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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삶은 계속 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등록 2017-02-09 09:40:20   최종수정 2017-11-15 15: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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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바이 더 씨, 영화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감독 케네스 로너건)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세 명의 배우를 연기상 후보에 올렸다(남우주연·남우조연·여우조연상, 이 작품에는 주인공 여성 캐릭터가 없다). 너무나도 뛰어난 경쟁자들이 있기에 루카스 헤지스(남우조연)와 미셸 윌리엄스(여우조연)의 수상 가능성은 낮지만(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케이시 애플렉은 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가장 강력한 후보다), 이들을 포함해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137분 간 보여준 탁월한 호흡은 할리우드가 반드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연기만 뛰어나고, 연출은 함량 미달인 그저그런 작품인 건 아니다.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사건 자체가 아닌 사건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과 그 파장을 담아내는데,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이 상대적으로 더 부각될 뿐 이 영화가 차분히 쌓아가는 삶과 인간에 대한 애정은 세밀하고 사려깊어서 충분히 뛰어나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배우들 간 호흡뿐만 아니라 연기와 이야기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또 그 조화가 연출 방식과 목표에 부합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리'(케이시 애플렉)는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혼자 살아간다. 평범한 날들이 이어지던 중 그에게 한 통 전화가 걸려온다. 형 '조'(카일 챈들러)가 심장마비로 위독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 리는 고향 맨체스터로 향하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 형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다. 리는 형의 아들 '패트릭'(루카스 헤지스)과 장례를 준비하다가 형이 유서를 통해 자신을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거 어떤 사건으로 인해 맨체스터에서 사는 게 힘겨운 그는 조카에게 보스턴으로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하지만, 패트릭은 거부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돼야 하는 남겨진 자들의 삶을 지켜보는 작품이다. 조의 죽음은 예견된 일이었다. 조는 주기적으로 심장 발작을 일으켰고, 그가 오래 살지 못한다는 건 리와 패트릭, 그리고 조가 공유한 정보였다. 그러니 형의, 아버지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동생과 아들에게 갑작스럽거나 대단한 사건은 아니다. 중요한 건 죽음 이후다. 조는 죽었고, 서로를 빼면 가족이 없는 리와 패트릭은 살아가야 하고, 혹은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리는 패트릭과 장례 절차를 논의하던 중 "네 아빠는 이미 죽었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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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바이 더 씨, 영화
영화는 이들의 성장과 결합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리는 데 관심이 없다. 로너건 감독이 보여주는 삶이란, 그저 일상이다. 리는 형이 죽은 뒤 해야할 일들을 성실히 '처리'한다. 패트릭은 평소처럼 등교하고, 여자친구를 만나고, 밴드 연습을 하며 '생활'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절제된 표현'이라고 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고통을 이겨내든 이겨내지 못하든, 온갖 감정이 마음 속에 휘몰아쳐도, 삶은 각자 고통을 안고서라도 살아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 침묵과 쓸쓸함 속에서 터져나오는 유머는 생(生)의 상징이며, 이 영화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로너건 감독은 쉽고 편한 위로를 건네는 법도 없다. 영화는 리를 과거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고통받는 인물로, 앞으로도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인물로 그린다. 플래시백 장면을 현재 벌어지는 일과 구분 없이 교차 편집한 것은 과거의 고통이 곧 현재의 아픔이고, 과거와 결코 쉽게 이별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패트릭은 결국 "도저히 이겨낼 수 없다"(I can't beat it)고 고백한다. 패트릭 또한 리가 위로의 말을 건네자, "좋은 시도였다"고 비꼴 뿐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이지만, 자신의 고통을 타인의 위로로 덜어내려 하지 않고 온전히 홀로 짊어지려 한다.

 케이시 애플렉이 오스카에 가장 근접한 배우로 평가받는 건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이 방향을 완벽하게 이해한 연기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애플렉은 마음을 닫고 표정을 잃은 이 까칠한 남자를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빠르게 걷는 모습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다. 리가 대개 무표정하다고 해서 그에게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다. 그의 '표정 없음'에는 분노와 죄책감과 후회와 슬픔과 외로움과 당혹과 기쁨이 다 들어있다. 실제로 우리 또한 대개 무표정뒤에 감정을 숨기거나 드러낸다. 연출된 무표정들이 아닌 그렇게 돼버린 무표정이기에 관객은 리가 딱 한 번 눈물 흘릴 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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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바이 더 씨, 영화
루카스 헤지스 또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헤지스는 때로는 성숙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영락없이 철없는 소년이 되고마는 패트릭을 맡아 애플렉과 좋은 앙상블을 선사한다. 미셸 윌리엄스가 언제라도 아카데미 후보에 오를 만한 실력을 가진 배우라는 건 웬만한 관객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단 네 번의 시퀀스, 10분 남짓한 분량으로도 캐릭터를 충분히 구축하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며, 감성을 덧입힐 줄 안다.

 너무 추운 날씨 탓에 리와 패트릭은 봄이 와서야 조를 묻을 수 있었다. 이를 두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말하면, 봄이 왔으니 곧 겨울이 다시 온다. 리와 패트릭, 조가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보트 또한 마찬가지다. 고장난 모터를 패트릭이 기어코 교체했지만, 지금의 새 모터 역시 헌 것이 돼 고장나고 말 것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희망에 인색한 영화다. 그게 실제 우리 삶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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