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정치일반

[르포]겁먹은 中어선, 기관총 보더니 뒤뚱뒤뚱 줄행랑

등록 2016-12-15 10:26:02   최종수정 2016-12-15 10:26:02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군산=뉴시스】조수정 기자 = 해경이 중국어선 불법조업과 관련, 무기사용 매뉴얼 발표(11월 8일) 한달을 맞았다. 군산해경 3013함(3000t급.함장 이기춘) 대원들이 9일 밤부터 10일 새벽, 전남 홍도 북서쪽 26마일 해상(한중 잠정조치수역 바깥쪽 30해리) 서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기상 악화를 틈타 불법 조업중인 무허가 쌍타망(雙拖網) 중국 어선에 경고사격 하기 위해 공용화기인 M60에 실탄을 장전하고 있다. 이날 불법조업을 하던 80여척의 중국 어선들은 해경 함정을 둘러싸다 퇴거작전에 밀려 7시간만에 한중 잠정조치수역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국민안전처 해경본부에 따르면 11월 한달간 우리 수역을 침범한 불법 중국어선은 1712척으로 지난 해 11월 3953척에 비해 57% 감소했다. 2016.12.12. [email protected]
【군산=뉴시스】유상우 기자 = “오늘 저녁 날씨가 좋지 않다고 하니 불법조업 중국 어선들이 많을 거예요. 파고가 3m에서 4m 정도 된다고 하니까, 게네들(중국어선)이 불법조업하기에 딱 좋은 날씨죠. 롤링(배가 좌우로 흔들림)이 심할 수 있으니 배를 처음 타신다면 멀미약을 미리 복용하면 도움이 될 겁니다.”

 지난 9일 오전 9시 군산해경 3000t급 3013함에 올라타자마자 이기춘(57) 함장이 이같이 건넨다. 묘한 긴장감이 돌면서 가슴이 쿵쾅거린다. “불법으로 조업하는 중국어선을 한 척도 못 보고 가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이 0.1초 만에 쏙 들어갔다.

 곧바로 중국어선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조타실로 올라갔다. 조타기를 중심으로 양 끝에 고성능 레이더 두 대가 눈에 들어온다.

 현장에 있던 오대식(43) 경사가 각 장비의 쓰임새를 설명했다. “레이더는 최대 180㎞까지 확인할 수 있고, 200여개의 물표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중국어선들의 위치나 행동사항 등을 파악하고 있죠. 캠코더처럼 생긴 저 장비는 채증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본부나 상황실로 전송하는데 24시간 연결돼 있습니다. 또 이 배는 최대 속도 28노트(52㎞)까지 낼 수 있습니다.”

 그 옆으로는 전자해도와 음향측심기(음파를 이용해 수심을 측정하는 장비), 위성항법장치, 선박 자동식별장치, 야간 감시카메라 등이 설치돼 있다.

 함정 양옆에는 최대 속력 40노트인 10m급 고속구조정 2척, 8m급 고속단정 2척이 장착돼 있다. 40㎜ 자동포 1문, 20㎜ 벌컨포 1문은 불법으로 조업하는 중국어선을 우리 해역에서 몰아내기에 충분했다. 공용화기인 M60 기관총 4종도 있다. 특히 기관총은 지난달 1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 인근 해역에서 해경에 집단 저항하는 중국 어선들에 처음으로 사용, 효과를 톡톡히 봤다. 당시 700여 발을 발사하며 중국 어선들을 몰아냈다.

 ◇불법조업 중국어선 출현  

 어느덧 밖은 어둠이 짙게 깔렸다. 시곗바늘이 밤 8시 45분을 가리킬 무렵, 갑자기 조타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불법으로 조업하는 중국어선을 발견한 것이다. 부함장인 차진환(50) 경감이 이 함장에게 상황을 보고한다.

 “함장님 한번 보십시오. 일부는 270도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데, 서너 무리 정도 된 것으로 보입니다.”

 레이더를 들여다보니 노란색 물표 80여 개가 찍혀있다. 중국어선 80여 척이 우리 해역에서 불법으로 조업하고 있다는 표시다. 함정 위치는 전남 홍도 북서쪽으로 25해리(협정선 30해리 내측). 조타실에는 어느새 완전무장한 대원 16명이 집결,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associate_pic
【군산=뉴시스】조수정 기자 = 해경이 중국어선 불법조업과 관련, 무기사용 매뉴얼 발표(11월 8일) 한달을 맞았다. 군산해경 3013함(3000t급.함장 이기춘) 대원들이 9일 밤부터 10일 새벽, 전남 홍도 북서쪽 26마일 해상(한중 잠정조치수역 바깥쪽 30해리) 서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기상 악화를 틈타 불법 조업중인 무허가 쌍타망(雙拖網) 중국 어선 단속에 나서자 중국 어선들이 무리지어 도망치고 있다. 선체의 테두리에는 등선을 방해하기 위해 철조망과 쇠창살 등을 설치하고 선미에는 단속정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스크류에 감기게 하는) 그물을 매달았다. 이날 불법조업을 하던 80여척의 중국 어선들은 해경 함정을 둘러싸다 퇴거작전에 밀려 7시간만에 한중 잠정조치수역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국민안전처 해경본부에 따르면 11월 한달간 우리 수역을 침범한 불법 중국어선은 1712척으로 지난 해 11월 3953척에 비해 57% 감소했다. 2016.12.12. [email protected]
 동시에 현장 증거를 모으기 위한 채증이 진행됐다. 행정팀장인 김주미(29) 경위가 현재 시각과 위치 등을 캠코더에 담았다.

 “2016년 12월 09일 현재시각 20시 57분, 속력 11노트. 검문검색대상 중국어선, 본함으로부터 0.4마일 322도 지점에 위치해 있음. 단속대상 중국어선 행동사항 0.35마일 331도에 위치하고 있음. 검문검색대상 중국어선 행동사항 현재 352도 5.3노트로 조업 중인 것으로 판단됨. 한중 어업협정선으로부터 약 33마일 110도 방향 내측에 있는 것으로 판단됨.”

 이 함장이 항해장에게 큰 목소리로 지시했다. “3006함 붙으라고 해”

 3013함은 서귀포해경 3006함·목포해경 1508함과 무전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작전을 짰다. 멀리 수평선상에는 불을 환하게 밝힌 수십 척의 중국어선들이 해경을 움직임을 주시하는 듯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함장이 쌍안경을 들고 3013함 인근에 있던 중국어선 22척의 움직임을 살폈다. 중국 어선의 선원들은 해경 대원들이 등선을 차단하고자 배에 쇠창살을 꽂고 있었다.

 이 함장은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 대기 중이던 해경 대원들에게 중국어선 제압 명령을 내렸다. 대원들은 큰 소리로 “안전! 안전! 파이팅”을 외치며 함정 높이 매달려 있는 고속단정에 탑승, 하강 지시를 기다렸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대원들이 단정에서 내려 함정으로 들어갔다.

 작전 취소다.

 이 함장은 파고가 4m에 이르는 데다 중국어선들이 대열을 이뤄 자칫 대원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판단해 취소했다고 한다. “솔직히 지금은 위험해요. 이런 날씨에 이미 대응 체계를 갖춘 중국어선 사이로 들어간다는 게 쉽지가 않아요. 일단 중국어선들을 압박하면서 쫓아내야겠어요.”

 출동 준비를 했던 김수기(50) 경사는 중국어선 나포 작전을 아쉬워하면서도 대원들을 걱정했다. “날씨가 나쁘면 단정을 붙이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게네들이 쇠창살을 꽂고 있는데 그 쇠창살과 쇠창살 사이로 배를 대야 하거든요. 그게 쉽지가 않아요. 단정이 쇠창살에 꽂혀서 뒤집힐 수가 있거든요.”

associate_pic
【군산=뉴시스】조수정 기자 = 해경이 중국어선 불법조업과 관련, 무기사용 매뉴얼 발표(11월 8일) 한달을 맞았다. 군산해경 3013함(3000t급.함장 이기춘) 대원들이 9일 밤부터 10일 새벽, 전남 홍도 북서쪽 26마일 해상(한중 잠정조치수역 바깥쪽 30해리) 서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기상 악화를 틈타 불법 조업중인 무허가 쌍타망(雙拖網) 중국 어선을 단속하기 위해 출동 준비하고 있다. 이날 불법조업을 하던 80여척의 중국 어선들은 해경 함정을 둘러싸다 퇴거작전에 밀려 7시간만에 한중 잠정조치수역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국민안전처 해경본부에 따르면 11월 한달간 우리 수역을 침범한 불법 중국어선은 1712척으로 지난 해 11월 3953척에 비해 57% 감소했다. 2016.12.12. [email protected]
 이 함장이 다시 소리쳤다. “서치라이트 비추고, 기관총 배치해. 좌·우측에 조명도 켜.”

 해경이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함정 양쪽에 M60 기관총 2정 거치했다. 여차하면 발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중국어선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높은 파고 탓에 뒤뚱거리며 도망가는 모습이 위태위태하다. 중국어선들은 3013함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도망가면서 수차례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함정과 중국어선의 거리는 600여 m 정도에 불과했다.

 이 함장이 어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참나, 저것들이 놀리나.”

 3013함이 다시 서치라이트를 비추자 중국어선들이 줄행랑을 쳤다. 3013함은 중국어선이 우리 수역 바깥으로 물러나간 다음 날 새벽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상황 해제’

 이 함장은 “우리 함정이나 단정을 조금이라도 위협하면 강력하게 대응하겠지만, 무리하지는 않는다”며 “중국어선이 우리 수역에서 불법 조업을 못 하도록 감시하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했다.

◇연인·가족, 7박 8일의 외로운 기다림

 23년을 해경에 몸담고 있다는 기관장 김진옥(48) 경감은 가장 힘든 부분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8일간 떨어져 있는 것”을 들었다.

 “일이야 원래 하는 거고…, 저희 기관팀에 있는 총각 둘이 지난주에 여자 친구와 헤어졌더라고요. 여자 친구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도 연락이 안 되니까 답답했던 거죠. 이 친구는 이해해달라고 해도 여자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겠어요? 8일에 한 번씩 목소리를 듣는데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어요. 경찰공무원이라고 좋다고 만났을 건데…. 또 다른 친구 역시 같은 이유로 헤어진 것 같아요.”

associate_pic
【군산=뉴시스】조수정 기자 = 해경이 중국어선 불법조업과 관련, 무기사용 매뉴얼 발표(11월 8일) 한달을 맞았다. 군산해경 3013함(3000t급.함장 이기춘) 행정팀장인 김주미 경위가 11일 서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채증을 하고 있다. 2016.12.14. [email protected]
 김 경감은 아픈 애를 두고 온 사례도 들려줬다. “직원 중 한 명은 배 타기 전날 아이가 독감 걸려서 응급실 실려 갔는데도 그냥 두고 왔어요. 남편이 8일간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아이 엄마 혼자서 돌본 거예요. 사실 우리 같이 아이들 다 키워놓지 않으면 가정 생활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해경의 업무 중 해상 업무는 육상 업무보다 힘들다. 그러나 해상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육상보다 훨씬 적다. “원래는 육상과 해상이 5대5 정도 비율이 돼야 하는데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쉽지 않아요. 육상으로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경우도 많고, 육상에서 해상으로 오고 싶어도 여건이 안되면 못 오죠.”

 함정에 오고 싶어 하는 해경은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라고 웃었다. “저처럼 애들 다 키워놓고 가정 경제만 책임질 나이가 된 분들이죠. 하하하. 급여도 육상보다 조금 더 받기 때문에 함정을 선호하기도 해요. 돈 더 준다고 해도 젊은 사람들은 싫어하더라고요.”  

 다섯 살짜리 남자아이를 키우는 박채연(34) 경장은 “육아 문제가 걸리긴 해도 이제 적응이 돼 괜찮다”고 했다. “처음에는 다들 힘들 거예요. 연인 또는 남편, 그리고 아이 문제까지…. 저 같은 경우는 지금은 아이에게 엄마가 ‘출동한다’고 하면 신나서 좋아해요. 만화에서 ‘출동’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잖아요. 아이에게는 엄마가 나쁜 사람들 잡으러 가는 듯한 느낌을 주나 봐요.”

 함내에서 유일한 민간인인 형규진(41) 조리장도 갓 태어난 아기가 눈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딸만 셋인데, 막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어요. 보고 싶어도 7박 8일간 열심히 일하고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잘해야죠.”

 그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임기제 공무원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일단 임기는 5년이지만, 안정적이고 보수도 좋고 해서 왔어요. 보람도 있고요. 10년까지도 가능하다고 하니 기대해봐야죠. 하하하”  

 불편한 점은. “처음 3개월 정도는 멀미와 일하는 환경도 달라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적응이 됐어요. 특히 불이 없고 전기하고 인덕션, 스팀밖에 없어 당황스럽기도 했죠.”

 그는 새벽 5시 30분에 조식 준비를 시작한다. “힘든 일을 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식단에 신경을 많이 써요. 되도록 돼지고기나 닭고기 등 대원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준비하려고 해요. 배를 타시면 항상 배가 든든해야 생활할 수 있거든요.”

 ◇눈치 보는 불법 중국어선

associate_pic
【군산=뉴시스】조수정 기자 = 군산해경 3013함(3000t급.함장 이기춘) 대원들이 9일 저녁 식사 배식을 받고 있다. 2016.12.14. [email protected]
  심장 쫄깃한 첫날을 보내 뒤 이틀간 서해는 조용했다. 최고 4m로 거셌던 파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호수처럼 잔잔했다. 단 한 척의 중국어선도 우리 수역을 넘어오지 않았다.

 윤병두(50) 해양경비안전본부 해양안전과장은 “중국어선들이 우리가 강력히 대응하는 순간부터 많이 줄었다”며 “특히 중국 정부도 자국 어선에 주의를 요구하고 있어 줄어드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보다 60% 정도가 줄었으니까 굉장히 좋아진 거죠. 예전에는 하루에 1000척이 넘을 정도로 우리 바다가 엉망이었어요. 레이더를 보면 꽉 찰 정도였으니까.”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올해 11월 우리 수역을 침범한 중국어선은 작년 같은 기간(3953척)보다 57% (1712척) 줄어들었다. 해경은 지난달 7일 폭력저항 어선에 대해 공용화기 사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무기사용 매뉴얼’을 중국 해경국과 외교부에 공식 통보했다.

 이 함장은 그러나 “계속해서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어민들을 위해서라도 강력하게 단속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나라가 어지러운데 우리는 그런 거 잘 몰라요. 우리 바다만 잘 지킨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요.”

 윤 과장도 “어수선하지만 우리는 늘 하던 대로 일할 것”이라며 “2014년에는 많은 상실감을 느꼈지만, 더 잘하자는 생각뿐이다. 직원들도 알아서 잘한다”고 했다.

 김진옥 경감도 한마디 거들었다. “해경이 해체됐음에도 이 조직에 들어온 젊은 친구들(신입 경찰관)의 마인드가 참 좋아요. 그 친구들은 우리가 하지 못한 불합리한 부분들을 많이 바꿔가고 있더라고요. 그 친구들 덕분에 조직문화도 조금씩 개선되는 것 같아서 걱정이 덜합니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