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의 '독수리' 飛上 이끈 은희석 감독

등록 2016-03-22 09:12:21   최종수정 2016-12-28 16: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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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지혁 기자 = 1990년대 대학농구는 연세대와 고려대가 양분했다. 초고교급 선수들을 대거 스카우트해 미래의 국가대표 라인업으로 라이벌전을 펼쳤다. 문경은(45·SK 감독), 이상민(44·삼성 감독), 서장훈(42·방송인) 등이 활약했던 연세대가 근소하게 앞섰다는 평가가 많다. 대학 최초로 농구대잔치 정상에 올랐고, 맞대결에서도 우위였다.

 2000년대 들어 트렌드가 달라졌다. 유망주들이 명문대보다 저학년 때부터 경기에 나설 수 있는 학교를 선호하면서 자연스레 전력 평준화가 이뤄졌다. 대학 최강을 자부하던 연세대마저 하락세를 걸었다.

 연세대는 지난 4일 제32회 MBC배전국대학농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오래 걸렸다. 이 대회에서 2005년 이후 11년 만에 거둔 값진 우승이다. 대학 대회를 모두 포함해도 우승은 2009년 제46회 대학농구 2차연맹전 이후 7년 만이다. 2014년 8월 연세대 지휘봉을 잡은 은희석(39) 감독은 부임 1년 반 만에 독수리의 부활을 알렸다.

▲프로에서 다시 대학으로

 경복고~연세대를 졸업한 은 감독은 촉망 받는 가드였다. 당시로는 작지 않은 신장(189㎝)에 성실한 플레이로 눈길을 끌었다. 안양 SBS(현 KGC인삼공사)의 프랜차이즈다. 2013년 은퇴 때까지 줄곧 안양 유니폼만 입었다. 구단의 배려 속에 은퇴 이후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다녀왔다. 곧장 코치직도 맡았다. 그러던 중 2014년 여름 모교로부터 사령탑 자리를 제안 받았다. 불미스러운 일로 전임 감독이 물러나며 갑작스럽게 추진됐다. 은 감독은 “솔직히 오랫동안 구단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선뜻 수락하기 어려웠다. 고민을 참 많이 했다”고 했다.

 은 감독은 고심 끝에 “영전하는 것이니 응원을 보내겠다”는 구단의 입장을 확인하고, 받아들였다. 학교 선배인 유재학(53) 모비스 감독, 이상범(47) 전 국가대표 감독도 “후배들을 위해 열심히 해 달라”고 힘을 실어줬다. 인생은 알 수 없는 법이라지만 사실 프로라는 여유있는 자리를 박차고 대학으로 돌아온 모양새다.

 십수년 만에 돌아온 학교는 어색했다. 체육관, 주위 환경, 분위기가 예전과 다 달랐다. 은 감독은 “처음 훈련을 하는데 정말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부모가 없는 집에서 애들이 중구난방으로 뛰어다니는 느낌이었다. 앞이 깜깜했다”고 기억했다. 업무 부담이 체계적인 프로와 달리 대학은 감독의 업무도 많았다. 훈련, 선수단 관리 등 티 나지 않게 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후배들을 위해 다 내려놨다.

▲‘함께 하는 농구’ 추구 

 연세대의 선수 구성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허재(51) 전 KCC 감독의 두 아들 허웅(23·동부)과 허훈(21·3학년), 국가대표 출신 포워드 최준용(22), 대학 톱가드 천기범(22·이상 4학년)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로 꿰지 못했다. 제각각이었다. 그래서일까. 최근 몇 년 동안 라이벌 고려대를 만나 막판까지 앞서거나 대등한 경기를 펼치다가 고비를 넘지 못하는 장면이 많았다. 은 감독은 가장 먼저 팀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팀이 먼저라는 점을 강조했다. 팀을 먼저 생각하면 개인의 능력과 성적 모두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5명 나아가 벤치에 있는 선수들 모두 같은 마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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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농구뿐 아니라 학생으로서의 본분도 강조했다. 학사관리를 챙겼고, 원활한 선후배·동기 관계를 위해 신경을 썼다. 은 감독은 “코트에서 운동을 할 때에는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하지만 밖에서는 항상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추구한다. 그게 곧 경기에서 팀워크로 나타난다는 생각이다”고 했다.

 지는 경기에서 의미를 찾은 것도 큰 변화였다.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은 감독의 철학이 바탕에 깔렸다. 코트에서는 기본을 중시하며 시스템을 구축했다. 대학 특성상 입학과 졸업이 있어 선수가 매년 조금씩 달라지지만 기본 틀을 만들었다.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비와 로테이션, 스크린 활용 등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전반적인 전력 상승으로 연결됐다.

 시스템 안착은 특정 선수에 의존하는 모습에서 탈피하게 했고, 이는 곧 ‘함께 하는 농구’로 이어졌다.  그 결과물이 3월 MBC배 대회였다. 연세대는 결승에서 단국대를 83-46, 37점차로 크게 꺾었다. 앞서 준결승에서는 라이벌 고려대를 82-80으로 제압했다.

▲롤모델은 대학 은사 최희암 감독

 과거 ‘연세대 농구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최희암(61·고려용접봉 사장) 전 감독이다. 대학 최초의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었고, 수많은 농구 스타들을 키운 대학농구 최고 명장이다. 은 감독도 대학 시절에 최 전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최 전 감독은 제자의 감독 부임에 전화를 걸어 “너는 잘 할 수 있을 거야. 열심히 해라”고 응원 메시를 전했다. 은 감독은 “그동안 정말 여러 감독님들에게 배웠다. 내가 감독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분들을 닮아간다는 것을 느꼈다”면서도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최희암 감독님인 것 같다”고 했다.

 최 전 감독 외에도 초짜 은 감독에게 힘을 주는 이들이 많다. 이희택 농구부 OB 회장, 농구부장을 맡고 있는 박영렬 경영학과 교수, 전 체육위원장 여인성 체육학과 교수 등이다. 은 감독은 “변하지 않고, 항상 초심을 유지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그게 나를 도와주시고, 힘을 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11년 만에 다시 비상한 연세대 농구부. MBC배 대회의 상승세를 대학농구리그와 전국체전, 정기전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연세대의 우승은 고려대 독주 체제에 제동을 거는 신호탄으로 향후 더욱 치열할 경쟁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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