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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사태]나쁜 기업·무능한 정부가 화(禍) 키웠다

등록 2016-05-22 07:00:00   최종수정 2016-12-28 17: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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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운동연합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태 관련 시민환경법률단체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을 마친 후 공익감사청구서를 감사원 민원실에 제출하고 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시민·환경·법률단체는 대규모 사망자와 피해자가 발생한 가습기살균제 사건 전반, 피해 국민들에게 대한 외면·방치 문제, 이 사건의 진상규명 지연·방해 과정 등에 있어서의 정부와 각 부처·공공기관들의 책임과 잘못이 명백하므로, 감사원이 신속하고 전면적인 감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2016.05.1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박주연 기자 = 사망자 266명을 포함, 현재까지 총 1838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이윤추구에만 눈먼 기업들, 이를 방치한 무능정부의 합작품이었다는 사실이 갈수록 확연해지고 있다.

 초유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어디부터 단추가 잘못 채워졌을까.

 화학물질에 대한 정부의 유해성심사와 유독성 고시가 촘촘했다거나 법망이 이 정도로 허술하지 않았다면 이같은 참사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SK케미칼과 애경의 '가습기메이트'(1994년 국내 최초출시)에 사용된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와 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는 20년간 유해성심사를 면제받았다. 또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당번'(2001년 출시)에 사용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는 1996년 정부의 최초 유해성심사에서 유독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버터플라이이펙트가 만든 '세퓨'(2009년 출시)의 주원료 PH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 역시 정부의 유해성심사를 통과해 2003년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 물질'로 등록됐지만, 제품 출시 후 피해자가 속출했다.

 LG생활건강의 '119 가습기 세균제거'(1997년 출시)의 원료 BKC(염화벤잘코늄)는 1991년 이미 유독물로 분류됐지만 LG 측이 가습기 살균제 주 성분으로 사용했고, 제품의 용기에 '독성' 표시를 하지도 않았다.

 기업과 정부의 안전 윤리의식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유해성심사 '허술'…독성물 지정돼도 원료로 사용

 CMIT·MIT는 유해성 심사를 20년간 면제받았고, PHMG와 PHG는 최초 심사에서 유독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법망을 빠져나갔다. BKC는 유독물로 지정됐지만, 허술한 법망 때문에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0년대 출시됐을 때부터 2011년 12일 의약외품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공산품'으로 분류됐다. 공산품에는 공산품품질관리법(현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이 적용된다.

 1990년대 적용됐던 공산품품질관리법은 공업진흥청(현 국가기술표준원)이 공공의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는 제품을 정하고, 공산품에 품질을 표시할 지의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공업진흥청은 1994년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출시된 가습기살균제를 허가해줬다. 특히 이를 '자율안전확인대상 공산품'으로 정해 관리 책임을 업체에 넘겼다.

 유공(현 SK케미칼)이 업계 최초로 개발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는 CMIT(농도 10%)와 MIT(3.8%)를 주성분으로 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 성분이 1991년 제정된 유해화학물 관리법 시행 전 제조·수입됐다는 이유로 CMIT와 MIT에 대한 유해성 심사를 무려 20년 동안 면제했다. CMIT·MIT는 적잖은 피해자가 발생하고난 이후인 2014년에야 유독물로 지정됐다.

 PHMG는 1996년 유해성심사를 받았지만 환경부는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했다. 또 2000년 이를 '일반화학물' 로 고시했다. PHMG는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원료다.

 잘 휘발되지 않는 고분자 화합물이어서 독성실험자료를 제출할 의무가 없었고, '카펫제조 항균제' 용도로 유해성 검사를 신청했기 때문에 흡입독성 실험을 따로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 환경부의 설명이다. PHMG는 2012년에야 유독물로 지정됐다. 당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르면 PHMG 같은 고분자 화합물은 독성 실험 자료를 일부만 제출하거나 아예 제출하지 않아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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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가습기살균제피해자 가족들과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피해접수결과 보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손에 들고 있는 자료는 2016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 현황이다.  2016.05.19.  [email protected]
 LG화학(현 LG생활건강)이 출시한 '119가습기 세균제거'는 1997년 출시됐지만 이미 1991년 유독물로 지정된 BKC가 주성분이었다.

 ◇유독물인데 왜 '독성있음' 표시 없었나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생활가정화학제품 중 대다수는 유해물질관리법상 유독물이 들어간 경우 붉은 글씨로 '독성있음'이라고 표시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유독물질 BKC를 사용한 가습제 살균제는 왜 아무런 제재없이 독성표시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당시 법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는 공산품안전관리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가 관리했어야 했다.

 공산품안전관리법상 '안전 인증 대상 공산품'은 정해진 제품군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파지티브 리스트 방식'이었다. 안전 인증 대상 공산품을 관리하는 기술표준원은 세정제·방향제·접착제·광택제·탈취제·합성세제·표백제·섬유유연제만을 '안전 인증 대상 공산품'으로 정해뒀다.

 또 고시를 통해 해당 제품에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상 유독물 등이 사용된 경우 눈에 띄는 붉은 글시로 제품 전면부에 '독성있음' 표시를 하도록 정했다. 하지만 '세계최초'로 한국에서 개발된 가습기 살균제는 '파지티브 리스트' 방식의 안전 인증 대상 공산품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그러나 고시를 고쳐 '가습기 살균제'를 포함시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반 가정에서 바닥, 욕조, 타일, 자동차 등의 물체를 세정할 용도로 사용하는 세정제만을 관리 대상으로 하고 있었을 뿐 살균제는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왜 참사날 때까지 방치했나…집중조사해야"

 결국 소비자의 안전보다는 이익을 추구하는 나쁜 기업과 국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하지 않은 무능한 정부가 참사를 일으킨 셈이다.

 가습기 피해자를 대변하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송기호 변호사는 19일 뉴시스와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유독물은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등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 변호사는 "BKC의 경우 유독물 고시가 됐음에도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들어간 최초사례로, 정부의 무능과 관리미비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공산품안전관리법과 기술표준원 고시로 유독물이 포함된 제품에 '독성있음' 표시를 해야 했지만, 허술한 법망으로 형식적 연결고리마저 끊어졌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왜 비극적 참사가 날 때까지 계속 공산품안전관리법상에서 제외된 상태가 유지됐느냐는 점이 문제의 핵심일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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