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위협받는 서울시 정신보건 노동자들

등록 2016-11-14 11:00:00   최종수정 2016-12-28 17: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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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보건의료산업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 조합원 300여명이 '서울시정신보건지부 투쟁 승리를 위한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노동환경 개선과 고용 안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16.10.16.  (사진 =  보건의료산업노조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임재희 기자 =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서울시 정신보건전문요원 중 상당수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지난달 5일 무기한 파업을 시작했다. 파업 35일째인 지난 8일 일부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고용승계 등이 골자인 '고용안정 합의문'에 서명했지만 파업은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폭언·폭력은 예삿일

 정신보건전문요원은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와 서울시 및 25개 자치구 정신건강증진센터 등 27개 정신건강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현재 358명이 정신건강 관련해 전화와 방문상담을 하고 있다.

 정신보건전문요원 김미영(가명)씨는 혼자 일할 때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조현병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던 남성 상담자가 근무일을 알고 사무실을 찾아와 겪었던 공포 때문이다. 남성은 다짜고짜 성관계를 요구하며 김씨를 억지로 끌고 나가려 했다. 침착하게 대상자와 상담사 간 관계를 설명하라는 매뉴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김씨는 '사무실을 정리하고 나가겠다'며 대상자를 설득했다. 남성이 사무실에서 나간 사이 문을 잠그고 112는 물론 119, 보건소까지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곳에 전화를 걸어 위기를 모면했다. "위기를 모면한 것은 나의 순발력이나 지식, 기술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늘이 도왔을 뿐"이라며 "나를, 우리를 하늘이 언제까지 도와줄 수 있겠냐"고 두려워했다.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은 김씨처럼 다른 사람의 정신건강을 돌보면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상담중 욕설은 기본이고 성적 폭언과 성희롱, '여자 주제에 뭘 아느냐'는 식의 인신공격도 다반사다. 수시로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에 노출된다.

 박민지(가명)씨는 응급상황이 발생해 현장에 나갔다가 상담자와 단둘이 경찰차 뒷자리에 타게 됐다. 자리 교체를 요구했으나 경찰은 '자리를 옮기다가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상담자가 '나를 죽이려고 데려가느냐'며 때리는데도 병원까지 뒷자리에서 동행해야만 했다.  

 실제로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올해 3월 정신보건전문요원 35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67.9%가 폭언을 경험했다. 25.9%는 성희롱을 경험했으며, 실제 폭력으로 이어진 경우도 9.8%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정신건강에는 '빨간 불'이 들어온 지 오래다. 세월호 생존자 상담을 1년 이상 진행한 이유진(가명)씨는 "센터에서 배려를 받긴 했지만 기계가 아니라 힘들다"며 "1년 이상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꾸 희생자들이 생각 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 고용불안까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가운데 고용마저 불안하다. 23개 민간위탁 기관은 물론 직영으로 전환된 곳에서도 정규직 전환 회피 목적인 이른바 '쪼개기 계약'이 이뤄진다. 10개월 계약 뒤 단기간 계약을 체결해 고용을 연장하는 식이다.

 노조는 지난 5월부터 시와 교섭을 통해 고용 안정 협약안을 마련했지만 자치구 정신건강증진센터장들의 거부로 고용승계와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다.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서 시를 향해 '진짜 사장 나오라'고 요구하는 것도 고용 안정을 위한 시의 약속을 촉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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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보건의료산업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 조합원들이 제작한 팻말. 2016.10.16.  (사진 = 보건의료산업노조 제공)  [email protected]
 김종진 연구위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생활 만족도 항목 중 '고용안정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가장 낮은 17.5점에 불과했다. 전체 평균 점수인 43.8점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인력 충원도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의 숙원 과제다. 지난 4월 기준 이들이 맡고 있는 1인당 평균 상담자는 77명 남짓이다. 2인1조로 맡아도 벅찬 인원으로 폭력 상황 등 위험에 노출됐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인력 부족과 고용 불안에도 정신보건 예산은 되레 줄었다. 지난해 서울시 보건예산중 정신보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13.1%로 전년(14.2%)보다 1.1%포인트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구로·노원·도봉·동대문·서대문·양천·용산 등 7개구 센터에선 인건비를 줄였다.

 ◇서울시, 감정노동자 보호 나선다지만

 이와관련, 서울시는 8일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폭언·폭행 등에 시달리는 감정노동자들을 위해 보호체계를 구축하고 피해구제에 시가 직접 나선다는 게 골자다.

 시는 2018년까지 감정노동 전담 권리보호센터를 설치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악성민원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로 했다.

 감정노동자들의 업무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치이지만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이 줄곧 요구해온 고용안정 등의 문제는 빠졌다.

 "서울시가 감정노동자 권익 보호에 나선다는 건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정신보건지부 노조 관계자는 "민간위탁 계약기간 종료 등이 현실로 닥쳤는데도 상당수 자치구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선 고용승계 등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8일 노원, 동작, 서초, 성동, 성북, 용산, 종로구 등 6개 자치구 정신건강증진센터와 광역센터 등 2개 광역센터가 '고용안정 합의문'에 서명하면서 한시름 놓게 됐지만, 14개 자치구 센터에선 고용승계 여부와 관련해 아무런 응답이 없는 상태라고 정신보건지부 노조는 전했다.

 이에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감정노동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내년 2개 산하기관에 우선 권고하고 차례로 확대할 것"이라며 "고용불안 문제는 2012년부터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공무직 등으로 정규직화하는 작업을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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