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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잊힐 권리' 외국 인터넷 사업자 미적용 한계

등록 2016-03-25 17:17:48   최종수정 2016-12-28 16: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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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장윤희 기자 = 방송통신위원회가 25일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다. 인터넷에 이미 올려진 글과 동영상 등을 어디까지 사후 삭제하고 타자의 접근을 제한해야하는지가 주제였다.  사진은 오병철 연세대 교수,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차재필 인터넷 기업협회 실장, 박노형 고려대 교수, 최경진 가천대 교수, 고환경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이진규 네이버 수석부장, 이구순 파이낸셜 부장,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실장, 엄열 개인정보보호윤리과장(왼쪽부터)이 토론을 벌이는 모습.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사생활보호권리 높이는 순작용 있어 구글·야후 등 국내 활동하는 해외 인터넷사업자 미적용 논란

【서울=뉴시스】 장윤희 기자 = #대학생 A씨는 고등학교 시절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욕설 게시물이 취업 걸림돌이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해당 게시물에는 특정 정치인을 폄하하는 표현, 자신의 이름과 학교, 친구들과 나눈 자극적인 댓글이 달려있다. 이미 탈퇴한 커뮤니티라 게시물을 삭제할 권한은 없다.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동영상을 삭제할 수 있는 '잊힐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의 국내 도입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은 25일 오후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인터넷 자기 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안)'(가칭) 세미나를 열고 법조계, 인터넷 업계, 시민단체의 의견을 들었다.

 이 가이드라인은 이용자 본인이 인터넷에서 작성·게시한 게시물에 대해 타인의 접근 배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중심으로 한다. 이용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프라이버시권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접근배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사례는 ▲자기 게시물에 댓글이 달려 게시물 내용을 인터넷에서 삭제하기 어려울 때 ▲회원 탈퇴 또는 1년간 계정 미사용 등으로 회원정보가 파기되면서 이용자 본인이 직접 삭제하기 어려운 게시물 ▲회원 계정정보를 분실해 이용자 본인이 삭제하기 어려울 때 ▲게시판 관리자가 사업 폐지 등으로 사이트 관리를 중단했을 때 ▲사망한 이(死者)가 생전에 접근배제요청권의 행사를 위임한 지정인이 사자의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접근배제를 요청할 때 ▲게시판 관리자가 게시물 삭제 권한을 제공하지 않아 이용자 스스로 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는 때 등이다.

 법조계와 인터넷업계, 시민단체는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게시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높이는 계기"란 취지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 적용 기준이 모호하고 국내 인터넷 사업자에게 불리한 상황이란 지적이 쏟아졌다. 특히 구글과 야후처럼 해외 인터넷 사업자는 이 기준을 적용받지 않아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국내 인터넷 사업자에 짐을 지운다는 불만도 나왔다.

 또 게시판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한정할 지가 불명확하고, 게시판 삭제가 어려워 인터넷 사업자에게 삭제하라는 것은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란 비판도 나왔다. 특히 영미권과 달리 국내에서는 '잊힐 권리' 개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개념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진규 네이버 개인정보보호팀장은 "가이드라인에 제시된 개념들이 구체적으로 정의되지 않으면 더 큰 논란을 부를 수 있다"며 "지금 상황으로서는 '온라인에 있는 어떤 기록이라도 자신에 관련된 정보에 대해서 인터넷 사업자에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는 식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가이드라인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해외 인터넷 사업자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도 불공정하다"며 "국내 인터넷 사업자들에 대한 또다른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 관계자는 "가이드라인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현재도 자신이 쓴 게시물은 언제든지 수정, 삭제할 수 있다"며 "문제는 서비스 탈퇴 전에 쓴 게시글 삭제 여부인데 이 경우 이용자 본인의 게시물인지 확인하는 방법이 모호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오병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 계약관계에서 종결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계속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이용자였기에 이용자 시절 벌어진 사건에 대한 권리 주장이 가능한 것이며 사업자는 갖고 있는 정보 내에서는 확인할 수 있는 데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가이드라인 확정을 위해 세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게시글 삭제를 두고 가치판단의 충돌이 발생하면 누가 최종적인 결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대책이 없는 접근배제요청권은 오히려 더 혼란만을 가중한다"고 우려했다.

 이기주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이번 가이드라인은 가안 상태로서 정식으로 채택되기까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입법이 언제쯤 가능하고, 게시물 삭제를 못해서 벌어진 피해 구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해 각계각층의 논의를 폭넓게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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