만 인정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2014년 10월 항소심에서 살인죄가 인정돼 징역 18년을 확정받았다.  

 친아버지인 이씨는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기소돼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됐다.

 경찰 조사 결과 서현이는 갈비뼈 24개 중 16개가 부러진 상태였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숨졌다. 집 거실에는 아이의 생니가 굴러다녔다고 한다. 엉덩이 근육이 소멸하고, 섬유질로 채워지는 '둔부조직 섬유화'는 지속적인 폭력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8살짜리 어린 아이답지 않게 예의 바르고 조신했던 서현이는 잦은 구타에도 아프다는 말 한 번, 부모가 때린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단지 소풍을 보내 달라고 했을 뿐인데 사회와 어른들의 외면 속에 가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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