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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통장이 잠든 사이-1부③]"통장에 돈넣어 신용 올려줄게"… '그놈'의 속삭임

등록 2016-08-01 15:08:27   최종수정 2016-12-28 17: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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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금된 돈은 되돌려 달라"… 알고보니 보이스피싱   대출 빙자 수수료 요구하면 일단 범죄조직 의심을

 

【서울=뉴시스】김경원 기자 = 멀쩡한 일반 시민들도 '그놈'의 마수에 걸리면 쉽사리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특히 몇 개의 장치를 작동시키면 기본 상식마저 마비시키는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충북 제천시에 거주하는 이모(37)씨.

 그가 '그놈'을 만난 것은 지난 6월초다. 신용등급이 낮아 평소 높은 금리에 시달려온 이씨는 "신용등급을 올려주겠다"는 그놈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다.

 "은행 신용등급을 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본적으로 대출이자를 날짜에 맞춰 꼬박꼬박 갚으면서, 통장 거래규모를 키우면 개인신용등급은 금방 상향 조정된다. 은행은 숫자로 판단하기 때문에 은행이 혹할 정도로 숫자를 만들면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기초 금융지식과도 맞아 떨어지는 '그놈'의 조언에 이씨의 마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내 돈을 돌려받아야 하니 당신 현금카드 내놔라"

 '그놈'이 제시한 방법은 이씨 통장에 자신의 돈을 넣어줘 거래규모를 키워주겠다는 것. 다만 자신의 돈을 되돌려 받아야 하니 입금된 것이 확인되면 곧 바로 현금으로 인출해서 주거나, 아니면 자신이 찾을 수 있도록 이씨의 현금카드를 달라는 것이 요구조건이었다.

 이씨가 선택한 것은 현금카드 양도. 하지만 '그놈' 손에 현금카드가 쥐어지는 순간 이씨는 자신도 모르게 '금융범죄의 꼭두각시'가 됐다.

 쉽사리 눈치채기 어려웠을 '그놈의 수법'은 눈 밝은 은행직원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걸려 다행히 실패로 돌아갔다.

 평소 급여이체 외에 고액 거래가 없던 이씨의 통장에 갑자기 큰돈이 들어오고, 30분 만에 잔금 전액을 인출하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은행직원이 과감하게 지급정지를 걸었다. 특히 연고지가 충북 제천인 이씨 계좌가 출금은 서울 금천구에서 이뤄지는 것을 의심한 것.

 이씨의 통장에 돈을 넣은 사람은 보이스피싱에 속아 입금한 피해자다. '그놈'은 이씨에게 인출지역과 입금자(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이름을 알려주고 해당은행을 방문해 지급정지 해제를 요구할 것을 주문했다.

 이씨는 해당 은행에 지급정지 해제를 강하게 요구했다. 본점 직원은 이씨와 통화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본점 직원 OOO입니다. 현금인출은 어디서 하셨고 지금은 어디에 계신가요"라고 질문했다.

 이씨는 "돈은 서울 금천에서 인출했고 지금은 강남에 있습니다. 당장 돈을 써야 하니 바로 (지급정지를) 풀어 놓으세요"라면서 목청을 높였다.

 이에 은행 직원은 "강남이라면 지금 보이는 아무 건물이나 이정표를 말해보세요"라며 "가까운 지점을 알려줄 테니 카드 가지고 지점으로 들어오시면 해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말문이 막힌 이씨는 자신이 지금 제천에 있다는 것을 실토했다. 그는 "좀 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도록 신용도를 높여준다는 말에 속아 현금카드를 양도했다"며 "대출알선업체에서 시키는 대로 은행에 민원을 제기했다. 인출지역과 피해자 정보도 전달 받았다"고 말했다.

 ◇"대출 수수료, 6개 계좌에 입금하라"고 속여

 경기도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모(20)군. 지난 5월 중간고사가 한창인 시기에 일주일 내내 경찰서를 들락거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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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군의 사연은 5월 초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자신을 대부업자라고 밝힌 '그놈'은 "급한 돈이나 고금리 대출을 사용하시면 정부 지원을 받는 중금리 소액대출을 알선해 준다"고 접근했다.

 빠듯한 생활비로 돈이 급했던 김군은 때맞춰 등장한 듯한 '그놈'에게 "소액 대출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놈'은 돈이 필요한 사람들 사이에 공동 보증이 필요하니 자신이 알려주는 예금주에게 각 10만원씩의 대출 수수료를 넣으라며 6명의 예금주와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김군이 필요로 하는 금액 정도라면 까다로운 절차도 필요하지 않으니 '문제없다'는 말로 안심을 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한계 서민, 소외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중금리 대출을 적극적으로 펼친다는 그럴싸한 설명도 곁들였다.

 '그놈' 말대로 계좌별로 10만원씩 60만원을 입금했다. 입금 후 2~3일 동안 '대출이 집행됐다'는 답변을 기다렸지만 줄곧 무소식이었다.

 휴대전화에 저장됐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그놈'과의 연락은 두절됐다. '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돈을 입금시킨 6개 계좌는 거래정지가 됐다.

 곧 이어 계좌 주인들로부터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졸지에 통장거래가 정지된 계좌주인 가운데 한 명이 김군을 허위신고자로 신고했다. 또 3명의 계좌주인은 "왜 남의 계좌를 거래정지시켰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이들 4명으로부터는 합의 후 거래정지 해제를 통해 돈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나머지 2명은 지금까지도 연락이 안 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권에선 대출을 해 주겠다면서 수수료를 요구하지 않는다"며 "대출알선을 해주겠다면서 수수료를 요구할 때는 절대로 응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보이스피싱, '정부기관 사칭'→'대출빙자'↑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금액 가운데 대출빙자형의 비중은 67%로 지난해 하반기(53%)보다 14%포인트 증가했다.

 이처럼 대포통장이 주로 활용되는 보이스피싱 수법이 올해 들어 정부기관 사칭형에서 대출빙자형으로 바뀌는 추세다.

 예전에는 검찰이나 금감원 직원을 사칭하는 방식이 많았지만 올해는 금융회사를 사칭하면서 고금리대출을 저금리대출로 전환해주겠다는 등의 대출금 편취 방식이 상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다.

 대포통장 사건은 주로 사회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가뜩이나 힘든 취업준비생이나 대출희망자가 주 타깃이기 때문에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출빙자형 사기는 실제 대출광고인지 보이스피싱인지 구별하기 어려워 서민들이 사기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대출 권유 전화를 받으면 실제로 존재하는 금융회사인지, 정식 등록된 대출모집인이지 여부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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