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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PR의 달인' 도널드 트럼프, '대세론'엔 이유 있다

등록 2016-01-26 09:37:56   최종수정 2016-12-28 16: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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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지예 기자 =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70)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막말 논란에도 지지율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이제 '트럼프 대세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적인 목소리가 슬슬 나온다.

 정치 분석가들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다가오면 유권자들이 진중해지면서 트럼프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질 거라고 코웃음쳤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트럼프 후보는 이제 지지율 2위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많게는 두 배까지 지지율 차이가 난다. 

 트럼프는 무슬림 입국 금지 주장에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향해 원색적인 욕설을 퍼붓는 등 연말연시에도 꾸준히 '막말' 목록을 업데이트했다.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포퓰리스트 등등 온갖 비난이 따라 다녔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화당 지도부는 대선 레이스 초반부터 판세를 장악한 '막강한' 후보를 갖고도 웃지 못한다. "트럼프는 보수주의 가치를 대변하지 않는다", "트럼프 당선은 미국에 재앙이다"라는 식의 비난은 모두 공화당 내부에서 나왔다.

 공화당의 애물단지 트럼프 후보가 '잘 나가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가 생각 없는 막말 제조기가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이자,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차례 대권과 뉴욕시장 자리를 노려 온 야심가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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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RP의 달인…막말 뒤에 숨은 전략

 트럼프 후보는 자타공인 '마케팅의 달인'이다. 기업 관련 웹페이지에서는 그의 홍보 전략을 파헤치는 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경제잡지 '기업가'(Entrepreneur)의 기사 "트럼프의 대권 도전을 보며 배울 수 있는 마케팅 교훈"이 대표적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트럼프를 '마스터 브랜더'(a master brander)라고 표현했다. 스스로를 '브랜드화' 하는 데 그를 따라올 자가 없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수십 년에 걸쳐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리얼리티쇼 주인공 등으로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정치로 무대만 바뀌었을 뿐 대담하고 직설적이며 웬만해선 타협을 모르는 트럼프의 스타일은 그대로다.

 오랜 경기 침체와 정치권의 무능에 염증 난 대중들은 부자인 데다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리더' 트럼프 후보의 등장에 환호했다. 그는 "당신은 저기 가서 문제를 고칠 누군가가 필요하다. 놈들이 내가 고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면 그들을 내 앞 길에서 그냥 치워 버리겠다"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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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가 다른 후보들과 달리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슈퍼팩(SPC) 도움은 필요 없고, '제 멋대로'인 월스트리트 금융업체들에 가차 없이 세금을 물리겠다고 장담하는 것도 이런 자신감에 근거한다. 그는 자신의 재산이 100억 달러(약 12조650억 원) 상당이라고 주장하면서 성공적인 기업 경영 경력을 한껏 내세운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표현도 트럼프의 강점이라면 강점이다. 사람들 앞에 설 때 그는 반드시 짧은 문장, 간단한 단어를 사용한다. 트럼프의 '단어장'은 공화당 대선 주자들 사이 가장 수준이 낮다고 분석된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단순 무식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아이비리그 명문인 펜실베니아대학 와튼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제학 학위를 받았다. 

 트럼프의 '막말'은 지극히 의도적이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적 언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원칙)이라는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기성 정치인들이 몸을 사리는 민감한 이슈들을 지나칠 정도로 거친 표현으로 지적한다. 막말 행보 비난에 트럼프는 문제가 명백한데 솔직하게 꼬집지 못하는 것이 더 나쁘다고 말한다.

 트럼프 후보의 불법이민자 강제 추방과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을 옹호하는 이들은 그의 이런 면모를 감싼다. 표현 방식이 정중하지 못할 뿐이지 그의 주장이 완전히 터무니 없지는 않다고 한다. 실제로 이민 개혁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공포 등은 미국인들이 제일 걱정하는 이슈 중 하나로 조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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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가 국민들 사이 전체주의와 권위주의를 조장한다는 우려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반복해서 제기하는 한국의 '안보 무임 승차론'이 잘 보여주듯 그는 문제의 단면만 놓고 공격 표적을 궁지로 몰아간다.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반공주의)'이 '트럼피즘'으로 부활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트럼프 후보만의 독특한 소통법도 살펴볼 만하다. 일각에서는 그를 뛰어난 '스토리텔러'로 꼽는다. 트럼프는 추상적인 것보다는 자신이 겪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연설과 인터뷰 주제에 연계시켜 대화를 풀어 나간다. 일상적인 용어로 연설을 하다가 슬쩍 반문해 청중이 반응하게 만든다. 많은 정치인들이 의존하는 프롬프터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고령이지만 소셜 미디어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트럼프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통틀어 트위터 팔로워가 가장 많다. 쉬지 않고 자신을 과시하는 트윗을 올리고 팔로워들과 대화한다.

◇ 심상 찮은 트럼프 '바람'…'승부사'될까

 이같은 요소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트럼프 후보는 지금까지 선거운동에서 저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냈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해 선거 운동에 560만 달러를 투입했다. 군소후보로 추락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슈퍼팩을 통해 무려 50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썼다. 세간의 평가가 어떻든 트럼프가 이목을 집중시키는 능력 덕에 짭짤한 이익을 봤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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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후보의 위상도 작년 6월 출마 선언 때와 비교하면 사뭇 다르다. 공화당 토론 코치인 브렛 오도넬은 그의 토론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면서 당내 평판도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경선 초반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던 그가 이제는 어떻게 말해야 좀더 합리적으로 들리는지 간파했다는 거다. 이런 기류에 맞춰 최근 정치 브로커와 재계 인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트럼프 후보에 접근 중이라고 알려졌다.

 트럼프의 폭주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그가 사회 분열을 부추기고 포퓰리즘으로 선동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까지 이례적으로 나서 트럼프가 국민 불안을 조성한다고 경고했다.

 분명한 점 하나는 트럼프가 갈수록 기세등등 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는 최근 의회전문매체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한 평생 클로저(closer. 마무리 투수 또는 최종 거래 체결자)였다"며 "나는 누구보다 이기는 게 뭔지 잘 안다"고 말했다.

 프린스턴대학 산하 선거 컨소시엄의 샘 왕 연구원은 전반적 대선 추세를 보면 지지율이 전국구 여론조사 1위에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주에서 1~2위를 다투는 후보가 각당의 최종후보로 낙점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분석했다.

 대선 레이스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아이오와주 코커스(전당대회)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지지율 2위인 크루즈 의원 역시 만만치 않은 후보다. 트럼프가 7월 공화당 최종 후보 지명 대회에서 (혹은 11월 결전의 날에) 승부사로 등판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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