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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친권'의 덫…학대아동에겐 '공포의 집'

등록 2016-01-20 09:12:18   최종수정 2016-12-28 16: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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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사건, 초기 대응·격리가 중요"

【서울=뉴시스】신정원 조명규 기자 = 지난 2013년 8월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칠곡 계모' 사건의 최초 용의자는 피해아동 소연(당시 9세)양의 친언니 A(15)양이었다. 당시 A양은 "인형을 빼앗기기 싫어 동생을 발로 차 죽였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와 법정에서도 이같이 진술했던 그는 계모 임모(38)씨와 친부 김모(40)씨로부터 격리되자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1심 재판 막바지인 2014년 2월 즈음이다. 사건 발생일부터 치면 6개월이 지나서였다.

 A양이 처음에 거짓으로 자백한 것은 임씨의 강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과 함께 계모의 지속적인 학대에 시달렸던 A양은 뒤늦게 "계모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또다시 학대를 당하거나 동생처럼 맞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해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20일 뉴시스가 최근 몇 년간 국민의 공분을 산 아동학대 사건들을 살펴보니 이면에는 언제나 '친권 남용'이 있다.

 민법상 친권은 '부모가 자녀를 보호·양육하고 그 재산으로 관리하는 권리·의무'다. 친권을 행사할 때는 자녀의 복리를 우선 고려하게 한다.

 하지만 학대 아동에게 친권은 '덫'이자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소연이가 숨지기 약 한 달 전인 2013년 7월. 아이들의 멍 자국을 본 외삼촌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지만, 친부는 "우산으로 자매 싸움을 말리다 실수로 생긴 것"이라고 변명한다. 그런데 경찰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소연이에게 사실인지 물었고, 소연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대로 철수했다.

 소연이는 2012년 10월에도 지구대에 계모의 폭행 사실을 신고했으나 아버지가 조사를 받게 되자 진술을 번복하고 만다. A양 역시 경찰 조사에서 시키는 대로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모와 친부에게 또다시 학대를 받는다.

 A양은 2013년 12월 심리치료 등을 위해 입원할 때까지 친부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에게 친권과 양육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온갖 협박과 회유에 시달리며 계모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에게서 떨어지고 심리치료를 받은 뒤에야 비로소 계모의 잔인한 학대 사실을 낱낱이 얘기할 수 있었다.

 공혜정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전 하늘소풍) 상임고문은 "친권은 미성년자인 아이가 사회적으로 이익을 받을 수 있도록 부모가 권리를 대리해주는 것"이라며 "거꾸로 아이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한다면 그런 친권은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친권'이라는 명목으로 학대 의심 아동을 친권자와 함께 있게 하는 것은 2차, 3차 피해를 방치하는 것과 같다"며 "학대가 의심될 땐 즉시 격리하고 심리치료 등을 하며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법원이 아동학대 사건에서 잇따라 친권 정지 등의 결정을 내린 것은 고무적이다.

 인천지검은 지난 11일 '인천 11세 학대 소녀' 사건의 가해자 아버지 B(32)씨를 구속기소 하고 친권 상실을 청구했다.

 이 여아는 게임에 빠진 친아버지와 동거녀에게 3년 4개월 동안 감금당한 채 학대에 시달렸던 소녀다. 이 아이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한겨울에 여름 바지를 입고 2층 창문을 통해 탈출한 뒤 동네 슈퍼에서 빵과 과자를 훔쳐 먹다 발각됐다. 당시 몸무게는 16㎏에 불과했다.

 친권상실 청구는 2014년 9월 시행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이뤄졌다. 이 법은 의붓딸을 상습 폭행해 숨지게 한 '칠곡 계모 사건'(2013년)과 '울산 계모 사건'(2013년) 이후 만들어졌다. 이 법에 따라 검찰은 자녀를 상습 폭행하거나 학대해 중상해 또는 사망케 하면 의무적으로 법원에 친권 상실을 청구해야 한다.

 이와 별개로 인천지법은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피해아동보호명령 사건을 개시하고 친권을 정지했다. 임시 후견인으로는 인천남부아동보호전문기관장을 지정했다. 당시 법원이 직권으로 친권정지 명령을 내린 것은 이례적인 일로, 친권상실 판결까지 시일이 오래 걸리는 점을 고려한 조치였다.

 이어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지난 19일 초등학생 아들 최모(2012년 당시 7세)군을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훼손해 4년간 냉동고에 보관해 온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 부모에 대해 친권 정지 명령을 내렸다. 최군 여동생의 임시후견인은 인천시아동보호전문기관장이 맡기로 했다.

 이 외에 5살짜리 딸에게 뜨거운 물을 붓는 등 상습 폭행한 어머니(28)도 친권을 박탈당했다.

 친권 정지 명령 뒤 실제 박탈할지는 법원의 판단이다. 문제는 친권이 유지됐을 때 학대 아동이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경우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아동학대 건수 9만5622건 중 아동학대 판정을 받은 것은 5만5484건이었다.

 이 중 법적 조치가 이뤄진 것은 572건에 그쳤다. 이마저도 재판에 넘겨진 것은 32.3%에 불과했다. 벌금형 약식기소는 12.7%였고 나머지는 기소유예(30.3%), 혐의없음(13.4%) 처분이 내려졌다.

 아동학대 가해자는 부모가 82.7%, 대리양육자 6.8%, 친인척 6.2% 등이었다. 결국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아동 대부분은 '공포' 속으로 복귀해야 했다.

 아동보호기관 관계자는 "아무런 장치 없이 피해 아동을 원래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무조건 친권을 박탈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나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 상임고문은 "아동학대 사례 중 부모가 제대로 통제하는 법을 몰라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경우엔 피행아동에 대한 심리치료와 함께 부모들에 대한 훈육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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