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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전쟁에 깊어지는 '마음의 병'…각종 불안장애 확산

등록 2016-07-24 08:50:00   최종수정 2016-12-28 17: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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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95% "우울증 느껴…미래에 대한 불안"  불면증·무기력·소화장애·공황장애 등에 시달려  창업으로 취업 고통 벗어나려해도 성공 확률 낮아  "개개인 사정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서울=뉴시스】박영주 기자 = #1. 취업준비생 이모(29)씨는 몇달 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들의 하반기 공채가 시작되면서 뜬 눈으로 밤을 새는 날이 더욱 많아졌다.

 이씨는 "다니던 직장이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취업 전선에 다시 뛰어들었는데 합격의 문턱이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며 "상반기 공채에 떨어진 이후부터는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소화장애까지 생겼다"고 토로했다.

 그는 "나이는 계속 드는데 이렇다 할 경력도 없고 남들보다 스펙까지 떨어진다는 생각도 들면서 자괴감이 든다"며 "'잉여'가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버텨왔는데 요즘은 이유없이 무기력해지고 비관적인 생각이 들면서 우울해지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2. 대학 4학년 박모(25)씨는 상반기 공채에서 원서를 100개 가까이 썼지만 모두 탈락했다. 하반기 취업 준비를 위해 기업 주최 특강을 들어보려고 지하철을 타고 수강장으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시야가 흐려지고 식은땀이 나 다음 역에서 내려 승강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박씨는 "물을 마셔도 다 게워낼 정도로 속까지 부글댔다"며 "갑작스러운 증상에 당황스러워 병원에 가자 위궤양 진단과 함께 스트레스 조절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때부터 지하철을 타는 게 무섭고 사람이 많은 데를 절로 꺼리게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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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뚫기 힘든 취업의 장벽 앞에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거듭되는 취업 실패로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나를 받아주는 회사가 한 군데도 없구나'하는 자괴감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게 된 이들이다. 스트레스 수준을 넘어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겪고 있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2655만4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1.4% 증가했다. 하지만 15~29세 청년층의 실업률은 10.3%로 2000년 이래 6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열악한 현실 속에서 숱한 '미생'들이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을 따내기 위한 전쟁을 치르는 사이 마음의 병도 깊어진다. 지난해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취업준비생 46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4.5%가 '취업을 준비하며 우울증을 겪었다'고 답했다.

 우울증의 주된 원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37.8%로 가장 높았으며 '계속되는 탈락'(31.2%), '취업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어서'(18.7%),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게 힘들어서'(17.4%),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17%) 등이 뒤를 이었다.

 또 우울증의 증상으로는 무기력증이 생겼다는 응답이 41.5%를 차지했으며 짜증이 늘고(31.3%), 사람 만나는 것이 싫어졌다(28.9%) 등의 대답도 다수를 차지했다.

 취업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단순히 '우울한 기분'을 넘어 병원 치료나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심각한 상황까지 내몰리는 실정이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A씨는 학내 익명 게시판을 통해 "원래 미미했던 우울증이 취업 준비로 심해져서 정신과 상담을 받으려고 한다"고 글을 올렸다. 이에 다른 학생들은 "나도 불안 장애를 겪어 치료를 받았다" "대학교 3학년 때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게 도움이 됐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각종 인터넷 취업 카페에는 "오늘로써 집 밖에 안 나간 지 5개월이 됐다. 취업하기도 겁이 난다" "우울증이 심해 몇 년째 약을 먹고 있는데 취업은 할 수 있을까요?" "원서 70개를 썼는데 다 서류전형에서 탈락하고 나니 자신감이 없어진다. 취업을 준비하다가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 "마음을 다시 잡아야 하는데 나쁜 생각마저 든다" 등 고통으로 점철된 글들이 수없이 올라오고 있다.

 취업의 '좁은 문'을 두드리는 대신 창업에 나서는 사람들도 있다. 취업 스트레스에 장기간 시달리다가 스스로 가게나 회사를 차릴 작정을 하는 것이다. 자영업의 길도 험난하겠지만 일단 취업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겠다는 나름의 자구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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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서 공방 사이트를 운영 중인 박모(32)씨는 "계약직 비서로 일하다가 2년 전 구조조정 때 회사를 나오게 됐다"며 "이후 간호조무사, 네일아트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지만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1년 이상 '백수'로 있다 보니 자신감이 점점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 공방학원에 다니면서 디퓨저와 향초 등의 제조를 배웠다"며 "현재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주문을 받아 판매하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내 사업을 하니까 힘든 면이 있어도 마음은 훨씬 편하다"고 덧붙였다.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 중인 박모(35)씨는 지방대 인테리어학과를 졸업한 뒤 이곳저곳 취업을 알아보다가 몇 년 전 친구들과 함께 동업하는 길을 택했다. 박씨는 "친구들과 함께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나태해질 수가 없다"며 "가끔 의견충돌은 있지만 회사에서 잘릴까 봐 걱정하거나 상사 눈치를 보지 않아서 좋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본은 물론 사회 경험도 부족한 청년들이 창업에 성공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온갖 힘겨운 상황들에 시달리다 결국 사업에 실패하게 되면 취업 준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경제적·정신적 타격을 받기 십상이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취업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적 변화와 이른바 사회 지도층의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정신과전문의)는 "20대들은 생애 처음 자립하게 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취업 문제로 인한 불안감이나 스트레스가 다른 세대보다 크다"며 "현 사회 구조로는 젊은 층의 우울증이 계속 늘어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 교수는 "국가가 청년 지원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마련하는 등 현실적인 환경 개선을 이뤄야 한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더욱 공부에 매달리고 성취 지향적인 학습만 우선시하게 돼 젊은층의 심리적 '내구성'이 점점 약해지고 좌절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전상진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우울증 현상 등을) 개개인의 사안으로 보기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며 "각계의 고위층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만 구조에 손을 대면 기득권이 손상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패기가 없어 우울증에 빠진다'는 등 개개인의 문제로만 몰고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기업 위주로 직장이 특권화돼 있어 교육 경쟁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는 고용 효과가 높은 분야에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을 살리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일자리를 살리는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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