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좀비 재난 데칼코마니 '서울역'
'부산행'의 프리퀄 애니메이션인 '서울역'에 대한 기대는 그래서 클 수밖에 없다. 그가 자신의 홈구장으로 돌아왔으니 이전의 연상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그런 기대감이다. 하지만 '서울역'에서 관객은 '부산행' 이전의 연상호를 온전히 찾아낼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이 장편 애니메이션은 '부산행'보다 더 어둡고 음울하고 적나라하고 한층 가라앉아 있다는 점에서 전작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좀비 재난물의 화법은 '부산행'에 더 가깝다. 연상호는 정말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역'은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다. 연상호 감독은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덩어리에서 썩은 부분들을 하나하나 도려내 캔버스 한 편에 붙여 어떤 얼굴을 만들고, 그 얼굴이 얼마나 추한 것인지 지켜본다. 그가 이 작품을 하나의 '풍경'이라고 말한 건 이런 의미다. '서울역'은 보편적 복지에 대해 말하지만 아픈 노숙자를 돕지 않고, 여자친구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사고를 폭동으로 간주하고, 시민에게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사용하는 공권력의 이미지를 이리저리 이어붙여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한다. 연상호의 변화라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연 감독은 전작들에서 이미지가 아닌 서사로 극을 이끌었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는 각각 '사회 계급'과 '카오스적 세계 속 믿음'을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서울역'은 다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혜선이 좀비를 피해 도망친다는 게 전부다. 대신 이 작품은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정신 팔리지 않고, 현실을 명확히 목격하게 한다. 그러니까 연상호는 이야기를 단순화하는 대신 좀비 출몰이라는 재난과 현실의 복마전(伏魔殿), 그 자체를 캐릭터이자 메시지 삼아 극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마치 '부산행'의 '좀비 기차'가 그 영화 최대 캐릭터였던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연상호는 변화를 선택했고, 그 첫걸음으로써 '서울역'은 부분적이지만 성공적이다. '돼지의 왕'에서 '사이비'로 넘어가면서 연상호는 더 뛰어난 이야기 직조(織造) 능력을 보여줬다. '서울역'은 '서울역' 다음 작품에서 연상호가 보여줄,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드는' 재능을 더 기대하게 한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