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덕방 변호사' 1심 무죄…'중개시장' 지각변동 예고

등록 2016-11-14 11:00:00   최종수정 2016-12-28 17: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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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7호 대법정에서 '복덕방 변호사'로 불리며 공인중개사 자격 없이 부동산 중개업을 한 혐의로 기소된 공승배(45·사법연수원 28기) 변호사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리고 있다.  공 변호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7월까지 공인중개사 자격 없이 '트러스트부동산'을 운영해 공인중개사 또는 유사명칭을 사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16.11.0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이제 변호사들도 부동산 중개업을 할 수 있게 된 것 아닙니까. 가뜩이나 포화상태인데 변호사까지 진출하면 동네 중개업소는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앞으로 중개수수료 출혈 경쟁도 치열해지고 많은 중개업자들이 고사하게 되겠죠.”(A공인중개사 중개업자)

 부동산 중개시장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공인중개사 자격 없이 부동산 중개업을 한 혐의로 기소된 이른바 ‘복덩방 변호사’가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기존 중개시장의 일대 변화는 불가피하다. 포화상태인 중개시장에 변호사까지 뛰어들면 밥그릇 싸움은 치열해지고 수수료 인하 출혈 경쟁도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인중개사협회 “총궐기한다”

 지난 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선 변호사와 공인중개업자들 간에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뤄졌다.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트러스트부동산 대표 공승배(45·사법연수원 28기) 변호사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자리에서다.

 공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부동산중개 원스톱 법률자문을 하겠다며 트러스트부동산 홈페이지를 만들고 영업을 해왔다. 최대 300만원까지 가능한 기존 공인중개사 중개수수료와 달리 자문료를 45만~99만원으로 낮춰 주목 받았다. 법률상 ‘중개업’이 아닌 ‘법률사무’이기 때문에 법 위반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즉각 반발했다. ‘중개업을 하기 위해서는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중개사무소를 개설 등록해야 한다’는 공인중개사법 제9조를 위반했다는 것이 이유다.

 변호사들에게 밥그릇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은 중개업자들을 똘똘 뭉치게 했다. 협회는 3월4일 3319명의 서명을 받아 강남구청에 진정서를 제출한데 이어 다음날 8070명의 서명과 함께 공 변호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이어 5월23일엔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주요 언론 광고와 잡회를 통한 대국민 여론전도 병행했다. ‘업무영역 침해’라는 측면에서 법무사와 변리사, 기술사, 감정평가사 등과 함께 성명도 냈다. 지난 3일엔 국민참여재판과 관련해 2만5325건, A4용지 30박스에 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변호사 쪽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한 배심원 7명 중 4명이 공 변호사에 대해 무죄 의견을 낸 것.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나상용)도 “공 변호사가 일정한 보수를 받고 중개업을 했다거나 중개업을 하기 위해 표시·광고했다는 점, 부동산 중개 등과 유사한 명칭을 사용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변호사 단체와 협회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번 판결로 국민들은 법률전문지식이 있는 변호사를 통해 값싸게 부동산을 매매·임대차할 수 있게 됐다”며 “원스톱으로 법률자문 서비스를 제공받는 시스템이 활성화 돼 부동산시장을 선진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협회는 “변호사의 업무영역 침탈을 묵인한 어처구니없는 판결”이라며 “사법부가 대한변협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 국민참여재판이란 꼼수를 부려 공인중개사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이어 “트러스트 부동산의 위법 행위를 찾아 추가 고발하고 단체행동도 불사하겠다”며 “전국 36만 공인중개사와 100만 중개 가족의 역량을 모두 동원해 총궐기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변호사 ‘부동산 중개’ 길 열려

 이번 판결로 변호사들의 중개업 진출이 가능해지면서 공인중개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미 포화상태인 중개시장에 변호사까지 가세하면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트러스트부동산이 법률자문료를 기존 중개수수료보다 낮춘 데다 업계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출혈 경쟁도 불가피하다.

 현재 공인중개 수수료는 2억~6억원 미만 0.4%, 6억~9억원 0.5%, 9억원 이상 0.9%를 상한으로 하고 있다. 9억원이 넘는 집은 최대 3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반면 트러스트부동산은 매매금액 2억5000만원(전월세는 3억원) 미만이면 45만원, 그 이상이면 99만원이어서 중개수수료보다 훨씬 저렴하다. 업계에선 가격 경쟁이 본격화하면 중개수수료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운전면허와 함께 ‘국민자격증’이라고 불릴 만큼 흔하다. 현재까지 이 자격증을 발급받은 사람은 36만명에 달한다. 올해 6월 말 현재 전국에 개업한 공인중개사도 9만4065명에 이른다. 동네 편의점 3만 개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일각에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공인중개업계를 대형화·전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중개수수료를 합리화하고 서비스 질을 개선하는 등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업계 관계자는 “트러스트부동산에 대한 관심과 호응은 소비자들이 기존 중개업자들의 서비스 질과 수수료에 불만족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며 “단순히 밥그릇 지키기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이번 일을 계기로 쇄신을 거듭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대형 중개법인을 육성하고 거래 관행을 선진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국토교통부와 중개업계는 공인중개사 수급 조절, 중개사의 직접 매매업 허용 등 업무영역 확대, 법인화 등 대형화 유도, 월세 중개보수 현실화, 허위·과장 매물 근절 등의 방안을 놓고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민 편익 관점에서 중개업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경쟁력 및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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