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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훈육’이 ‘학대’로…“폭력 에스컬레이팅이 문제”

등록 2016-01-28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6: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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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뉴시스】 추상철 기자 = 최근 친부에 학대 당한 11세 소녀가 세상밖으로 나오며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는 등 지난 한해동안 가족간의 사건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 위기가족, 가족의 해체 등 가족간의 불화가 많이 발생하는 지금 가족 구성원간에 신뢰가 필요한 때이다. 새해에는 서로 손을 잡아주며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2015.12.3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오늘도 아이가 식탁에 똑바로 앉아 밥을 먹지 않는다. 어르고 달랬지만 소용이 없다. 큰 소리를 내도 효과는 잠깐뿐이다. 잠시 바른 자세로 앉았다 이내 꼼지락거리기 시작한다. 겨우 한술 떠준 음식물은 계속 입안에만 머물러 있다.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것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기어코 매를 들어야 하나. 버릇을 고치려면 어쩔 수 없다. 이건 훈육이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는 바닥에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잘못했다"는 말은 울음에 섞여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온몸을 휘감은 불그스름한 매 자국은 여기저기서 부풀어 오르고 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6살배기 아들을 둔 A(29·여)씨의 고백이다.

 A씨는 아들을 사랑하지만, 가끔 본인도 모르게 심하게 매질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겁주기 위해 시늉만 했다. 그러다 손바닥 한 대, 두 대, 세 대…,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강도도 세졌다. 지금은 매가 닿는 곳이면 아무 데나 때린다.

 아이를 때리고 난 뒤엔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온다. 아이를 꼭 껴안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한참 운 적도 있다. 하지만 ‘아이와의 전쟁’에서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면 자신도 모르게 매부터 들게 된다. 개구쟁이 아들을 키우다 보면 엄마가 욕도 배우고 손찌검도 하게 된다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어떤 때는 엄마로서 자격이 있는 것인지, 심한 자괴감마저 든다.

 A씨 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부모가 처음에는 매 들기를 주저하지만, 일단 한 번 들면 그 횟수와 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바로 ‘폭력 에스컬레이팅(escalating, 확대·증가)’이다.

 ◇10건 중 8건은 ‘가정 내’·‘부모’ 학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동보호기관)의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2015년은 미집계) 아동학대로 인정된 사건 1만27건 중 가정에서 발생한 사례는 8610건으로 전체의 85.9%에 달했다.

 이 중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는 8207건으로 81.8%나 됐다. 대부분의 아동학대가 가정 내에서, 부모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학대가 거의 매일 발생한 경우는 3073건(30.6%), 2~3일에 한 번씩은 1371건(13.7%), 일주일에 한 번인 경우는 1253건(12.5%)이었다. 한 주 동안 반복해 학대하는 경우가 절반을 넘었다. 

 재학대의 경우에도 부모에 의한 것이 87.2%, 가정에서 이뤄진 것이 90.9%로 압도적이었다.

 특히 아동학대 사망 건수는 14건은 모두 부모에 의해 일어났다. 친부 6건, 친모 4건, 양부와 양모 각 2건 등이다.

 ◇“훈육 지나쳐 학대…한 번이 위험”

 학대 가해자들은 훈육 방법을 제대로 모르거나 아이한테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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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민호 기자 =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간한 '2014년 전국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10건 중 8건은 '가정 내'(85.9%)에서, '부모'(81.8%)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email protected]
 가해자의 특성을 보면 양육 태도가 불량하거나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10건 중 3건이었다. 사회·경제적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고립된 경우는 2건, 부부나 가족 간 갈등이 있는 경우는 1건이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대부분이 ‘폭력 에스컬레이팅’ 때문에 발생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러 아이에게 학대를 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훈육을 목적으로 한 신체·정서적 폭력이 지나치다 보면 그것이 학대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최운용 아동보호기관 상담원은 “아동학대 사례 유형별 학대행위자 특성을 살펴보면 모든 학대 유형에서 ‘양육태도 및 방법 부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체벌의 유혹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가 정신적·신체적으로 약해져 있거나 분노 조절이 안 되면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사랑의 매’도 학대다”

 문제는 ‘훈육’과 ‘학대’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데 있다. 부모는 대개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조금 지나친 훈육’과 ‘조금 약한 학대’의 경계를 넘나든다.

 하지만 일부 부모는 자신의 감정이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끝내 비극을 불러오기도 한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원장은 “학대를 되풀이하는 부모에겐 잘못된 우월감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힘으로 복종하게 함으로써 ‘늘 이기는 게임’을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폭력은 자주 사용할수록 무뎌지고 그 강도는 점차 세질 수밖에 없다”며 “가학적인 쾌감이 느껴질 땐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이다. 그 전에 학대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감정조절이 안 되면 주위에 도움을 청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혜정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 상임고문은 “학대가 생활화한 부모의 경우 체벌이나 정서·언어적 폭력을 권력·복종의 도구로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며 “자녀가 잘되게 하려고 매를 든다는 왜곡된 양육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녀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면서 체벌하는 것은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불러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전문가들은 ‘폭력의 에스컬레이팅’을 막기 위해선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함께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올바른 양육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최 상담원은 “체벌은 훈육의 방법이 아니다”며 “쉽지는 않겠으나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된다는 생각을 가져 처음부터 체벌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가정에서 이뤄지는 체벌이 훈육의 한 방법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면서 “학교와 군대 내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됐듯 점차 가정 내 체벌 역시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부모’가 되기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정작 올바른 양육 방법을 배울 길은 거의 없다”며 "국가 차원의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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