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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이유…런웨이 위의 자본주의

등록 2016-12-20 16:04:01   최종수정 2016-12-20 1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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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트렌드는 패션 산업의 원동력입니다. 사람들에게 몇 달마다 새 상품을 사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트렌드죠. 사람들에게 "그건 한물갔어요. 옷장에서 그걸 치워요. 이제 이게 필요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건 패션 산업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현재 가진 것이 어딘가 잘못됐다고 트렌드가 느끼게 해주죠." (/ p.81)

 누구나 옷을 입는다. 패션업계에 종사하든 아니든, 패션에 관심이 있든 없든 우리는 계절에 따라, 유행이나 취향에 따라 옷장을 채운다. 하지만 멋스런 옷을 고르며 그것이 대량 생산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비극이 있었다는 사실은 좀처럼 상상하지 못한다.

 이 책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는 화려해 보이는 패션 산업에 드리워진 글로벌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고발한다.

 세계 곳곳 열악한 시설의 공장에서, 귀한 물과 곡물 자원을 이용해 대량 생산되는 패션 산업은 막대한 자원을 단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일부다. 서로 경쟁관계인 듯한 다수의 브랜드, 예를 들어 크리스티앙 디오르, 루이비통, 겐조, 지방시, 마크 제이콥스 등은 사실 하나의 기업이 소유한 브랜드다.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이러한 부와 권력의 집중은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며 공고해질 대로 공고해졌다. 패션 산업은 자신들의 상품을 전설로 만들기 위해 미디어를 이용한다.

 "잡지부터 개인 블로그, 트렌드 예측 회사까지 무엇이 패션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 패션 미디어의 역할은 지대하다. 그들은 대다수가 구경도 못할 옷들을 전시하고 브랜드에 금가루를 뿌려 옷에 '패션'의 지위를 부여한다. 패션 미디어 또한 몇몇 대기업의 소유이고, 광고나 협찬으로 인해 잡지와 브랜드 간에는 공생관계가 생겨 패션 저널리즘은 사라지고 지루한 아첨꾼만 남았다. 결국 천이 아니라 그 천을 둘러싼 모든 것이 패션을 만든다. 즉 패션쇼 무대, 미디어를 통한 명성과 광고, 그리고 화려한 상점이 서로 손잡고 거짓 신앙을 낳는다. 이러한 사탕발림에 눈먼 소비자들은 '왕'이 아니라 기업에 방대한 이윤을 낳아주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신용카드의 노예가 될 뿐이다."

'윤리적인 패션은 없다'고 지적한다.  

 패션 산업은 인간의 노동을 현란한 간판 너머로 숨기는 데 능숙하다.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일조차도 디자이너, 면화 따는 사람, 공장 노동자, 염료 기술자 등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한 티스푼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정도로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이 수 갤런씩 면화농장에 뿌려지고, 악어, 밍크, 여우, 뱀 등이 상품화를 위해 공장식 사육을 당하다가 도살된다. 연간 8000만 톤에 이르는 직물이 생산되는데 이를 옷으로 바꾸는 데는 엄청난 양의 전력, 석탄, 그리고 물이 사용된다. 살충제, 산성 염료, 라벨, 실, 지퍼와 금속 단추 등등 패션이 만든 환경오염의 발자국 때문에 지구는 까맣게 뒤덮일 정도다.  최고라고 추앙받는 명품조차도 실제 노동 비용이나 생산 방식을 감추며 자신들을 신화화한다.

"노동 착취 행위가 들통난 브랜드들의 목록은 끝도 없다. 저가 브랜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H&M, 나이키, 리복, 아디다스, 컨버스, 갭, DKNY, 리바이스, 막스 앤 스펜서, 카렌 밀렌, 랄프 로렌, 버버리, 그 외 수백 개의 브랜드를 포함해 그 목록은 늘어만 간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들통난'인데,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고 만들어진 옷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 후려치기가 만연한 농업, 화학, 공장과 상점에서의 노동을 포함한 공급 체인에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p.119)

 하지만 이 행성에서 패션을 피할 방법은 없다. 패션 산업에 참여를 거부하기란 불가능하다.  

 패션에 가려진 자본주의의 올을 풀어 헤친 저자는 "사람들을 육체적, 정신적, 영적, 예술적 불구로 만드는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더 큰 재앙을 맞이할 뿐이며, 옷차림에서 조차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직시해야한다"고 역설한다. 결국, 오늘도 욕망하고, 욕망하게 하는 건 옷걸이에 걸린 옷들이라는 것. 탠시 E. 호스킨스 지음, 김지선 옮김, 364쪽, 문학동네,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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